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 속에 아픈 사람들 - 의학의 관점으로 본 문학
김애양 지음 / 재남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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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면, 이 사람이 정말 정상인 상태인 걸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책속의 세상은 우리의 세상을 투영하고 있다. 요즈음은 폭넓은 분야를 읽는 편이지만, 소설책만 읽었던 지난날에는 소설 속 사람들이 꼭 위대하거나 완벽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가끔 답답하기도 했다.

소설 속에서 만나는 인물들은 내가 있는 세상과 닮아서 그런지 읽다보면, 
'이 사람 진짜 어디 아픈거 아냐?'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위대하고 고결한 대 영웅의 서사시를 읽어도 인간적인 아픔 하나씩은 갖고 있기 마련이었다. 

때마침 신간도서로 이 책추천을 받았다.



명작 속에 아픈 사람들, 이라니.
내가 읽었던, 읽지 못했던 수 많은 책들 속에도 분명 환자들은 많았을 것 같았다.



39명의 다양한 환자들이 나온다. 코바야지 타끼지 부터 몰리에르까지. 신체적으로 증상이 나타나는 병만 있는 것이 아니다. 꾀병, 부정 망상, 조현병, 건강염려증에 이르는 다양한 정신적 질환들도 다루고 있다. 주변에 꼭 몸 뿐만 아닌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이렇게 문학 속 질병도 있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이렇게 다양한 병들을 아우를 수 있는 작가가 누군지 궁금해졌다. 

김애양 작가님은 산부인과 개원의로 일하고 있으면서 한국의사수필가협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계신 분이라고 한다. 현실 속의 무료함과 어려움을 벗어나기 위해 독서를 하면서, 독서 활동 가운데 세계적인 작가들이 아픔을 이해하기 위해 질병을 차용한다는 사실을 보게 되어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자신의 직업에 오래 종사한 사람일수록, 직업병을 가지는 경우가 있다. 선생님, 변호사, 하다못해 나는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문이 열리면 인사를 해야 하는 직업병이 있었다.

그런데, 역시 의사분들의 직업병은 남 다른 것 같았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들이 어떤 질병을 차용하는지를 보시다니..! 





진료실을 찾는 환자들은 모두 자신만이 가장 불행한 것처럼 생각하기 일쑤입니다. 사소한 질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낙담하거나 불평하거나 누군가를 원망하기 십상입니다. 그런 환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질병의 보편성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작품 내용이 간결하게 소개되고, 작가의 짧은 에세이 같은 글, 작품을 쓴 작가의 배경이야기가 나온다. 

책을 읽을 때,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고 집중해서 읽는 부분이 작가님의 "작가의 말" 부분이다. 글을 쓸 때 어떤 생각이었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간단하게라도 이야기 해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걸 읽고 책을 읽으면 작가의 의도를 좀 더 잘 알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서도 작품의 작가 소개를 간단하게 해주는 부분이 좋았다. 작가가 작품을 쓰게 된 배경에는 보통 사회적인 상황이나 작가 개인이 겪은 일의 내용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작가 소개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배경을 알면 작품을 보는 눈이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이반일리치의 죽음
 - 레프 톨스토이_췌장암

이렇게 혼자 처절하게 아프다 죽어야하다니

이반 일리치가 사망하게 된 병은 "췌장암"으로 추정된다. 발병 후 6개월만에 사망하게 된 그는 죽음의 5단계를 겪는다.

췌장암과 이반 일리치가 겪는 죽음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면서도, 마치 어머니에게 들었던 잔소리 처럼 들리는 부분이 있었다.

담배를 끊고 고지방, 고칼로리 음식을 피하여 비만을 방지하고, 과일과 채소를 중심으로 하는 식생활 개선과 적당한 운동으로 암을 예방하는 습관을 가져야겠다.

이렇게 작품 마다 병에 대한 설명과 함께 예방방법을 이야기해 준다. 어쩐지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친근했다.





깨어진 거울
 - 아가사 크리스티_풍진

연쇄 살인의 단초

내가 좋아하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도 있어서 흥미로웠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 중에서 이상하게 미스 마플이 나온 소설을 많이 보지 못했는데, 미스 마플이 나오는 이야기였다. 90살이 된 미스 제인 마플이 결국 살해범을 밝혀내지만, 이들은 모두 죽은 뒤였다.

사건 중 중요하게 밝혀지는 이야기가, 살해범이 피해자에게 왜 복수를 하려했는가 하는 점이다. 피해자는 살해범에게 <풍진>을 옮겼고, 당시 임신중이던 살해범은 결국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고 만다.

요즘은 신생아 때 MMR 주사로 예방접종을 하지만, 당시는 예방접종이 없었던 만큼 더욱 취약했을 것이다. 그래도 인간을 죽인 것을 정당화 할 수 없다. 자식을 기형아가 되게 만든 여자를 만났다면, 나는 용서할 수 있을까?




우표 수집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_성홍열

성홍열을 앓았던 어린 시절의 잠깐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남자가 있다.

어렸을 때, 집중하던 취미 하나는 있었던 것 같다. 나의 경우에는 영화 포스터를 모으는 일이었는데. 아직까직도 책상 위에 꽂혀있다. 주말 오전이 되면 친구들이랑 삼삼오오 모여서 영화를 보고나면 항상 챙겨오곤 했는데, 가끔 꺼내서 볼때면 그때 봤던 영화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런 추억을 송두리째 빼앗겨 버렸으니 그 후의 성격을 바꿔버릴 만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성적으로 우표를 모으던 카라스는 성홍열을 앓던 동안 누군가 자신의 우표를 다 치워버린 것을 알게 된다. 함께 모으던 친구를 오해해서 인간에 대한 믿음 자체를 잃어버린다. 예순 살이 넘은 카라스는, 되찾은 우표를 앞에 두고 인생을 다시 반추하게 된다.



아픈 것은 무섭다. 몸이 아프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삶에 대한 의지도 꺾어버리고, 하고 싶은 것들을 내팽겨치게 만드니까. 그런데 책에서 보여준 다양한 질병들이 어쩌면 아주 조금, 질병에 대한 두려움을 희석시켜 주는 것 같기도 하다. 

누구도 아픈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있음의 근거로 받아들이고 꿋꿋하게 이겨 나가길.

질병을 이겨나가는 것도 결국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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