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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이문열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7월
평점 :
꽤 오래전에 홍경인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매우 충격을 받고 호기심에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오랜만에 출간 33주년 기념으로 책이 나온다고 해서 예전에 읽었던 내용도 가물가물해서 다시 한번 읽어 보기로 마음먹고 책을 다시 읽는데 역시나 세월의 흐름을 무시 할 수 없는지 기억하던 것과 내용이 다른 것들이 있어서 적잖은 충격을 먹기는 했지만 다시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서문에도 있듯이 두 작품으로 한 권을 묶는 중편 선빕편제에 맞춰 들소도 함께 읽는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초등학교 교실을 통해 엿본 권력에 대한 욕망과 실체를 댬고 있다면 들소는 알타미라 동굴의 그림(구석기시대)을 보고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신석기 시대의 권력과 사유의 발생을 흥미진진하게 표현하고 있다.
한병태(화자)는 서울의 학교에서 아버지의 좌천으로 인해 시골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다. 서울이란 대도시에 왔다는 과시와 시골학교에 대한 약간의 멸시를 갖고 있었던 병태는 막상 학교를 나가보니 서울학교를 다녔다는 것이 학교 선생님들과 아이들에게 전혀 위세거리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란다. 그뿐만 아니라 서울 학교와는 다른 반 분위기에도 당황하고 만다. 특히 담임선생님의 석대에 대한 절대적인 신임과 반 아이들의 석대에 대한 맹목적인 헌신이 더욱 병태를 당황하게 만든다. 나름 공부에도 자신이 있었고 서울학교를 다녔으며 아버지께서 비록 좌천은 되었다고 해도 나름 시골의 고위 공무원이라는 자랑거리가 있었기에 석대에 대한 권력에 대한 도전(물떠다 주지 않기, 석대에게 물건을 빼앗긴 친구도와주기등)을 하지만 그 어떤 것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절망한다. 특히 자신이 그토록 공정하고 이성적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아버지의 태도변화에 더 깊은 절망을 느낀다.
석대는 병태의 밀고(반아이의 아버지의 시계를 주고 돌려주지 않았다는 것을 담임샘게 말함)에 대해 분노하지만 초등학생답지 않은 생각으로 (석대는 병태반아이들보다 키도 크고 나이가 많은 것 같다) 병태를 직접적으로 괴롭히지 않고 반아이들로 하여금 병태를 괴롭혀 결국은 병태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사죄를 하게 만듦으로서 자신의 권력을 견고히 다진다.
병태는 석대에게 사죄함으로써 그동안의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석대는 그런 병태를 다른 아이들보다 더 잘해줌으로써 다시는 자신의 권력에 도전할 마음을 갖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런 석대의 몰락은 중학교 입시라는 문제에 부딪히면서 무너지고 만다. 그를 믿고 신뢰하고 그에게 커다란 권력을 물려준 담임이 바뀌고 젊은 담임선생님이 오시게 되고 그동안의 방식으로 아이들을 통제하던 석대의 권력은 무너지게 된다. 발단은 석대가 이름바꾸기(과목별로 공부잘하는 아이를 한명씩 정해 그 아이의 시험지에 자신의 이름을 쓰고 자신은 그 아이의 이름을 씀)를 통해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던 것이 들통나 버린 것이다.
새 담임선생님의 그동안 석대가 저질러온 잘못들을 아이들이 적게 하는데 자신의 행동이 매우 민주적인 것처럼 말을 하지만 실상은 그리 민주적이지 못하다. 그또한 석대가 아이들을 통제했던 폭력을 통하였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몰락한 석대의 모습을 보고 그동안 쌓여있던 크고 작은 분노를 표출하지만, 정작 석대의 권력에 도전했던 병태는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얼마나 강한자에게 약하고 약한자에게 강하며, 이기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다그치는 선생님의 폭력적인 모습은 보기 좋지 않았지만 담임 선생님이 하고자 했던 말은 다음과 같은 것이 아니였을까 싶다.
석대는 변한 아이들의 태도와 더이상 이곳에는 설자리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마을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몇십년이 흐른뒤 우연히 병태는 석대의 모습을 보게 된다.
어쩌면 작가는 권선징악이란 교훈적인 목적으로 석대의 인생이 결국은 시정잡배로 결론지어지게 하지 않았나 싶다. 이 부분이 영화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니였나 싶다. 기억이 희미하긴 하지만 영화에서는 마을을 떠난 석대가 어떻게 성공하여 자신을 마을에서 떠나게 했던 선생님의 장례식에 금의환양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책을 쓰던 시점에도 결론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아. 그래서 집필당시에 세가지 버전으로 결말을 썼다고 하는데 한개는 사라지고 없어서 다른 한개를 후일담으로 올려 놓았다.
후기는 석대가 마을을 떠나고 병태가 살아온 모습과 여름휴가에서 우연히 석대를 만나 도움을 받는 모습이 나와있다. 아마도 석대는 지역의 유명한 건달이 되지 않았나 싶다.
출간한지 33년이 지났지만 작가의 필력은 시대를 불문하고 언제나 통용된다는 것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느낄 수있었다.
책의 띠지에 있는 문구가 책의 내용을 적확하게 설명해준다고 할 수 있다.
"초등학교 교실을 통해 엿본 권력에 대한 욕망과 실체"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초중고를 다녀본 세대라면 책의 내용이 전혀 허구가 아니며 실제로 벌어졌다는 것을 기억한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가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한다면 실제 사회의 모습또한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안위를 위해 불합리한 것들에 애써 눈을 감으려 한다.
그런면에서 폭력적인 매한 가지인 6학년 담임샘이 아이들에게 한 말은 아이들이 이해할 수준의 눈높이에 맞지 않더라고 독자들에겐 큰 울림을 줄것 같다.
"만약 너희들이 계속해 그런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앞으로 맛보게 될 아픔은 오늘 내게 맞은 것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그런 너희들이 어른이 되어 만들 세상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내 아이들에게 끔찍한 세상을 주지 않기 않기 위해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