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805월 일어난 광주 민주화 운동은 나에게는 먼 역사였다. 그 일을 책에서, 영화에서 접하였던 나에게는 그저 먼 감각으로 그 지역 사람들은 아버지, 삼촌, 친구의 일이었을텐데 그 기억을 어찌 잊고 살아갈까 싶었을 뿐이었다. 이 소설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배경이다. 소설이긴 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고 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중학생 동호부터 대학생 선주까지 대부분 나이 어린 소년, 소녀들이다. 그들과 그들의 가족이 겪은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데, 어린 그들이 겪었던 일을 지켜보면서 그저 답답하고 먹먹했다.


당시 사건에 대해서 사법부는 전두환에게 반란, 내란수괴죄로 무기징역을, 노태우에게는 반란, 내란 주요 종사죄 등으로 징역 17년을 선고하여, 당시의 사건이 엄중한 범죄였음을 인정하였다(대법원 1997.4.17. 선고 963376 전원합의체 판결). 유족들을 포함하여 그 때의 일을 겪은 사람들이 그 일이 잘못된 일이었다는 것을 인정받기까지 17년이 걸린 것이다. 그러나 전두환, 노태우는 199712월 사면되었고 여생을 보내고 있다.

 

책과 자료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의 자료를 봐왔지만, 아직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의해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살해되는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이 그 이후로 '국가'를 어찌 믿을수 있었을까. 그 일을 직접 겪었던 사람들은 어찌 제 정신으로 계속 살아갈 수 있었을까.

 

다시 태극기 이야기로 돌아와서, 얼마 전 3.1.절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에서 '태극기'를 게양해야할 지 말아야할 지 고민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태극기가 대한민국의 국기가 아닌, 다른 무엇을 상징하는 것으로 읽혀지는 요즈음이기 때문이겠다. 그래서 그런지 소설 속 희생자들의 사체를 태극기로 둘러싸고, 관을 태극기로 애써 감싸던 모습이 태극기집회의 모습과 계속해서 겹쳐 보였다. '재밌게 읽은 소설이었다'라고 평하기에 지금의 현실이 그닥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조심스럽게 네가 물었을 때, 은숙 누나는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뜨며 대답했다.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전혀 다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은 첫처럼 너는 혼란스러웠다.

그해 나는 스물세살의 교대 복학생이었습니다. 초등학교 교사가 되는 게 인생의 목표였던 내가 소회의실의 조원들을 지휘하는 임무를 맡았다는 것은, 그 밤 도청에 남은 사람들이 그만큼 오합지졸이었다는 걸 뜻합니다.
우리 조의 절반 이상이 미성년자였습니다. 장전을 하고 방아쇠를 당기면 정말 총알이 나간다는 게 믿기지 않아, 도청 앞마당에 나가 밤하늘을 향해 한발 쏘아보고 돌아온 야학생도 있었습니다.

누구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날 군인들이 지급받은 탄환이 모두 팔십만발이었다는 것을, 그때 그 도시의 인구가 사십만이었습니다. 그 도시의 모든 사람들의 몸에 두발씩 죽음을 박아넣을 수 있는 탄환이 지급되었던 겁니다. 문제가 생기면 그렇게 하라는 명령이 있었을 거라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오래전 동호와 은숙이 조그만 소리로 나누던 대화를 당신은 기억한다. 왜 태극기로 시신을 감싸느냐고, 애국가는 왜 부르는 거냐고 동호는 물었다. 은숙이 어떻게 대답했는지는 기억나지는 않는다.
지금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까. 태극기로, 고작 그걸 감싸보려던 거야. 우린 도륙된 고깃덩어리들이 아니어야 하니깐. 필사적으로 묵념을 하고 애국가를 부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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