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얼굴
제임스 설터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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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랜드는 교회 지붕에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어쩐지 산을 닮은 뾰족한 지붕에서 그는 얼마간의 위로를 받았던 건지도 모른다. 지붕에서 발을 헛디뎌 떨어질 뻔한 게리를 구해주면서 그가 산에서 다시 누군가를 구하게 될 것이라 예감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는 그런 앞날을 생각할 만큼 야심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저 지붕이 거기 있기에,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야 했기에 그 곳에 올랐을 뿐인지도 모른다. 산이 거기 있기에 오를 뿐인 것처럼.


그래서 결국 랜드는 산이 있는 그 곳으로 향했고, 산을 올랐으며, 산을 내려왔다. 우리의 삶도 그리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태어났고, 자랐고, 늙어가고, 언젠가는 삶에서 내려오게 된다. 산을 오르며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내려오며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누군가를 구해주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구원받기도 한다.


이렇게 산에서 많은 사람과 조우하더라도 결국 가장 많이 만나는 얼굴은 나 자신의 얼굴이다. 산기슭에서, 암벽에서, 등성이에서, 꼭대기에서 우리가 산의 얼굴과 마주할 때마다 우리는 자신의 얼굴과 마주한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등산은, 삶은 고독하다. 고독한 얼굴로 우리는 고독한 얼굴을 마주하는 것 아닐까.


시나리오를 소설화한 것이라 들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시퀀스, 씬이 눈에 보일 듯 잡히는 게 일품이다. 자질구레한 개연성들을 조금 뛰어넘어도 전혀 무리가 없는, 그야말로 영화적 진행의 교과서랄까. 약간은 공감각적인 느낌까지도 들었다.


나는 사실 체력이 좋지 못한 탓에 등산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데, 이 책을 읽고 산에 오르고 싶어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랜드처럼 산과 마주하고 싶어졌다. 산의 고독한 얼굴로 삶의 고독한 얼굴을 마주하고 싶어졌다. 산이 거기 있기에, 삶이 거기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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