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야멘타 하인학교 (무선) - 야콥 폰 군텐 이야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
로베르트 발저 지음, 홍길표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바름은 흥분하기 쉽고, 올바르지 못함은 항상 의기 양양하고 뻔뻔스러운 침착함을 과시한다. 열정적으로 선의를 가지고 말하는 사람은 선함과 유익함 따위는 전혀 중요시하지 않는 자에게 지게 마련이다.  (32)


시대정신에 대해 내가 어떤 책임을 져야하는 것일까? 나는 시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다만 조용히 관찰을 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을 뿐이다. (78)


구성은 거칠고 서사는 불친절하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좋지 않은 소설인가? 그렇지 않다. 소설의 힘은 리얼리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극복해야 할 현실, 곧 도래하고 꿈꾸어야 할 세상을 그리는 것도 소설의 중요한 임무이다. 벤야멘타 하인학교에 입학한 야곱 폰 군텐의 이야기는 귀족 출신이면서도 하인이 되고자 하인학교에 입학한 한 개인의 이야기다. 끊임없이 세계를 관찰하는 주인공은 세상 풍파를 다 겪은 듯 자만심 가득한 말투로 관찰한 세계를 말(언어)로 옮기지만,  현실이라는 구조에 결코 순응적이라 할 수는 없는 인물이다. 작가는 주인공의 상황이나 심리를 정확히 묘사하지 않는 것으로 주인공이 처한 현실을 변주하고 비튼다. 때문에 여기서 우리는 소설의 핵심 메시지를 정확하게 꼽아 밝히기 어렵다. 그렇지만 우리가 투사도 아니요, 강건한 신념을 지닌 자도 아닌 야곱 폰 군텐의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는 것은 그의 말이 곧 내 눈 앞에 놓인 세계에 대한 발언이고 또 야곱 폰 군텐은 그 세계와 맞서며 정형화된 세상을 철저히 거부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보잘것 없는 인간이 주어진 세계를 받아들이기보다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것에서 나는 적어도 무모함을 느끼기보다, '용기'라고 하는 인간성의 소중한 측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