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의 탄생 - 호구력 만렙이 쓴 신랄한 자기분석
조정아 지음 / 행복에너지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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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러시아 동화를 읽다 보면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인물, 바보 이반이 있었다. 한없이 착하고 희생적이어서 손해만 보던 바보같은 사람. 러시아에는 이런 '성스러운 바보'를 일컫는 유로지비라는 말이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보다 보면 이렇게 주변인들에게 당하며 늘상 양보하고 손해만 보는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는 수많은 이들을 볼 수 있다. 유로지와 이들이 다른 점은 유로지비는 자신의 의지로, 자신이 원해서 바보를 자처하고 남들이 뭐라 하든 상관하지 않는다면 "나는 왜 이럴까?"라며 자신을 탓하는 우리 주변의 수많은 바보들은 전혀 자의가 아닌데도 남들의 시선이 두려워 착한 척 하다가 홧병에 걸려버린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들을 '호구'라고 부른다.

아마도 주위에 물어보면 10명 중 반 이상은 스스로를 '호구'라고 자처하지 않을까? 실제로 호구일 수도 있고 조금의 손해에도 민감해서 늘상 자신을 호구라고 채근할 수도 있다. 아무튼, 세상을 살면서 호구짓을 한번도 안 해 본 사람은 드물지도 모른다.

그래서 "호구의 탄생"은 제목부터 친밀하게 다가온다. 책 속에는 수많은 호구들이 등장한다. 정이 없던 부모 때문에, 어려웠던 가정환경 때문에. 너무 잘난 형제자매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자존감이 떨어진 상태로 사회에 나와 포식자들의 밥이 되어버린 호구들. 답답해서 "왜 그렇게 사냐?"라며 닦달하고도 싶지만 돌아보면 나 역시 그들과 같은 종족인 호구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작가 역시 수많은 호구들의 사례를 거론하는 것을 넘어서 자신도 호구라는 솔직한 고백을 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 제시하는 자신을 좀 더 아끼고, 아닌 것을 확실히 아니라고 말하자는 조언은 일방적이 가르침이 아니라 손잡아주고 함께 극복해 보자는 격려처럼 느껴진다.

성격을 바꾸는 것도 환경을 바꾸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바닥에 떨어져 납작해져 버린 자존감을 주워 일으키는 것은 메말라버린 식물을 살려내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막막한 일일 것이다. 그래도 이 책을 읽다보면 나만 호구인 게 아니었다는 안도감과 함께 이 땅의 수많은 호구들에게 연대의식을 느낄 수가 있다. 본인이 호구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 원인을 탐색하는 것, 본인이 처해 있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이를 극복할 용기를 가지는 것만으로도 호구에서 탈피하는 첫 걸음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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