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기본 - 사람 속에서 사람답게 산다는 것
소노 아야코 지음, 김난주 옮김 / 펭귄카페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잘산다는 말이 물적 풍요로움으로 규정되어가는 이 시대에 정말 중요한 게 빠졌다고 안타까워하면서도 시대의 조류를 좇아가는 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루어가는 부정할 수 없는 삶의 방식일 것이다. 한 번 왔다 가는 인생,  잘산다는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면서도 정작 실생활에 있어서는 주변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기도 하면서 허탈과 우월을 마음에 담고 살아간다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을 해보곤 한다.

얼마전 TV에서 한 달에 20만 원만 벌고 돈벌이에 연연하지 않는 지리산에 사는 어떤 이의 삶을 본 적이 있다.

물질에 매이지 않는 그 사람을 부러워하면서도 '그는 지리산에 사니까' '책임져야 할 가족이 없으니까' 등등의 이유로 그는 그냥 특별한 어떤 부류라고 규정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도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고 가치 기준이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을 애써 외면한 나의 옹졸함이 그 판단에는 자리하고 있다.

 

내 감정을 거스른 이를 향히 '기본도 안된'이라고 규정하는 내 모습을 소노 아야코의 '인간의 기본'을 읽어가면서 자주 발견했다. 내가 생각한 기본이란 내 감정에 거스름에 대해 판단했던 게 아닐까 스스로 반성하기도 하면서 책을 읽어갔다.

아주 오래전 소노 아야코의 소설을 읽은 기억이 어슴프레하게 나는데 잔잔한 분위기가 오래 남아있었던 것 같다.

팔순을 넘긴 작가의 삶을 보는 지혜와 자세를 배우고 싶어 선택한 이 책에서 인간은 평등하지만 평등하지 않다는 그녀의 생각이 마음에 와닿았다. 평등을 외치지만 평등에 대한 개념도 제대로 정립하지 못한 채 평등은 그저 같은 것이라는 것으로 꾸역꾸역 틀을 짜는 일들이 허다하다는 생각을 나는 평소에 자주 하고 있다.

또 한 가지는 일종의 피해의식인지도 모르겠지만 일본 작가들의 책을 읽을 때면 전쟁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각을 민감하게 바라보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반딧불의 묘'라는 일본 애니를 보면서 전쟁의 피해자로 일본이 그려져서 경악에 가까운 감정을 가졌고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일본의 애니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찾아보다 전후 일본인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생겨났다는 것을 알고나서부터 그러한 증상이 더 심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일본은 원폭투하에 돋보기를 대고 자신들의 희생이라 생각하며 전쟁의 과정이나 원인, 자신들이 다른 나라를 갈취하고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잔혹함을 저지른 것은 생각하지 않는, 아니 바라보지 않는 정서가 바탕이 되어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피해의식이 바탕에 깔린 사회라는 것은 사실 기본과는 거리가 먼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면서 도덕의 잣대를 이리저리 대보기도 했다.

작가가 단체를 통해 도움을 주는 현장을 직접 찾아간다거나 삶의 진솔함을 찾아다니는 모습은 지치지 않는 열정과 사랑을 말해주는 것 같아 감탄스러웠고 우리와 비슷한듯 다른 일본의 살아가는 면모들과 작가의 자기 색이 분명한 권유들을 보면서 잘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기본을 지켜간다는 것, 자신과 다른 이를 소중히 생각하며 배려하고 다름을 인정하며 사랑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게 아닐까... 쉽지만 어려운 것 같은 책제목을 곱씹으며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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