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소설, 향
김이설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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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다, 는 것에 대한 내 열망을 일깨워 준 분이 있었다. 특별하다고 생각치 못한 나의 장점을 발견하고, 권해주었다. 나는 그렇게 '쓰기'에 입문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시작하게 될까 싶었는데 이 책,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을 읽으며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살기 위해 쓰는구나, 하고.






삶에서 열망을 빼면 남는 것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 열망의 씨앗은 물을 주지 않아도 수십 년을 옹송그리다가, 어쩌다 떨어진 단 한 방울의 물을 휘감아 집요하게 자란다. 늦든 빠르든 깨달을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창작이다. 창작에 대한 갈망은 나를 제물로 삼아 활활 타오르고, 재조차 남지 않는다.


쓰기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은 꾸준히 하라고 한다. 대개는 그것이 비법이다. 잘 쓰기 위한. 그리고 루틴을 만드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한다. 하루에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을 정해, 그 시간을 오롯한 창작의 시간으로 사용하라고 한다. 보통은 이른 시간에 일어나 출근 전 시간을 활용한다. 혹은 퇴근 이후 저녁 시간을 이용하기도 한다. 


성공하기 위한 방법을 다룬 책에는 꼭 '출근 전 2시간, 퇴근 후 2시간'을 이용하라는 내용이 있다. 공노비든 사노비든 원하면 끊어낼 수도 바꿀 수도 있는 것이 직장이지만, 먹고사니즘은 그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시간도 한정적이었다. 그나마 철에 따라 일감이 흘러다니다 한 곳에 고이는 때가 아니라면, 나는 직장에서 조금은 자유로운 편이었다. 그래서 '쓰기'에 대한 목마름에 조금씩 마음을 뿌려왔다.


이제서야 쓰기에 대한 박동을 시작하는 내게 '시인'이라는 사람들은 신과 같았다. 그들의 손 끝에서 뽑히는 언어들이 무시무시했다. 멀쩡하게 지었다가도 모두 부수고. 끊임없이 자아내다가도 순간 멈추는. 정제된 언어의 세련미와 길들여지지 않은 매서움이 느껴졌다. 같은 글자를 사용할텐데 그들에게 허용된 먹물만이 무지개빛처럼 선연했다.


그래서 나에게 시인은 세상의 미사여구를 다 가져다 바른 주인공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의 주인공은 그렇지 못했다. 시를 쓰고자 하는 마음 속의 씨앗을 너무 늦게 알아차려서 일까? 부진한 날들 중에서 싹터 오른 떡잎이 싱싱하지 않아서? 매일 줘야 하는 물을 1년이나 까먹어서? 


아니다. 


"나는 하고 싶은 게 없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걸 못 찾은 것도 아니라, 그저 내가 하고 싶은 걸 모른 척 무시하고 안 보이는 척 외면해왔던 것이다."(62쪽) 


아마 이것 때문 일 것이다.


"딱 한 달만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살다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23쪽) 그녀가 바란 것은 그저 아무도 없는 곳. 그것 하나였다. "그걸 깨닫는 것조차 너무 늦어버려서 나는 길 잃은 아이처럼 자꾸 어쩌지 못했다."(121쪽) 하지만 자꾸만 마주치는 현실의 잘못된 결과는 그녀를 초조하게 했다. 


제가 손목 붙들어 데리고 나온 동생이었고, 어머니에게 아이 둘을 돌보겠다고 한 것도 자신이었다. 그래서 3년이나 돌봤다. 아이 둘을 먹여 입히고 재우고 길렀다. 하루가 쌓여 계절이 되고, 붙잡아둘 수 없는 바람처럼 시간은 흐르는데 철따라 해야 하는 집안일은 끝이 없었다. 스트레스로 뒷목이 땡기고, 저녁이 되면 두통 때문에 얼굴이 일그러젔다. 그러던 중 유치원 선생님 폭행사건이나, 동생의 연애,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집을 떠날 수 밖에 없게 된 '그 사건'이 일어난다.


사람의 발 밑에는 가야할 길이 그어져 있다. 도달할 곳에 빨리 가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70억 인구에게는 70억가지의 길이 있으니까. 제 의지로 놓이지 않은 길 위로 떨어진 사람들은 변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내가 책 속의 주인공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의 성장이 가시적이기 때문이다. 내 시야 안에서 만개하는 꽃을 본다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큰 충족감을 준다. 내가 매일 부딪히는 현실보다 더 실제같은 사건과 충돌하며 바뀌고, 그들을 둘러싼 불합리함을 넘어선다.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모두 다 시인이라고. 시심을 품은 자가 시인이니 시를 읽을 줄만 알아도 시인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164쪽) 


도망칠 곳, 숨어 있을 공간으로 도피하자 안전함과 안락함이 달콤했다. 단번에 시상이라도 떠오를 줄 알았건만 그녀는 그저 온전히 자신에게 몰입했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밤새 언어에 대해서, 시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었다."(171쪽) 최선을 다했다. 


한숨에 날아갈 민들레 홀씨처럼, 손에 쥐기만 해도 깨어질 것 같은 그 순간의 소중함이 애틋했다. 






어떤 문장은, 피할 길 없이 맞딱뜨린 사고 같다.


"소설을 쓰는 일은 삶과 같아 시간이 흐를수록 여물고 단단해져야 하는데, 아니 사는 일이 소설 쓰는 것을 닮아 시간이 지날수록 성숙하고 견고해야 할 것인데, 일상도 소설도 늘 미진하기만 한 나는 그 시절처럼 매일 시집을 펼쳐 든다."(192쪽) 


탄산을 왕창 삼킨 것처럼 식도가 알싸했다. 눈 밑에서 자꾸만 무언가 밀고 올라와 누르기 힘들었다. 


삶은 고단하다. 그리고 최근의 생활은 내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다. 미래를 생각해 시작했던 일이지만, 묵직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그 짜투리의 시간이 점점 나를 잡아삼켰다. 발목을 붙잡는 질척거리는 나날이 내 미련같아서 버릴수도 없었다. 


간만에 갖는 '숨 쉬는 시간(나는 가끔 오롯이 글을 쓰는 시간에만 숨을 쉬고있다는 느낌을 받는다.)'에 그동안 내가 얼마나 메말라 있었는지 느껴졌다. 거미줄처럼 갈라진 땅에 내린 단비가 이토록 반가울까. 수십 년간 머리속으로만 그리던 가족을 다시 만난 마음이 이럴까. 감정은 치미는데, 글로 다하지 못하는 마음이 속상하다. 


작가님의 이 문장이 테트리스의 마지막 퍼즐처럼 내 마음에 딱 알맞았다. 왜 내 글은 여물고 단단해지지 않을까. 쓸 수록 나아진다는 말은 정말일까. 이렇게 좋은 글을 쓰신 작가님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다는 사실은 큰 위안이 되었다. 나를 의심하고, 일상에 지쳐갔던 날에서 잠시 빗겨난 것 같았다. 


이 책이 생활과 일상에 지친, '읽고쓰니즘'에 대한 열망을 가진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좋겠다.




※ 작정단 6기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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