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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품은 여행 - 여행만 있고 추억은 없는 당신에게
최선경 지음 / 프로방스 / 2021년 3월
평점 :
저자가 가족과 함께 대만 여행을 갔을 때,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그 소녀>의 배경이 되었던 '스펀'을 일정에 넣었다. 스펀은 타이페이에서 1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작은 도시인데 그리 멀지 않아 아직 어린 아이도 소화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었다. 하지만 택시가 큰 도로를 벗어나 시골길로 접어들 때만 해도 그녀는 알지 못했다. 스펀 가는 길이 꼬불꼬불한 산길을 넘어가야 하는 멀고도 험한 길이라는 것을.
그녀와 아들이 택시 안에서 나눈 대화가 재미있다. 당사자들은 정말 힘들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스펀에서 천등에 소원을 적고 하늘로 날리며 멀리 때문에 고생했던 기억도 함께 날아갔다. 아이는 천등이 하늘로 높이 날아가는 모습에 좋아 어쩔 줄 모르며 팔짝팔짝 뛰었고 스펀은 그녀와 아이가 대만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가 되었다.
스펀에서의 경험을 통해 그녀는 '아는 게 힘'이라는 말이 있지만,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도 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야기한다. 인생을 살다 보면 뭣 모르고 시도해 본 일들에서 의미있는 경험을 할 때가 많다고.
저자의 여행기를 읽으며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는 현실에서 대리만족을 한다. 그리고 나는 이런 여행을 해야지 하는 상상을 하며 현실을 잊어본다.
저자는 여행을 하는 도중에도 기록을 남겼고 여행이 끝나면 꼭 기록을 남겼다. 기록을 통해 스물 아홉의 자신을 만나며 '서른을 앞둔 당시의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추억을 소환한다.
인도원정대 후기를 쓰며 인도 여행을 한 번 더 다녀온 느낌이었다. 눈과 마음으로 여행지를 담아오고, 후기를 쓰면서 또 한 번 가슴에 담았다.
p.147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일정을 기록하고 여행지에 대해 조사해 보는 것, 그 자체가 여행에 색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의식이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p.194
여행을 가기 전이나 다녀와서 갑자기 기록을 잘 하게 되지는 않는다. 평소에 기록하는 습관을 쌓아야 한다.
p.195
실제로 글을 쓰면 쓸수록 쓸거리가 많아지는 경험을 한다.
p.209
기록은 관찰을 부른다고 했다. 일상을 기록하겠다는 의도가 있으면 특별한 순간이 더 자주 눈에 들어온다.
p.210
저자도 그랬지만 여행을 하다보면 많은 삶의 교훈들을 체험으로 알게 된다. 하지만 깨달음은 그때뿐, 기록하지 않으면 날아간다. 하지만 저자는 기록을 남겼고 덕분에 필요할 때마다 그 때의 추억, 감정, 그리고 깨달음도 소환해낸다.
나는 기록하고는 거리가 멀다. 천성이 게을러서인지 급한 성격에 글을 쓰는 것보다 말로 하는게 빠르고 편해서인지 사진을 정리하고 글을 쓰는 건 연애할 때나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아이들 사진도 10년 넘게 핸드폰과 컴퓨터에 저장된 채로 방치되어있다. 그나마 블로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조금씩 일상을 올리는 것이 나의 기록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도 여행할 때, 혹은 여행을 다녀와서 기록을 남겼으면 어땠을까? 나도 이렇게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고개를 든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꼭! 기록을 남기겠다고 다짐해본다.
그리고 저자처럼 여행을 떠나기 전, 일정을 기록하고 여행지에 대해 조사하며 여행지에 관련된 영화나 책도 읽어봐야지. 새로운 여행법도 배운다.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함께 떠나는 추억서라는 책표지의 문구에 이 한 마디를 더하고 싶다.
'여행기록에 대한 기록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