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가 보통 사람들의 귀에 호소했다면 에라스뮈스는 교양인들의 관심에 호소했다. 교회의 개혁을 원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이 동일했으나 에라스뮈스는 학문을 통한 점진적인 개혁을 원한 반면 루터는 복음적 열정에 바탕을 둔 투쟁의 노선을 걸었다. (옮긴이의 말, p.8)그리하여 기발한 재치로 이 세상을 놀라게 하기보다는 이 세상을 깊이 명상하면서 세상사를 비난하며 자기 자신의 수양을 닦는 데 더 익숙했다.(p.30)오로지 어리석음만이 인생의 치료약이다. 실수를 하고, 오해를 하고, 뭘 모르면서 살아가는 것은 인간적인 것이다...... 여러가지 가치 있는 사회적 성질에는 약간의 어리석음이 가미되어 있다. 인자함, 자상함, 남을 인정해 주고 존중하려는 마음. 알면서도 모르는 체하는 마음, 그것이 어리석음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그러나 아렇게 하자면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p.162-163)그 지속적인 가치는 어리석음의 지혜요, 지혜가 어리석음이라고 우리를 납득시키는 문장들에 있다. 에라스뮈스는 교조적 논리의 비현실성을 잘 알고 있었다. 신앙의 도그마에서 나온 일관된 사상은 결국 불합리성으로 추락한다는 것을 꿰뚫어보았다. (p.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