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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의 통찰 - 국제질서에서 시대의 해답을 찾다
정세현 지음 / 푸른숲 / 2023년 2월
평점 :

권력이란 그런 거다. 골목대장들의 세계가 커지면 국가인데, 국민에게 행사하는 폭력을 정당화하는 명분들을 만들어 내는 국가권력자가 바로 정치인이다. 조폭의 세계는 좀 더 노골적이고, 국제사회는 말을 번드르르하게 하지만 원리는 똑같다. 국내정치에서는 독재권력이 폭력적으로 나오면 5.18 광주민주화운동처럼 들고 일어나기라도 하지만, 국제정치에서는 다른 나라끼리 손을 잡고 큰 나라한테 대드는 경우가 별로 없다.
모시는 버릇과 머릿속 대미 종속성
우리는 공부 좀 잘하면 무조건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 그리고 돌아와 교수를 하든 관리가 되든 이 나라를 운영하는 지배계층으로 바로 들어간다.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으니 미국이 보고자 하는 방향으로 보고 미국 중심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쪽으로 끌려간다. 오늘날 우리는 그런 불편한 진실을 의식하지 못한 채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가 제일 편하고 안전하다고 믿고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충직한 모범 국가로 익숙하게 살고 있다. 사실 그 뿌리를 따져 올라가 보면 우리는 과거 중국 중심의 국제질서에서도 충직한 모범 국가였다. 그 시절, 임금과 대신들은 스스로 중국에 무조건 복종하고 중국을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부당한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중국이 우리를 버리지 않으면 다행이고, 모든 것을 갖다 바치며 사는것이 국가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중국 문화권에서 나온 뒤에는 만 35년 동안 일본을 상국으로 모시며 일본 문화권에서 살았다. 조선이 중국을 모실 때와는 다르게 대한제국 사람들은 임시 정부를 만들고 독립운동도 했지만, 절대 다수의 백성들은 일본을 하늘처럼 모셨다. 그리고 일본을 패망시키고 우리 땅에 들어온 미국을 일본을 모시던 버릇대로 모시고 있다. 역사적 전통과 독립운동을 했던 기질을 바탕으로 독자적으로 잘살아 보려고 열심히 노력했고 그렇게 경제가 발전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모시는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벗어나야 하고 벗어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중략..)
국민이 정서나 의식 면에서 미국을 지금좀 다르게 대할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국민을 100퍼센트 다 설득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치지도자가 줏대 있는 외교를 하겠다, 대한민국 외교에 있어서 자국 중심성을 확립하겠다 하는 자세로 끌고 나가면 국민들도 자연스럽게 관념을 바꾸고 문화 자체를 그렇게 바꾸어 가야 한다고 여길것이다. 한국이 자주성을 가지려면 가장 먼저 한국 사회의 상층부를 형성하고 있는 지배계급이나 기득권층 또는 중산층 사람들이 자신들의 머릿속에 대미 종속성이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사실 나는 우리 국민들이 그것을 깨우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이 책을 쓰자는 데 동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