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의 가해자들에게 - 학교 폭력의 기억을 안고 어른이 된 그들과의 인터뷰
씨리얼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0월
평점 :
네가 그날을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어. 어쩌면 진짜로 일어났던 일이 아닐지도 몰라. 그날 너랑 나랑 같은 버스를 타고 어딘가 가고 있었잖아. 그때 우린 왜 한 버스를 탔을까? 집 방향도 다른데 말이야. 야자를 빼먹고 나오는 길이었나? 아무튼 그날 우린 버스 맨 뒷좌석에 앉았고, 자리에 앉자마자 내가 엄청 놀랐지. 그때 네 뒤 버스 창문으로 보이는 달이 되게 컸거든. 슈퍼슈퍼슈퍼문 정도 되는 달이었어. 내가 놀라서 달 되게 크다고 달 좀 보라고 너한테 말했었는데. 그 큰 달이 우릴 계속 따라왔었는데.
ㅇㅇ아, 나는 이 이야기가 너무 좋아. 너랑 나랑 큰 달이 비추는 버스를 함께 탄 이야기 말이야. 졸업 후에도 슈퍼문이 뜬 날엔 종종 네 생각을 했어.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이 기억을 꺼내면 넌 내가 싫어질까? 조금 크리피하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그래도 언젠간 이 이야기를 해줘야지’. 이렇게 다짐했어.
그런데 오늘, 정말 오랜만에 너를 만났는데 어떤 말도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네가 그동안 간직하고 있었던 네 이야기를 해줬잖아. 네 말을 듣는데 나는 그냥 너무 미안한 거야. 그때의 너는 그렇게 힘들었는데, 나만 그 시절을 아름답고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나 봐. 네 말대로 내가 나서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은 아니었지. 그래도 내가 몰랐다는 게 너무 미안하고 그래. 너의 고통을 내가 달이니 버스니 하는 이야기로 포장해서는 안 되는 거잖아. 그래서 입을 다물었어.
ㅇㅇ아, 대신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내가 감히 너의 마음을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그래서 조심스럽지만, 한가지 확신하는 게 있거든. 네가 들려준 이야기 속 그 사람은 절대로 행복하지 않을 거야. 청소년기에 건강하지 못한 방법으로 친구관계를 맺고, 집단 내 권력을 휘둘렀던 사람은 평생을 고통 속에 살 거야. 겉으로는 웃고 행복해 보일지라도 그 속은 분명 지옥이야. 벗어날 수 없는 지옥. 이건 확실해.
여전히 그 사람을 떠올리면 화가 나고 열받는다는 너.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불행을 그 사람 앞에 가져다주고 싶다는 너. 그러면서도 이런 나쁜 소원을 빌면 안 될 것 같다고 고민하는 너. 그런 너를 둘러싼 생각들이 너를 많이 괴롭힐 것 같아. 어쩌면 지금 네 마음도 지옥일지 몰라. 하지만 너는 결국 버텨냈어. 난 너처럼 못했을 거야. 주위 사람에게 네 아픈 이야기를 터놓을 수 있을 정도로 넌 잘 버텨줬어. 그러니까 우리 나쁜 생각이 들더라도 잠깐 아프고 말자. 지옥에서 벗어나서 또 하루하루를 살아가자. 넌 그럴 수 있는 사람이니까. 전혀 찌질하지도 않고!! 정말 멋진 사람이니까.
이 편지는 한 책을 읽고 쓰기로 다짐했어. 네가 이 편지를 읽는 날이 올까? 이 편지가 네게 도움이 되긴 할까? 네가 조금이나마 편하게 잘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네가 매일매일 아주 달콤한 잠을 자고, 매일매일 기분 좋은 꿈을 꿨으면 좋겠어. 그렇게 되면 정말 좋을 것 같아.
미안해 ㅇㅇ아. 내가 너무 늦었지? 그동안 정말 고생했어. 그리고 고마워. 그 시절을 이겨내줘서. 나는 오늘 밤에도 네가 잘 자길 기도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