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4 - 무슬림의 역습과 인간 살라딘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4
김태권 글.그림 / 비아북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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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권의 시리즈로 이어지는 책의 경우 빨리 후속권이 나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게 하는 책이 있다. 또한 휙휙 넘어가는 책장이 너무도 아까워 일부러 뜸을 들여가며 천천히 보려 노력하면서도 동시에 이어지는 뒷내용에 대한 궁금증을 참기 힘들어지는 책이 있다. 특별히 애서가가 아니더라도 이런 책을 만난다는 것은 큰 행운일 것이다.

내게는 다행히도 이 두가지에 다 해당되는 책이 있다. 바로 현재 4권까지 나와있는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이다. 이 책은 학창시절 세계사 시간에 한번쯤 들어는 봤으나 잘 알지 못했거나 서구의 관점으로만 바라보았던 십자군 전쟁을 새로운 시각으로 정리한 만화책이다. 1권은 군중십자군과 은자 피에로를 중심으로 십자군 전쟁의 발단을 다루었고 2권은 2차 십자군, 3권의 예루살렘 왕국의 흥망을 거쳐 최근 발간된 4권에는 2차 십자군의 실패와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2003년에 첫권이 나왔으니 거의 10년에 걸쳐 계속되고 있는 시리즈물인데 작가가 후속권 작업이 늦어지거나 다른 작품을 그릴 때는 [십자군 이야기]의 후속권을 기다리는 독자들이 원성과 불안감을 토로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저자가 수많은 역사적 사건 중 ‘십자군 전쟁’을 그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가 처음 발간된 해는 2003년. 바로 그 전세계에 ‘충격과 공포’를 던진 이라크 전쟁이 발발한 해이다. 미국이 옛 중세의 십자군 전쟁을 떠올리며 ‘성전’이라 명명한 이 전쟁은 서방이 아닌 제3세계에는 의도와는 정반대로 미국이 ‘악의 축’으로 지목한 이슬람에 대한 동정과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동시에 학교에서 배운 세계사적 지식으로는 용감무쌍한 기독교 기사들이 야만족 이단아들을 물리친 영웅담 정도로 알고 있던 십자군 전쟁의 진실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었다. 이슬람에 대한, 혹은 이슬람의 시각에서 쓰여진 많은 책들이 출간되기 시작했고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도 그 중 하나였다. 저자는 1권 프롤로그를 통해 편협한 종교관과 경제적 탐욕으로 전쟁을 일으킨 미국의 부시 정권을 비판했고 기존의 서구식 관점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역사를 보여주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물론 저자가 아무리 많은 문헌자료를 참고하고 균형된 시각을 갖추려 노력한다고 해도 독자들 중에서는 역시 십자군은 악으로, 이슬람은 선으로 묘사하는 편향된 이슬람적 시각이 아니냐는 반발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역사에 대한 완벽한 객관적 시각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분명히 가해자가 있는데도 기계적인양비론만을 고집하는 것은 올바른 일일까? 그것은 결국 강자에 대한 면죄부가 아닐까? 저자가 이슬람에 대해 우호적인 시각으로 십자군 전쟁을 풀어나가느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적 취향이나 왜곡된 조작이 아니다. 모든 역사가는 자신 고유의 관점으로 역사를 기술하나 이 관점은 엄격하고 객관적인 사실 탐구를 통해 도출된다. 특정한 시각을 갖는다는 것이 모두 거짓인 것은 아니다. 저자 역시 자신의 관점을 확립하기 위해 수많은 문헌과 자료들을 탐구한다. 그 결과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는 기계적 균형 대신 합리적 역사 인식을 갖추게 된다. 저자의 역사인식 중 또하나 돋보이는 것은 십자군 전쟁이 영웅담이 되지 않도록 기울이는 노력이다. 예술작품에서 폭력을 다루는 올바른 태도는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인식시켜 주는 것이라고 한다. 저자 역시 만화 내내 몇몇 승리자의 무용담이 아닌 전쟁의 참혹함과 민중들의 고난에 포커스를 맞춘다.

이 책의 또다른 장점은 이것이 글이 아닌 만화로 그려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쉽고 재미있다는 차원을 넘어선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는 ‘읽는’책이 아니라 ‘보는’책이다. 글로는 불가능한 표현들이 만화이기에 가능하다. 이 책은 십자군 전쟁의 발단과 전개 뿐만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환경, 의복, 문화적 배경을 함께 보여준다. 저자의 세심한 고증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생동감있는 이야기 전개와 현재를 풍자한 유머들도 만화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어렵고 복잡한 역사를 만화라는 매체를 통해 쉽게 풀어보겠다는 시도는 예전에도 심심찮게 있어 왔다. 역사 뿐만이 아니라 교양만화, 지식만화를 표방하는 책들 역시 많이 출간되었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이 열혈 매니아들을 거느리며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말하자면 이 책이 쉽지 않으면서 재미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내용을 쉽게 다루는 잘못을 범하지 않는다. 내용은 물론이거니와 그림의 배경, 등장인물의 의복까지 당시 상황을 고증해내기 위해 많은 자료를 참고하고 다양한 관점을 모두 수용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지식만화’가 갖춰야 할 신뢰성과 재미를 독자들에게 검증받은 셈이다. 내용적으로는 저자의 역사인식과 통찰력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고 형식적으로는 글이 할 수 없는 만화만의 장점을 십분 발휘했다. 이 책은 알찬 내용과 참신한 형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셈이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는 기존의 편향된 역사 관념에 벗어나 우리가 진실에 다가가는 것을 도와줄 뿐만 아니라 만화라는 형식이 가지는 힘이 유감없이 발휘된 책이다. 듣기로 이 시리즈는 6권이 완결편이라 한다. 후속권을 기다리는 마음과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서로 교차하는 것은 모든 독자의 공통된 바램일 것이다. 아무쪼록 작가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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