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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 흙수저와 정서적 금수저 - 최성애.조벽 교수가 전하는 애착 심리학
최성애.조벽 지음 / 해냄 / 2018년 1월
평점 :
근래 우리 사회에 수저 논란이 일었다. 누구는 금수저인데, 나는 흙수저다. 나는 흙수저여서 학업과 알바를 병행하느라 성적도 시원찮고, 어학연수는 꿈도 못꾸고 알바해서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느라 시간이 없어서 인턴으로 경험도 못 쌓았고, 취업도 못하는데, 누구는 금수저여서 여유있게 대학생활을 하며 좋은 성적 받고 각종 국내외 인턴십과 다양한 경험으로 취업도 한방에 해결한다는 식의 이야기는 드라마 속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흙수저와 금수저는 경제적 자본을 의미한다. 자신이 노력하고 수고하여 얻어낸 것이 아닌, 운이 좋게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을 말한다. 2015년 무렵부터 유행하여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사회 이론이 되었다. 이는 영어 표현 중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다(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는 말에서 유래된 듯 하다. 부유한 서구인들이 은식기를 사용한 것에서 생겨난 표현으로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자신의 사회적, 경제적 계급이 결정되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빈부 격차와 청년 실업 등의 사회 문제에 대해서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과는 무관하게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출발선이 달라지는 현실에 대한 자조적인 풍자의 한 부분을 차지했다. 돈 많은 부모도 능력이라는 어느 말타는 금수저의 발언에서 절정을 이뤘다.
그런데, 여기에서 작은 반전이 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것 같았지만 불행한 삶을 사는 경우가 의외로 많고, 요즘 같은 물질만능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흙수저로 태어나 불쌍하게 보였지만 알콩달콩 행복하게 열심히 사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정서적인 흙수저와 금수저로 설명한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물질적인 풍요만이 아니라 마음의 풍요이며, 자기다움을 발현하며 행복을 누리는 것, 인생을 가치롭게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서적인 흙수저가 되는 경우는 어릴 적 양육 과정에서 건강한 애착이 형성되지 않고 손상을 입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애착이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깊고 지속적인 유대감을 의미하는데, 어릴 적 주양육자와 안정적이고 신뢰로운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다면 애착 손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 책에서 현대 사회는 부모가 자녀에게 제공해야 할 기본적인 부모의 역할마저 ‘외주’를 주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한다. 양육을 어린이집에, 도우미에게, 학원에, 스마트폰에 맡긴다는 것이다. 이러한 양육의 외주화에 따른 문제는 개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애착 손상이 된 사람이 성장하면서 많은 사회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학생 때는 학교 폭력 등의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많고, 성인이 되어서는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거나 알콜 중독이나 범죄에 연루되는 등의 사회 불안 요소가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것은 많은 사회적 손실과 비용을 발생시킨다. 결국 낳기만 하면 국가가 키우겠다는 말은 전근대적인 생각인 것이다. 양육비를 어린이집에 줄 것이 아니다. 부모가 자녀와 좀 더 충분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정책적으로 지원해 줄 필요가 있다. 법으로 강제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처음엔 많은 비용이 발생하겠지만 길게 보면 더 많은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더 생산적이며 건강한 사회를 이루어 갈 수 있다.
직원들의 복지를 향상시키고 근무시간을 단축시켜서 가정 생활에 충실하도록 했더니 오히려 업무 능률이 향상되고 생산성이 좋아졌다는 사업체의 사례를 종종 접할 수 있듯이, 우리 사회가 보다 멀리 바라보고 결정했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부모들이 이 책을 읽어도 좋겠지만, 정부 관계자나 경영자들이 읽어도 유익하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