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박물관
오가와 요코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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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동품'이란, 희소가치가 있거나 유서깊은 오래된 기물 또는 서화 등의 미술품이다.


박물관은 이런 역사적인 골동품들을 수집, 보존, 전시하는 곳이다. 골동품과 잡동사니를 가르는 것은 무엇일까. 사소한 물건이라도 오랜 시간 묵힌다면 박물관에 전시 될 만한 '그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에게는 무척 의미있는 것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하찮게 여겨질 수도 있다. 무엇이 중요한지, 어떤 역사적인 의미를 가지는지, 인류의 발전에 도움이 될지 정하는 것도 사람이지 않은가.


어렸을 때는 박물관에 가는 날이 지루한 학교 공부를 할 필요 없고 바깥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기쁨으로 가슴이 벅찼다. 어른이 된 후에 다시 찾게 된 박물관은 오롯한 고요함 이었다. 박물관의 큐레이터 선생님들이 설명해 주는 단어들은 그저 귀에서 잘게 부서졌다.


그 동안 키가 커서 그럴까. 내려다 보는 전시실의 물건 하나 하나가 작은 침묵의 세계를 품고 있는 듯 보였다. 좀처럼 눈을 뗄 수 없었다. 유리창 너머 서 있는 내 손가락이 간질거리는 느낌이 생생했다. [침묵 박물관] 책장에 달라붙은 공기들은 그런 나를 알아보았는지, 재촉하듯 살갗을 문질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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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는 박물관을 만드는 일을 한다. "세계의 끝에서 굴러떨어진 물건들을 건져 올리고, 그 물건들이 만들어내는 부조화에서 가치와 의의를 찾아 내는"(7쪽) 것이다. 누군가 그에게 "상상도 못 할 만큼 장대하고, 이 세상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러나 반드시 필요한 박물관"(13쪽) 을 만드는 일을 의뢰받아 어떤 마을에 도착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의뢰인과의 첫 만남은 좀처럼 예측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곧 의뢰인의 마음에 들었다는 사실을 그녀의 딸인 소녀로 부터 전해듣게 되고, 일을 시작하게 된다. 


"내가 찾는 건 그 육체가 틀림없이 존재했다는 증거를 가장 생생하고 충실하게 기억하는 물건이야. 그게 없으면 살아온 세월이 송두리째 무너져 버리는 그 무엇, 죽음의 완결을 영원히 저지할 수 있는 그 무엇이지."(47쪽)


의뢰인이 보존하고자 하는 물건들은 모두, 유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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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유품 박물관을 만드는 이야기이다. 박물관에 둘 유품들을 주인공이 섬세하게 다루는 방법을 보여준다. 박물관의 물건들을 정리하는 기사가 실제로 물건을 수집하러 다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유품을 수집한 노파의 이야기를 정리하고, 직접 유품을 수집하는 활동을 하면서 점점 완성되어가는 박물관에 애착을 갖게 된다. 그리고 50년 만에 발생한 마을의 살인사건과 흰바위들소의 가죽을 입고 다니는 침묵의 수도승들의 이야기가 환상같기도, 으스스한 분위기를 통해 체온을 1도 이상 떨어뜨리기도 하면서 점점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든다.


여기에는 크게 세 가지 장소가 나온다.


화자인 '박물관 기사'가 형을 두고 온 바깥 세계, 박물관을 짓는 것을 의뢰한 의뢰인의 집이 있는 마을, 그리고 침묵의 수도원이다. 기차를 통해 마을로 도착한 화자는 마치 언제든 일이 끝나면 마을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었지만, 결국 계속 그 마을에 머무르게 된다. 


화자는 노파를 이해하고, 소녀와 손발을 맞추고, 정원사에게 받은 잭나이프를 사용하며 점점 마을과 융화된다. 그가 진심으로 이 곳에 스며든 것은 폭탄테러가 일어난 날, 침묵의 전도사의 유품을 손에 넣었을 때 느낀 "눈앞의 망자가 간절히 바라는 일을 해냈다는 안도감"(111쪽)을 느낀 순간이었을 것 같다. 바깥 세상의 형에게 보내는 편지는 답장이 오지 않지만, 마을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과 폭파사건, 열병, 유품을 정리하는 일들에게 정신을 빼앗길 때가 많다.


그런 그가 마침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어떤 진실에 다다랐을 때.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는 책장을 넘기다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유품은 천국에 가지 않아요. 그 반대죠. 이 세계에 영구히 남기 위해 박물관에 보존되는 거죠."(150쪽)


육체는 썩고, 말은 흩어지며, 기록은 소실된다. 소녀의 말처럼 생의 증거는 유품이라는 형태로 영원히 고정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작정단 6기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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