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미안하지가 않아?
어떻게든 미안하지가 않아.

니가 어떻게 이래.
내가 어떻게든 이래.

이 뻔뻔하고 완강한 승리 선언은 곧이어 세번째 판본으로 이어진다. 저 잔인하고 가차없는 필연성 앞에서 우리가 굴복해야 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사슴벌레식 문답은 패배의 수용과 굴복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는 자각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게 되고. 그렇다면 그것은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자의 체념과 절망 그리고 무엇보다 두려움의 표현과 직결된다. ‘어디로든 들어왔다. 어쩔래’라고 윽박지르는 것이 아니라, “어디로 들어왔는지 특정할 수가 없고 그래서 빠져나갈 길도 없다는 막막한 절망의 표현” “감당하기 힘든 두려움의 표현”이 된다. -251p-

냇가에 두부를 풀어 놓던 시절, 그는 찬란한 햇빛이 드는 봄날의 아침처럼 시원하면서도 밝았다. 지칠 줄도 멈출지도 모르는 그의 엔진은 무더운 여름에 그를 태웠다. 차가운 증류수는 색채를 잃은 가을을 만들었고 어둠이 드리운 긴 겨울 아래, 앙상한 나뭇가지 위를 따뜻한 눈이 덮었다. 감당할 수 없었던 계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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