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국가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다나카 가쓰히코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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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작가님의 <바깥은 여름>이라는 작품에는, 언어의 동물원에 갇힌 사람들 이야기가 나온다. 보존을 위한답시고, 그 언어의 마지막 사용자를 한 곳에 모아놓은 이야기다. 내게는 마치, 언어의 죽음을 전시하는 행위처럼 느껴졌다.


'말을 할 줄 아는 것이 인간' 이라고 한다.


세상에는 몇 개의 언어가 있을까?






나는 막연하게, 나라가 있는 수만큼 언어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


어떤 경우에 특정한 말이 '하나의 말'이라고 판단하여 계산에 넣을 수 있는지, 다시 말해 말이라는 단위가 과연 어떤 기존으로 나뉠 수 있는지에 존재한다.


사람이라면 자신이 태어난 국가나 민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태어나기 전 자신의 어머니를 고를 수 없듯이, 이 세상에 태어난 아이들에게 말을 선택할 권리는 주어지지 않는다.






문법의 오류 따위는 문법이 발명되기 이전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F.마우트너


문법이 없었다면, 글을 쓰면서 이렇게 골머리를 앓지 않았을텐데.


하지만, 문법의 기원은 무엇보다 올바른 말을 전하기 위한 도구였다. 모어가 아닌 언어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말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한 해에도 얼마나 많은 신조어들이 생겨났다 사라지는 걸 보는가? 바다에서 정처없이 떠도는 배를 고정시킬 수 있는 장치가 닻이다. 문법은 마치 말의 닻 같은 존재라고 느껴졌다.






보통 국가적으로 사용하는 언어 외에 말을 모어로 하는 민족 그룹이 국내에 존재할 경우, 근대 국가는 그 국가의 언어 지위 뿐만 아니라 비국가어의 지위도 법률에 의해 규정해 놓는다. 프랑스어의 경우, 프랑스어 이외의 언어에 의한 작명을 금지한다. 


이 때문에,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사례도 나오게 되었다. 프랑스 국민이지만 프랑스어를 쓰지 않는 브르타뉴인이 브르타뉴어 이름을 아이에게 붙이자, 출생신고를 거부당한 것이다. 그 아이는 결국 청년이 되었는데, 그 뒤의 일은 알 수 없었다고 하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버지가 처음 거부당했을 때 프랑스어로 이름을 지었다면, 아이는 평범하게 자랄 수 있었을 것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라야 하듯이, 프랑스어를 쓰지 않더라도 프랑스에 사는 사람이라면 프랑스어로 된 이름을 지어주면 안 되었을까?


언어에도 지위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지만, 그에 따라 차별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언어가 유기체처럼 살아있다는 말은 변화하는 흐름 속에 있을 때 알 수 있다. 그 변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변했을지, 어떤 계기에 의해 한번에 일어났을까. 이런 현상에 생물주의적 순혈주의를 가지고 들어올 때 생기는 것이 인종주의다.


순수 대 잡종이라는 말은 과학시간에 멘델의 잡종 실험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부여해서 편견투성이의 가치관을 만들어낸다.


이디시어나 피진어, 크리올어를 통해 그런 편견과 직접 싸워낸 언어들을 통해 차별과 싸워나가는 언어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었다.


*


언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어머니에게서 세어나와 나에게 스며드는 것. 듣고 배운 것이 그것 뿐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고등동물인 이상, 인간에게는 언어가 필요하다. 그것이 꼭 말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그림이나 조각, 유물 등으로 우리는 언어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언어에 차이를 두고, 차별을 만드는 것도 인간이다. 새로운 말을 만난다는 것은 세로운 세상을 만난다는 것과 같은데 내가 알아듣지 못하고 나보다 열등하다고 규정지어서 차별에 가둬버린다는 것은 인간은 참 잔인한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국가와 언어는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다. 그 사람이 쓰는 언어에서 그 사람을 알 수 있듯이, 언어를 통해 국가도 알 수 있다. 진정으로 소통하고 문화와 사회에 쓰이는 말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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