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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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가장 탁월한 책 제목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벵하민 바라투트, 문학동네, 2022)>를 택할 것이다. ‘E=mc2’라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공식을 앞에 두고도 그 의미가 굳이 궁금하지 않은 문과인들과, 과학도들조차 어려워하는 ‘양자이론’을 다룬 소설을 연결시키는데 다분히 ‘서사적인’ 제목이 큰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멈출 때’라는 말이 가진 이중적인 의미가 이 소설전체를 관통하기 때문이다.


첫 번재 이야기 ‘프러시안 블루’를 만나자마자 작가의 명석함에 무릎을 쳤다. 괴링, 괴벨스, 히틀러 같은 대표적인 악의 화신들과,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과 같은 미의 상징을 소설의 전면에 배치하면서, 이 익숙함을 무기로 모든 독자를 일단 책속으로 불러 앉혀놓고, 서서히 과학이야기를 풀어간다. ‘그거 알아? 아우슈비츠에 아직도 푸른 흔적으로 남아있는 학살용 독가스 치클론과 고흐의 작품에 아름답게 수놓은 밤하늘에 사용된 ’프러시안 블루‘의 원료가 같은 물질이라는거?’ 이런 스토리를 대하고도 궁금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신선한 출발이다.


두 번째 작품 ‘슈바르츠 실트 특이점’에 들어서면 과학자의 대명사가 된 ‘아인슈타인’이 본격 등장하는데, 놀라운 사실은 아인슈타인도 풀지 못한 상대성이론의 해를 풀어낸 사람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가 바로 슈바르츠실트다. 그가 1차대전의 병참에서 피부병에 걸려 죽어가면서도 인류에게 전한 과학적 이론과 사회적 메시지는 더없이 묵직하다.‘거성이 연료를 다 써버려 붕괴하기 시작할 때처럼 너무 큰 질량이 매우 작은 면적에 집중될 때’(p48) ‘우주의 나머지 부분과 영영 단절되어 빠져나갈 수 없는 심연’(p48), 즉 괴물이 탄생한다. 이 ‘슈바르츠 실트 특이점’이라는 괴물은, 그가 살았던 시대에 나치의 출현이나 우리시대에 트럼프의 출현, 우크라이나 침공처럼 과학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님을 시사한다. 성찰하지 않는 인류에 대한 묵직한 한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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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 작품 '심장의 심장'은,1966년에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을 받았으나'(p94), '우리의 지적 진화를 앞당기기 위해 머나먼 태양계의 외계 문명에서 지구로 파견된 사람'(p94)같았다고 일컬어지는 수학천재 알렉산더 크로텐디크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수학적 우주의 핵심에 자리잡은 기이한 실체를 심장의 심장이라고 불렀다.'(p95)어쩌면 그의 '심장의 심장' 이론은 수학계의 '슈바르츠 실트 특이점' 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자신의 눈부신 개념이 '세상에 피해를 입힐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노심초사'(p97)했고, 자신이 추구하는 총체적 이해로부터 어떤 새로운 참상이 벌어져 '인류가 심장의 심장에 도달하면 무슨 짓을 저지르게'(p97)될지 늘 두려워했다. 그래서 모든 명성을 뒤로하고 오로지 '인류를 보호하기 위해서'(p110)세상으로 부터 달아난다. 그가 아인슈타인처럼 자기 연찬을 계속했다면 우리는 지금쯤 어떤 세상을 살고 있을까? 이것은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에 대한 서늘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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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작품에 이르러 표제작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를 만나게 되는데. 이 작품은 마치 양자역학계의 법거량을 다룬듯한 착각에 들게한다. 불교에서 화두타파와 깨달음의 경지를 인증받는 절차인 법거량을 실제 본 적이 있다. 그때 한국불교의 현존하는 고승의 법에 도전하는 한 젊은 스님의 모습이, 마치 이 소설에서 슈뢰딩거의 양자이론에 반기를 든 하이젠베르크 같았다. 아인슈타인조차 인정하려 들지않던 양자역학의 세계에 대해, '슈뢰딩거와 하이젠베르크'라는 두 천재는 각자의 방식으로 상호보완적인 결론에 이르렀으나, 슈뢰딩거는 결론에 이르는 과정을 불가지한 직관의 영역으로 남겼뒀고, 하이젠베르크는 수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불확정성의 원리라는 이론으로 정립시켰다. 하이젠베르크의 입장에서 슈뢰딩거는 세상을 이해하길 멈춘 , '용납할 수 없는 뒷걸음질'(p200)을 친 셈이었다. 그의 불확정성 이론은, 풀이가능한 방정식의 세계에 안주하는 결정론자들에게 내리치는 죽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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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작품인 '밤의 정원사'까지 읽고나면, 작가가 이해하려고 노력한 이 세상이 지금 어떤 위기앞에 놓였는지 절감하게 된다. '나무에서 나무로 퍼진 식물 역병'(p235)처럼, 선 채로 죽어가고 있다. 앞선 작품 '심장의 심장'에 나온 크로텐디크의 연구를 접한 뒤 수학자의 길을 포기한체 알콜중독자로 살고 있는 밤의 정원사는, 책의 말미에 '레몬나무가 어떻게 죽는지 아느냐'(p254)고 묻고 스스로 대답한다. '늙은 나무는 만일 벌목되지 않거나 가뭄, 질병, 무수한 해충, 균류, 역병의 공격으로 살아남으면 열매를 너무 많이 맺는 바람에 쓰러진다고.'(p254)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추지 말아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학은 여전히 '프러시안 블루'에서 처럼, 인류를 학살시킬 치클론으로도 ,식량문제를 해소시킬 질소비료와 아름다운 고흐의 안료로도 사용될 수 있다. 인류에게 미칠 혜택과 해악이 늘 공존한다. 이때 슈바르츠 실트나 크로텐디크, 하이젠베르크처럼 괴물의 탄생을 예견하고, 과정의 불확실성을 경계하며, 공공선을 위해 무엇을 멈추고, 무엇을 멈추지 않아야 할 것인지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면, '열매를 너무 많이 맺는 바람에 쓰러지는' 레몬 나무처럼, 세상은 선 채로 공멸하게 될 것이다. 부디 공멸말고, 우리 공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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