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들의 도시 - In Bruge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킬러들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대주교 암살이라는 임무를 마치고 난 레이에게 보스는, 2주간 벨기에의 관광도시 브리주에 가 있으라는 명령을 내린다. 함께 떠나있으라는 명령을 받은 켄은 브리주의 자연풍경과 예술미 넘치는 도시 관광을 즐기지만, 입만 열면 욕이요 불평인 레이는 모든 것이 지루하기 짝이없다. 이윽고 레이는 영화촬영장에서 만난 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켄은 자신만의 즐거움에 탐닉하는, 평안한 시간을 보낸다. 그것도 잠시. 캔은 보스인 해리의 연락을 받는다. 바로 임무 수행 중 실수로 아이를 죽인 해리를 처벌하라는 것.

2인자 캔은 보스의 명을 따라 공원에 있는 레이의 뒤통수를 총으로 겨누지만, 그때 레이 역시 자신의 머리를 스스로 겨눈다. 아이를 죽였다는 자책감에 본인 역시 자살을 시도한 것이다. 이 순간, 그러니까 캔이 해리의 명령을 무시하고, 레이를 설득하여 떠나 보내는 순간, 순조롭게 흘러가던 모든 이들의 일상과 브리주라는 공간이 어긋나기 시작한다.  

 
 

모든 것은 원칙을 어기는 순간에 촉발된 것이다. 레이가 임무에 없었던 아이를-고의든 실수든-죽였기 때문에, 캔이 죽여야하는 레이를 살려보냈기 때문에, 호텔방에만 있으라는 명령을 어기고 레이가 여자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리고 원칙을 만든 자-보스-는 이 모든 어긋난 일들을 심판하러 브리주로 날아온다. (해리는 바로 <더 리더>의 훈훈한 남자 랄프 파인즈다! 짧은 머리에 야윈 얼굴로, 냉혹한 인상의 킬러를 만들어냈다!) 



정말이지 그들은, 킬러라고 치기엔 이상하단 말이지. 그들은 원칙주의자고, 도덕을 중시 생각한다. 임무로 자행하는 살인과 범죄는 도덕 예외로 적용된다. 그것은 일이기 때문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쉽게도 죽이는 킬러 주제에, 실수로 저지른 아이의 죽음 앞에서 자살을 시도할 정도다. 또한 보스는 그 때문에 자신의 부하를 처단하려고까지 한다. 이게 웬 아이러니란 말인가.

이렇게 원칙적인 킬러들 앞에 놓인 세상은 결코 원칙적이지 않다. 우연과 무계획적이고 뜻하지 않았던 일들이, (일들만이!) 이들의 예상과 계획을 보기 좋게 비웃는다. 그 때문에 이들은 충돌을 일으킨다. 레이는 죽고자 할땐 살고, 살고자 할땐 죽는다. 캔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레이를 떠나보내고 싶어하지만, 레이는 어쩔 수 없이 돌아오게 된다. 해리는 자신의 원칙을 완수함으로써 고고한 킬러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지만, 그 역시 끊임없는 우연에 휘말려 레이와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킬러들의 도시>가 흥미로웠던 지점은, 이 원칙주의자들- 고결한 삶을 살아내고 싶어하는-앞에 놓인 세상 속 우연의 풍경이다. 여기에서의 우연은 헐리우드 영화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하필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든지, 뻔히 예상되는 우연을 남발한다는 식 등의 쉬운 아이러니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모든 일에 원인과 결과가 있다. 이를 테면, 레이가 다시 브리주로 돌아오는 것을 보자. 우연히 해리에게 붙들린 것도 아니다. 마음이 바뀐 것도 아니다. 참 레이다운 이유다. 전날 여자의 집에서 그의 옛 애인을 때린 이유로,(이것 역시 레이에게는 어쩔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는 떠나는 기차에서 붙들려 돌아오게 된다. 레이의 모든 행동과 수다스러운 말이 그의 죽음의 원인이 된다.  

 



이 영화를 보고 숭고미를 떠올린 까닭은, 바로 이들이 고결한 삶을 살고자 하는 킬러들이기 때문이다. <킬러들의 수다>라고 제목을 헷갈려도 무방할 정도로 영화 속 세 명의 킬러들은 끊임없이 대화를 한다. 물론 말은 그다지 통하지 않는다. “너는 네 삶을 고쳐나갈 수 있어!”라는 켄의 말에 “그럼 의사가 되라구요? 시험봐야 되잖아요!” 레이는 이런 식으로밖에 대꾸할 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원칙을 염두에 두고, 그것에 대해 대화한다. 때문에 다른 영화에서 볼 수 없는 킬러들의 모습들이 포착된다.

캔과 레이가 미술관에서 종교화를 보며 죽음에 대해 논하는 모습을 보라. 이들은 죽음 자체보다 그들이 살며 저지른 죄를 두려워하고 있다. 죄를 인식하고 죽음, 끝을 인식한다. 숙소(BnB)에서 해리와 레이의 대결장면은 어떤가. 숙소 주인이 임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밖에서 싸우자고 한다. 레이가 창밖으로 뛰어내리고, 해리는 문밖으로 뛰어나갈 것. 서로 정한 원칙을 위배하는 일은 결코 없다. 적어도 레이의 적인 해리는 반칙으로 레이를 공격할 것 같지만, 그들은 충실하게 약속을 행한다. 그들은 약속과 원칙을 지키는 고결함을 무엇보다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숭고함이란, 자신의 존재가 광대한 우주 속에 하찮음을 깨닫는 것이다. 자신의 하찮고 사소한 감정, 욕망, 의지를 내려놓는 순간 더 큰 질서와 자연세계를 발견하는 것이다. 자신의 욕망과 바라는 것 너머의 원칙을 목숨만큼이나 지키려고 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고결한 삶에 대한 갈망(혹은 강박)을 느꼈고, 과대 해석해서 나는 그만, 숭고한 아름다움까지 느껴버린 것이다. 그들의 죽음, 혹은 집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나약한 인간인 그들이 지닌 의지와 신념에 관한 감동이다. 우연의 세상속에서 그것을 지켜나가고자 하는 그들의 고투에 대한 감동이다.

결국, 세 사람은 모두 죽는다. 세 사람 모두에게 살 기회가 있었지만, 그들은 그 기회를 선택하지 않았다. 끝까지 원칙 때문에 죽임을 당하고, 희생하고, 스스로 죽고 말았다. 이 어처구니없는 마지막 장면에서 허무의 감정을 느끼려는 찰나, 어쩌면 그들은 고결한 삶을 지키기 위해, 어쩌면 집착한 나머지 죽을 수밖에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브리주의 이 세 명의 킬러들은 그래서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 아름다운 브리주에서. 시간을 고수하듯, 변함없이 과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예술의 도시 브리주에서 말이다.   

여기서 레이는 콜린 파렐이다. 가장 없어보이는 킬러를 기막히게 연기해냈다. '이런,진상!'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끔 하는 특유의 블랙코미디스러운(?)연기는 골든글로브도 인정했다. 그는 이 영화로 골든글러브 남우주연상을 타냈다. (브랜단 글리슨, 랄프라인즈의 연기도 물론 좋았지만!) 충분히 그럴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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