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다가가 포옹했다. 헤어스프레이의 달콤한 향이풍겼다. 그 향이 전하는 추억의 힘은 여전히, 오늘까지도, 그대로 내게 남아 있다. - P23
몇 분이 지나 누군가 간식을 가지고 들어온다. 조그만 빨대가 달린 조그만 사과 주스, 그리고 조그만 비닐에 싸인 조그만빵, 아이들 놀이방의 것과 똑같다. 이런 것들이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어요, 미쉬카 할머니. 짧은 보폭, 깜박 졸기, 조그만 간식거리들, 짧은 외출들, 짧은 방문들. 작아지고 축소되었지만, 완벽하게 규정된 삶. - P40
"사면서 처음으로 다른 누군가를 관심을 가지고 보살폈어. 나 말고 다른 사람 말이야. 그게 모든 것을 바꾸더라, 알겠니, 마리야. 다른 사람 때문에 두려울 수 있어, 자기가 아닌 다른사람 때문에. 그래도 그건 정말 큰 행운이란다." - P89
내가 졌다. 나는 그 사실을 안다. 나는 이렇게 상황이 확 달라지는 지점을 안다. 그 원인은 모르지만, 결과만은 가늠한다. 싸움에서 졌다. 그렇지만 포기해서는 안 된다. 절대 그럴 수 없다. 그렇지않으면 더더욱 나빠질 것이다. 끝없이 추락할 것이다. 싸워야만 한다. 단어 하나 하나. 필사적으로, 아무것도 양보해서는 안 된다. 자음 하나, 모음 하나도. 언어가 없다면, 과연 무엇이 남을까? - P115
나는 언어치료사다. 말과 침묵, 말해지지 않은 것들과 일한다. 수치심과 비밀, 회한과 일한다. 부재와 사라진 기억들, 그리고 이름, 이미지, 향기를 거쳐 되돌아온 기억들과 일한다. 나는어제와 오늘의 고통과 일한다. 속내 이야기들과. 그리고 죽는다는 두려움과 함께. 이런 것들이 내가 다루는 일이다. 그런데 계속 나를 놀라게 하는 것, 심지어 경악하게 하는것, 때로는 숨이 멎을 정도로 놀라게 하는 것 - 십 년도 넘게이 일을 한 지금도 여전히 - 은 바로 어린 시절 고통이 지속된다는 점이다. 세월이 흘렀음에도 생생하게 타오르는 흔적. 그것은 지워지지 않는다. 나는 나이 든 환자들을 바라본다. 그들은 일흔 살, 여든 살, 아흔 살이다. 그들은 오래전 기억들을 들려준다. 옛 시절, 조상들의 시절, 역사 이전의 시절을 이야기한다. 십오 년, 이십 년, 삼십 년 전에 그들의 부모가 죽었지만, 그들이 아이였던 시절받은 고통은 여전히 그들 안에 남아 있다. 어린 시절의 고통이그들의 얼굴에서 읽힌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에서 저절로들린다. 맨눈으로도 그 고통이 그들의 몸과 혈관을 때리는 것을 본다. 닫힌 공간에서 순환하며. - P126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잃어버릴 줄 아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매주, 아니 거의 매주 새로운 손실과 손상, 손해를 입는 것이다. 이게 내가 이해한 바이다. 그리고 이득이 되는 것을 적는 칸에는 이제 아무것도 실려있지 않다. 어느 날부터 더는 달릴 수도, 걸을 수도, 몸을 숙일 수도, 몸을 굽힐 수도, 쳐들 수도, 당길 수도, 접을 수도, 돌릴 수도 없다. 처음엔 이쪽, 그다음에는 반대쪽으로, 앞으로도, 뒤로도 돌릴 수 없다. 아침에 안 되는 것은 저녁에도 안 되고, 아예 되지않는다. 끝없이 익숙해진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기억과 지표, 단어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균형과 시력, 시간 개념과 잠, 청각, 그리고 정신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주어졌던 것을, 쟁취했던 것을, 자격을 갖추고 있던 것을, 투쟁했던 것을, 영원히 가지리라 생각했던 것을 잃어버리는것이다. 새로운 조건에 맞추는 것이다. 새로이 조직하는 것이다.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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