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 평전 - 천재의 의무 Meaning of Life 시리즈 8
레이 몽크 지음, 남기창 옮김 / 필로소픽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왜 우리는 천재에게 매혹되는가?
그가 이룩해 놓은 업적에 대한 찬사인가?
그의 남다른 삶의 궤적에 대한 호기심인가?

이 책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 중 한명으로 손꼽히는
분석철학의 대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평전이다.
영국의 젊은 작가에게 주어지는 아무개상을 받았다는데
얼마나 권위있는 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읽다보면 틀림없이 끝내주는 상일 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비트겐슈타인의 명성과 몇몇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나
정작 그의 철학을 이해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점이 신화를 구축하는데 일조했을지도 모른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자체가 난해하기도 하거니와
전기철학과 후기철학간의 견해차이가 크고
그나마 남긴 저작도 몇권 안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 인물의 평전을 읽는 것이
그 인물의 공적 삶과 사적 삶,
사상까지 복합적으로 결합된 총체적 인물상을 알고 싶기 때문이라면
저자는 이 점에서 탁월하게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철학자를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그려내 준다.

「논리철학논고」로 대표되며 언어의 본질적 구조를 통해
기존 논리학 체계를 분석하여 당위처럼 받아들여진 명제들이
실은 지극히 허약한 지반을 딛고 있음을 밝혀낸 전기철학부터

「철학적 탐구」로 대표되는 언어를 논리적 구조물이 아닌
연관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언어게임의 규칙들로 파악하여
모든 학문체계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려 한 후기철학까지
저자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체계의 변천사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동시에 저자는 비트겐슈타인의 파란만장한 삶,
오스트리아의 유대인으로서 직접 참전해 겪은 세계대전의 경험,
케임브리지의 철학교수로서 학계와 동료들과 겪은 애증관계,
몇 차례의 연애사를 통한 사적 삶까지
그의 격렬하면서도 치열했던 삶을 흥미롭게 그려낸다.

한 텍스트가 다른 텍스트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레이 몽크의 경우 바이닝거의 저서를 통해
비트겐슈타인의 삶과 철학을 조명한다.
저자가 보기에 비트겐슈타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Duty of Genius"이다.

"진정으로 위대한 일을 하든지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않든지"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죽는게 낫다는 극단적 완벽주의가
비트겐슈타인을 도달하기가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점,
철학에서 모든 불명료한 것을 제거하고 논리적으로 완벽한 반석 위에 세우겠다는 목표로 몰아붙인다.

이 집착에 가까운 자의식은 철학 뿐이 아닌 삶에도 적용된다.
비트겐슈타인의 지극히 이기적인 까다로운 성격,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고립된 삶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지적 토론이 가능한 동료를 갈구하는 이중성,
자신의 철학이 이해받지 못하리라는 불안감,
정신적 사랑과 육체적 욕망의 철저한 분리,
강단철학의 부르주아적 안이함과 하층계급의 무지함에
동시에 환멸을 느끼면서 겪는 고립감이
그의 일상적 행복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그는 생애 내내 금욕주의에 따른 죄책감으로 고통받는다.

저자의 말대로 비트겐슈타인의 삶은 "본성과의 계속되는 전투"였고
그는 용감하게 싸웠고 아름답게 패배했다.
철학에서도 삶에서도 매순간 광기와의 경계선에 서 있는 듯
극단까지 밀어붙인 그의 삶은 '천재의 전형(러셀)'이란 수식어 없이도
충격적이면서도 감동적이다.

책을 덮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진다.
좀처럼 느끼기 힘든 소중한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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