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지음 / 창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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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한참 동안 의미 없는 메시지를 주고받다보면 갑자기 바람빠진 풍선처럼 모든 게 다 부질없어지곤 했는데, 그가 나에게 (어떤 의미에서든)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단지 벽에 대고서라도 무슨 얘기든 털어놓고 싶을 만큼 외로운사람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는 그런 외로운마음의 온도를, 냄새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때의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 P90

그 사람은 끝까지, 정말이지 끝까지 자기가 하고 싶은말만 했고, 내게 뭔가를 가르치려 들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처음이자마지막으로 나를 위한 선택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눈을감고 그의 번호를 지웠다. 눈꺼풀에 인두로 지져놓은 것처럼 그의 번호가 선명히 떠올랐지만 언젠가는 이것조차기억에서 지워지리라 생각했다. - P167

인생이 예상처럼, 차트의 숫자처럼 차곡차곡 정리되지는않으며, 오히려 가장 그러지 말았으면 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핏줄이 연결된 것처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존재가, 실은 커다란 미지의 존재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인생의 어떤 시점에는 포기해야 하는 때가 온다는 것을. 그러니 지금 내가 할수 있는 것은 모든 생각을 멈추고, 고작 지고 뜨는 태양따위에 의미를 부여하며 미소 짓는 그녀를 그저 바라보는일. - P181

삶에 불이 꺼지고 나니 이상하게 나 자신이 나에 대해 하나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의 방이 어떻게 생겼는지,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먹고 살았는지, 쉴 때는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다시 불을 켜기 위해서 어떤 것들을 해나가야 할지…… 인생에 뚜렷한지표나 청사진이 없었던 적이 처음이었고, 그래서 지독한무능에 빠진 기분이었지요.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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