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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시작한 거 딱, 100일만 달려 볼게요
이선우 지음 / 설렘(SEOLREM) / 2021년 4월
평점 :
지금 우리는 기약도 없이 마스크를 낀 채 대화를 자제하고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공포와 싸우고 있다. 지금껏 경험해 본 경제위기와는 다른 실존적 삶의 위기에 봉착해 있는 우리들에게 하루하루를 견뎌내며 살아가는 이웃들의 모습은 새로운 교과서와 같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주는 이가 없고, 하면 안 되는 수칙이 난무한 가운데 기다리던 책이 왔다.
#이왕시작한거딱100일만달려볼게요 부제는 -나이 50세, 저질 체력과 갱년기 극복을 위한 100일 달리기-다. 목차에 매일의 달리기 기록이 빼곡하다. 책 날개에 1쇄 발행일이 4월 10일로 찍혀있다. 태어난지 이틀 된 따끈따끈한 신생아다. 코로나시대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이 시대의 기록물이자 일거리를 잃어버린 직업인의 절절한 분투기다. 슬프지는 않다. 달리기 기록에는 자신을 통찰하는 사유가 있고 생동감과 즐거움이 묻어난다.
먹거리 산업과 과학기술은 바이러스 한파를 맞지 않았다. 세계적 전자기술을 보유한 대기업은 사상 최대의 매출을 기록했다고 하고 외식 물류산업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코로나19는 다중모임을 차단함으로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완충공간을 만들어 낸다. 모일 수 없고 만날 수 없다.
#이선우작가 는 대중강연 강사로 코로나의 지속과 함께 줄줄이 강의 취소라는 반갑지 않은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만약에 내가 하루 아침에 무직자가 된다면 아침 일찍 일어날 이유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시간이 많으면 자신의 빈틈이 더 잘 보이고 빈틈은 확대되어 무기력으로 이어지는 건 시간 문제일 것이다.
책의 첫머리에 친구장례식에 모인 80대 노인들이 모터싸이클을 타고 13일간 국토종단을 한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살아 있기에 살아야 하는지 아직도 꿈 꿀 자유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80세에게만 유효한 질문은 아닐것이다. 요양원에 살던 100세 노인이 창문 넘어 도망쳐 모험을 실컷 즐기고 죽는다는 요나스 요나손의 소설이 생각났다.
50에 받은 박사학위로 인생의 꽃길을 그렸던 그녀는 운동화 끈을 조이기 시작했다. 시작은 그렇게 무기력하게 슬픔의 시간을 보내기 싫어 달렸고 다음에는 오기로 달렸고 결국 100일을 달렸다. 매일의 달리기 기록에는 달리는 이유가 없었다. 그냥 달린다. 러너스하이를 꿈꿨지만 오지 않았고 마라톤 애호가 하루키가 경험한 러너스 블루를 경험하면서 그냥 달린다.
달리기 일정 중에 특히 내 마음을 뛰게 한 것은 달리기 명상이었다. 달리다 보니 시간과 공간의 한계 너머에 이르렀다는 부분이 있다. 영원을 향해 나아가듯 편안한 상태. 달리기에서 그런 순간이 온다면 이것은 러너스하이보다 더한 쾌락이 아닐까 싶었다. 나는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시간과 정신을 온전히 투자하는 자만이 누릴수 있을 것이다.
명상은 현재의 나를 이기는 힘을 조절하는 것이다. 달리기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면 달리기 명상도 가능해질 것 같다. 기회가 되면 작가님의 목소리로 비법을 듣고 싶다.
동호대교, 올림픽공원, 광나루광장, 반포대교, 동작대교.. 익숙한 지명을 달리기 코스로 접하니 생생한 현장감이 느껴진다. 랜선 여행이 대안이 되는 세상이다. 책에 나오는 코스를 따라가면서 코로나를 극복하고 몸 만들기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진다. 가벼운 운동화를 한 켤레 사고 부드러운 강바람을 마주하며 잊었던 운동본능을 깨우러 밖으로 나가고싶다.
#42. 이왕 시작한 거 딱, 100일만 달려.. : 네이버블로그 (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