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켄 리우 한국판 오리지널 단편집 1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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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래할 리 없는' 미래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미래를 만들어 가는 12개의 이야기.




[내게 필요했던 것은 그저 삶을 견디는 능력이었다.]




레나는 자신의 첫 아이를 버림으로써 첫번째 삶으로부터 도망쳤다. 그날 이후 그녀의 삶은 바꼈다. 누구나 삶에서 버리고,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그것을 실행한 레나의 용기가 이후의 그녀의 삶을 바꿨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가 사랑이든, 무엇이든 간에.


젊고 건강한 삶을 지속가능하게 만들어주는 플라스티네이션 기술을 가졌음에도 결국 인간은 필멸자의 길로 들어서는 걸까? 예전에 읽었던 뱀파이어 소설이 생각나기도 했다. 불멸자들은 필연적으로 죽음을 안식으로 여기게 되는건가.



심신오행


[네 뱃심을 믿으렴]





우리나라는 '밥심'이라는 말이 있는데, 중국에는 비슷한 말로 '뱃심'이라는 말이 있나보다. 


많은 아이들이 최근 아토피에 걸리는 이유가 너무 깨끗한 곳에서 살아서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일정한 수준의 박테리아를 접하면서 자라는 것은, 환경이 바뀌면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걸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비슷한 내용이 있어서 조금 놀랐다. 


행성간 여행은 더 먼 이야기 겠지만, 장내 박테리아 이야기는 어쩐지 '뱃심'이라는 단어와 함께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매듭 묶기


[내게는 매듭이 줄의 탄성을 변화시키는 방식, 조그마한 매듭 하나하나의 힘이 줄을 밀고 당겨서 책의 형태를 완성하는 방식을 머릿속에 그리는 재능이 있었다.]





지구위에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전혀 다른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에게는 도시가 미래의 것처럼 보일수도 있고, 황량하고 녹색이 없는 이상한 풍경처럼 보일수도 있다. 


보통 마을 정도의 규모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그런 소수 민족들은, 순박함이라는 DNA가 뿌리 깊이 새겨져 있기라도 한걸까? 도시화를 거쳐오며 황량함 속에서 믿음을 잃은, 지나치게 문명화 된 민족들은 그들 사이에 침투한 바이러스 같다는 느낌이었다. 그들에게 베푼 인정이 가져온 변화가 소에보의 민족들의 삶을 낫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을까?



사랑의 알고리즘


[사고는 허상일 뿐이다]






a에게 b를 주면 c행동을 하라고 한다. b를 줄때마다 a는 당연한 듯이 c를 한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프로그램의 하나였다면?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하는 전제가 성립할까? 어쩐지 등뒤로 솜털이 쭈뼛하게 서는 느낌이 들었다.


알고리즘은 미리 정해진 코스를 따라 실행되었고, 우리의 사고는, 그 알고리즘을 차례로 따라갔다. 



싱귤래리티 3부작

1.카르타고의 장미

[여행은 말이야. 우리 정신을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일 뿐이야.]


육체에 남은 상처는 아물거나 흉으로 사라질수 있다. 하지만 정신에 가해진 폭력은 그 정신을 오히려 육체에 가둬버린다. 그리고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여행을 좋아했던 리즈가 겪은 폭력은 그녀의 몸을 버리는 선택을 하게 만든다. 


성인기에 다다른 인공지능의 더 높은 단계를 위해서는 결국 인간의 뇌를 지도로 삼아 나아갈 수 밖에  없을까? 



2.뒤에 남은 사람들

[이것이야말로 생명이 살아가는 본래의 방식이다. 다음 세대에게 길을 양보하고 물러나며, 미래를 향하여 끝없이 분투하는 것. 앞으로 나아가는 것]






영생을 원하는 사람들의 최종 목표는 결국 정신을 업로드 하기에 이르렀다. 망자와 잔류자들. 나는 '남을' 사람들에 대한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업로드 된 사람들은 그저 세상을 떠돌아다니기만 할까? 아니다. 그들은, 망자들은 끊임없이 잔류자들을 설득하고 선동한다. 그들의 곁으로 오라고. 생명의 창조마저 흉내낸다. 의식으로 이루어진 아이들은 디지털 세계의 원주민이라고 부른다.


어쩌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부르는 디스토피아는 파라다이스로 떠나고 남은 인류에게 주어진 환경이 아닐까?



3.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인간의 피조물은 그 어떤 것도 영원토록 남지 못해.]


인간이 만든 것 중, 영원이라는 말을 약속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유한하기 때문에 아름답다. 멀리서 보는 자연이 항상 녹색과 파란색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빛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매일매일 자라나는 풀들과 곤충, 동물들의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것처럼. 


의식이 업로드 된다면 영원을 살 수 있게 된다. 그런 세상에서도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인간이 유한하기 때문일까?



*


켄 리우의 이야기 속에는 내가 있다. 사랑이 있고, 사람이 있다. 때로는 자연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문명의 이기로 나타나기도 한다. 먼 미래나 어딘지 알 수 없는 행성 위에서 실제로 인간을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SF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책은 장르가 다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글은 영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상상력 그 이상의 세계를 보여준다. 때로는 작가의 상상력에 내 의식이 미치지 못한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도 나는 SF라는 장르가 좋다. 작가가 만든 세상 중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이상하면서 현실의 파편 한 조각을 발견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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