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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편에서 이리가 ㅣ 오늘의 젊은 작가 53
윤강은 지음 / 민음사 / 2025년 10월
평점 :
#도서협찬
“생존주의 시대의 사랑을 재발명한다”는 심사평에 지극히 공감하게 되는 소설. 혹은 “생존주의 시대의 연대를 재발명한다”고도 쓸 수 있겠다. 세계가 눈으로 뒤덮인 멸종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현대사회의 은유로도 읽혀 흥미롭다.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중반 이후부터 명확히 드러난다. 바로 ‘기억’을 끝내 붙들어야 한다는 것. “저편에서 이리가”라는 제목이 생소하게 들려 무슨 뜻일지 계속해 고민했는데, 발문을 읽고서야 깨달았다. 저편(과거)의 ‘이리’가, 라는 미완성의 어구.
이리는 주인공 중 하나인 유안이 과거의 생물도감을 읽다 발견한 멸종된 동물이다. 대멸종 시대에도 인간과 함께하는 개들을 바라보며 유안은 오래 전 사라진 이리에 대해 생각한다. 그 동물을 기억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과거와 뒤얽힌 우리의 현재는 기억함으로써 살아나갈 당위성을 부여받는다.
“저편에서”는 그렇게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과거로부터 들려오는 이리의 울음소리를 의미하기도, 주인공들이 살아나갈 미래를 의미하기도 한다. 단 한 사람이더라도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조각이더라도 붙들 수 있는 기억이 있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 소설.
현대사회도 결국 경계 태세를 갖추고 내내 서로 갈등하는 아포칼립스 속 한반도의 지역들과 비슷하지 않나 싶다. 이 생존주의 시대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살아갈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작가는 그 답을 가장 작은 형태의 연대에서 찾는다.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진정으로 손을 맞잡을 수 있는 상대가 있다면, 그것만으로 살아나갈 수 있다고. 주인공들 사이 관계성이 복잡하면서도 아름답게 서술되어 취향에 맞았다. 사랑보다 더 깊은, 서로에 대한 온전한 이해로 맞닿는 관계를 좋아한다면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