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phie's World: A Novel about the History of Philosophy (Paperback) - A Novel About the History of Philosophy
Gaarder, Jostein / Farrar Straus & Giroux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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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이 책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어쩐지 가벼운 ‘어린이용 철학입문서’ 정도일 것 같아 주문할 마음이 없었다가, 우연히 그냥 주문 리스트에 끼워 넣게 되었다. 하지만, 막상 받고 보니, 도대체 어느 나라에서 인쇄한 책이기에 이렇게 겉장도 초라하고 또 인쇄상태도 이 모양일까, 실망하여 그냥 구석에 처박아놓았었는데....(지금 막 안쪽 겉장을 들춰보니 printed in USA)

어린 소녀의 손에 들린 영문 모를 엽서로 시작하는 ‘너는 누구인가’ 식의 이야기는 이미 오래 전에 읽은 ‘죽은 철학자들의 카페’에서 경험한 터라 좀 진부한 느낌(하지만, 사실, 이 책이 그 카페 책보다 먼저 나왔으니, 그쪽이 모방 아닌가)이 들어 책을 덮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곧 이어 나오는 ‘통신강의’ 부분에서 번개를 느꼈다. 이거 보통 수준이 아니네. 이렇게 멋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다니.... 억지 스토리에 할 수 없이 끌려가는 것보다 이렇게 군소리 없이 정리해놓은 철학 강의. 어차피 그것이 바로 철학 책을 손에 드는 목적 아니던가.

소크라테스 이전의 옛 그리스인들의 사고체계는 이렇게 일방적 강의형식으로 진행되지만, 암흑시대 중세의 철학으로 넘어가면서, 이야기 스타일이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는 형식으로 바뀐다. 여기서부터, 이 Sophie의 세계에 Hilde의 아버지라는 ‘마술적 힘’과 ‘만화 같은 장면’들이 점점 더 자주 스며들게 되는데, 선생 Albert Knox는 알 듯 모를 듯 코멘트로 일관하며 이야기에 궁금증을 더해간다. 하지만, 강의 그 자체는, 마치 추임새 끼워 넣기가 판소리의 흥을 한층 더 돋우듯 한참 흥이 살아난 분위기로 데카르트, 스피노자, 버클리로 이어진다.

책의 중간 쯤, 사실 이 이야기는 Hilde의 아빠가 자기 딸의 15세 생일선물로 써나가고 있는 스토리이고, Sophie와 Knox는 이 이야기책에 등장하는 ‘도구로서의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반전이 나온다. 어떤 면에선 의미 있는 반전이라고나 할까. 신(Hilde 아빠)의 역할에 항거하는 우리 인간(Sophie와 Knox)들이란 존재. 한 걸음 더 나아가, 작가 Gaader의 손에 따라 움직이는 Hilde 아빠. 아니 거기서 더 나아가 작가 Gaarder라는 존재는? 칸트, 헤겔, 키에르케고르를 다루는 스승 Knox의 이야기에 이런 숙명적 존재의 한계와 운명론이 더 자주 섞여들기 시작한다.

사실 소설 속 인물이 작가의 의도에 항거하여 자신의 의지를 펼치려하는 그런 스타일의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철학 강의가 전문이었던 작가의 소설 역량에 한계가 드러난다고나 할까, 필연성도 없고 긴박감도 없는 Knox와 Sophie의 음모가 계속되며 이야기의 흐름이 이상해진다. 더구나 그 다음에 다루는 다윈 프로이트 더구나 빅뱅 이야기는 철학 사조와는 관계없는 상식 소개, 그 사이 잠깐 나오는 실존주의 철학은 수박 겉핥기 정도의 느낌.

책 시작 부분에서는 ‘죽은 철학자들의 카페’보다 훨씬 알찬 책이라 생각되었는데, 책을 덮는 지금 느낌은 오히려 그 반대가 된 이런 현상도 철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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