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칼 세이건이 1985년에 글래스고 대학교에서 행한 ‘자연 신학에 관한 기퍼드 강연’을 정리한 것이다. 자연 신학에 관한 기퍼드 강연은 스코틀랜드 출신 법률가 애덤 기퍼드 경의 유언과 기부금으로 시작되었으며 ‘넓은 의미에서의 자연 신학의 연구를 장려하고 보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자연 신학이란, 기적이 아니라 과학의 뒷받침을 받는 신학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이 강연은 신학의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근거를 마련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 일러두기
진정으로 경건한 사람이라면 무신론의 낭떠러지와
미신의 늪 사이에서 아주 힘든 길을 나아가게 마련이다.
- 플루타르코스
저는 미신이야말로 매우 간단한 것이라는 가설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미신은 한마디로 증거 없는 믿음입니다. 그럼 ‘증거’란 무엇일까요? 이 질문이야말로 이 강연에서 제가 여러분께 설명할 흥미로운 주제인 것입니다.
P.21~22
표면적으로는 따로따로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사물들 사이의 근원적인 상호 관계를 추구한다는 종교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에서 보건대, 과학과 종교의 목표는 결국 동일하다고, 또는 거의 동일하다고 저는 믿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두 가지 분야에서 진리에 접근하는 방식과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의 신빙성을 입증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P.22
수많은 종교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신들의 조상을 아주 크게 만들려고 노력한 바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스스로를 매우 작게 느끼도록 한 것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목표가 바로 그것이었다면, 그들은 굳이 허접한 우상들을 만들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작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싶다면야, 그냥 하늘을 올려다보면 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훈련을 거치고 나면 많은 사람들이 결국 종교적 감수성이란 불가피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는 합니다.
P.46~47
과학이 진보함에 따라, 하느님이 하는 일은 점점 더 줄어드는 듯합니다. 물론 우주는 아주 크기 때문에, 그나 그녀나 그분이나 그것(어떤 대명사로 부르건 간에)이 차지할 자리는 여럿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곳에서 나름 유익한 역할을 할 수도 있죠. 하지만 명백한 사실은, 우리의 눈앞에서 발전하고 있는 것이 이른바 ‘간극의 하느님(god of the gaps)’이라는 것입니다. 즉 최근까지도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하느님의 탓으로 돌려지는 것입니다. 그러나다가 얼마 후에 우리가 그것을 설명하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하느님의 영역에 있지 않은 것이 됩니다. 신학자들이 포기한 그것은 이제 근무 편성표에서 과학쪽으로 건너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을 봐 왔습니다. 이것은 사실상 하느님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니까 서양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하느님이 진짜 있다고 치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물론 저야 하느님이라는 단어를 단지 은유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이것은 곧 하느님이 이른바 프랑스 인들의 말마따나 ‘운 루아 페낭(아무것도 안 하는 왕)’으로 발전해 나갔다는 뜻입니다. 즉 우주를 돌아가게 만들고, 자연 법칙을 세운 다음, 이제는 은퇴하거나 또 어디론가 가버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른바 ‘부동의 원동자’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와 그리 다른 것이 아닙니다. 다만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런 부동의 원동자가 수십 가지나 있다고 생각했으며, 이것이 다신교에 대한 논증이 된다고 생각했다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물론 그의 이런 견해는 오늘날 종종 간과되지만 말입니다.
P.92~93
그들은 원시 바다 속에서 분자의 상호 작용을 통해 자동적으로 생명이 발생한다는 것은, 고물 하차장에 회오리바람이 휩쓸고 지나갔더니 자동적으로 보잉 747여객기 한 대가 조립되어 있더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것이야말로 정말 생생한 비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을 또한 매우 유용한 비유입니다. 보잉 747 여객기는 어느날 갑자기 완성품인 채로 항공업계에 불쑥 솟아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비행기는 오랜 진화적 연쇄의 최종 산물로서,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DC-3이라든지, 심지어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까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P.127
기적이란 우리가 기꺼이 믿고자 소망하는, 갖가지 종교적인 이야기들의 집합체입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기적인 줄로 알았던 것이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폭로되면 매우 분노해 마지않습니다. 이런 종류에 속하는 사례 - 물론 그런 사례는 수천가지가 있겠습니다만 - 가운데서도 가장 흥미로운 것 하나는 로마 가톨릭에 존재합니다. 로마 가톨릭에는 이른바 기적으로 주장되는 사건을 검증하기 위한 공식 절차가 있습니다. 이른바 ‘악마의 변호인 (devil’s advocate)’이라는 표현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악마의 변호인은 기적이라 주장되는 사건에 대한 대안적인 설명을 제시함으로써 그 증거나 얼마나 훌륭한지 여부를 알아보는 사람을 말합니다.
P.176~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