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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행이 더 늦기 전에
새벽보배 글.사진 / 행복우물 / 2021년 4월
평점 :
품절
여행을 좋아해서 여행 에세이도 많이 읽었고, 아이를 데리고 다녀온 여행기는 많이 봤는데, 부모님을 모시고 다녀온 여행 이야기는 흔치 않다. 더군다가 부모님을 두 분 모두를 모시고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여행을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래서 부모님과 함께 하는 다음 여행을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더욱 기대가 되었다.
저자가 처음으로 부모님과 함께 한 여행은 계획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우연히(?) 떠난 엄마와의 여행은 10년 동안 이어진 가족 여행의 시발점이 되었다.
평소 과하다 싶을 만큼 깔끔한 엄마가 이 침대에 눕기는커녕 앉을 수나 있을까. 나도 모르게 엄마의 눈치를 살폈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가 잠깐 자고 나갈 건데 이 정도면 충분하지. 집 떠나면 이런 데서도 자고 그러는 거야."
엄마는 자책하는 딸에게 마음이 쓰였는지, 과하다 싶을 정도로 괜찮은 척을 했다.
p.26, 27
어린 시절부터 나를 옭아매던 '인정욕구'가 여행에 와서까지 발동된 것이 문제였다. 엄마 아빠 앞에서 무엇이든 잘해 보이고 싶던 마음, 칭찬 받고 싶어 하던 마음이 여행에 와서까지 내 마음을 힘들게 하고 있었다.
p.185
부모님을 모시고 떠난 나의 첫 여행에서, 나도 부모님께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이 나를 괴롭혔던 것이리라. 그때는 몰랐던 내 마음을 이 책을 통해서 보게 된다.
나는 프놈펜을 떠올리면 퍼져버린 버스 말고는 기억나는 게 없는데 엄마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때의 모든 고생이 엄마에겐 그저 행복한 추억으로만 남았다. 딸의 짜증 폭탄에 눈치 보던 일부터 가뜩이나 속 타는 길 위에서 퍼져버린 버스 이야기까지도….
p.37
생각해 보니 굉장한 곳을 찾아내서 엄마 아빠를 모시고 온 것보다 우리가 함께 이곳에 온 것이 굉장한 일이었다.
p.187
부모님은 우리에게 완벽한 여행을 기대하시는 것이 아닐 텐데, 부모님을 좋은 곳에 모시고 가야하고, 맛있는 음식을 드시게 해드려야 한다는 부담감은 우리의 인정욕구가 부른 쓸데없는 걱정일지도 모른다. 그 당시에는 그 일로 싸우고 감정을 상할지라도 돌아오면 다 추억이 되니 말이다.
가족여행에서 좀 싸우면 어떤가. 우리 집만 그런 게 아니라 남의 집도 여행 가면 다 싸운다. 그게 정상이다. (중략) 다행인 건 가족은 절교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중략) 그깟 싸움이 겁나서 가족여행을 피한다면 평생 모를 이야기들이 너무 많다. 싸움을 각오하더라도 여행은 가야 한다.
p.300
저자의 부모님께서 여행을 즐기시는 모습을 보면, 싸움이 무서워서 놓치게 되는 부모님의 이야기가 얼마나 많을지 상상할 수 있다.
몽골에서 내내 비린내 나는 양고기에 질린 엄마가 말이 통하지 않는 가이드에게 소 흉내를 내며 '음뭬에~ 카우'라고 외치는 모습, 무서워서 못 타실 거라고 생각했던 패러세일링과 체험다빙을 마음껏 즐기시는 것도 모자라 아쉬워하시는 모습,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신이나신 모습, 모래사막에서 보드를 즐기시는 모습….
우리는 과연 부모님을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우리 부모님은 이 시기를 어떻게 견디고 극복하셨을까 싶은 순간들이 있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지금 내가 겪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참고 견디셔야 했을텐데 말이다. 그래서 내 앞에서 보이지 않으셨던, 그리고 어려서 보지 못했던 부모님의 모습이 많이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엄마와 아이들을 데리고 다녀왔던 무창포 여행에서 사륜 오토바이를 대여해서 탔다. 아이들이 좋아하길래 아이들을 태워주느라, 정작 엄마는 아주 짦은 시간 밖에 태워드리지를 못했다. 엄마는 손자들에게 양보하시느라 재미있어도 내색하지 않았던 것을 철없는 딸은 감지해내지 못했다. 그때 엄마한테 어찌나 미안하던지..
다시 엄마를 모시고 가야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막상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저자의 말대로 우리에겐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지 알 수가 없다.
이제 돈의 속박에서 좀 벗어나나 했더니 돈보다 무서운 시간의 제약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시간이 엄마 아빠에게서 젊음을 더 빼앗아 갈까 조급해진다.
p.101
눈으로 보는 관광은 더 연세가 드신 후에도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엄마 아빠와 걷고, 산에 오르고,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는 날은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무거워진 생각과 무거워진 몸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 하늘길은 막혀있을지라도, 가까운 곳으로라도 부모님과 함께 떠나보자. 생각했던 것보다 즐겁고 멋진 추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