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빛이 모여들고 그에 이끌려져 보이는 아름다운 오스트리아 남부... 천상의 찬란한 햇빛이 새벽의 줄기를 타고 나뭇잎 틈새로 오묘하게 비추어지고 있는 그 곳에서 푸르름으로 둘러싸인 곳 XXX도 그 예외일 수는 없었다. 

  그림같은 풍경이 주위에 둘러 있는 샤르트마인 호수를 중심으로, 저 멀리로는 한가롭게 양 떼들이 풀을 뜯고, 띄엄띄엄 위치한 집들이 더욱 여유 있는 분위기를 더하는 목장과 울긋불긋한 풀꽃이 부드러운 감촉의 융단처럼 깔려있는 잔디 언덕, 그 너머로는 우뚝 서 있는 만년설의 봉우리까지 알프스의 전형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고, 그래서 특별히 구분지을 건 없지만 아름다운 고장의 일부를 이룬다는 의미가 소중스레 닿아오는 그 곳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고 또 그런 추억 속에 남아서, 확실히 잡히지는 않아도 그들의 뿌듯한 마음의 고향 정경으로 그려지기에 충분했다. 빈 소년 합창단이 휴가를 오는 여름엔 그 곳은 인정이 소소하면서도, 고요한 대자연 속에 묻힌 시골 풍경을 그대로 드러내보이고 있었다. 그래서 시적 영감과 소설의 정경과 아름다운 노래를 찾아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평화로운 자연의 모습으로 그들의 호기심과 사랑을 자아내고 또 정의 내릴 수 없는 짧은 순간의 만남 속에서도 자연의 황홀함과 훈훈한 인정으로 맛보는 행복까지 허락해 줄 수 있을 신비스러운 비밀들이, 침묵을 지키는 자연의 도처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안젤루스의 종소리가 은은히 울려 퍼지면 곧 거리는 아침 일찍 일을 시작하려는 부지런한 사람들로 가득 메워지고 집 주위는 빵 굽는 달콤한 냄새로 가득 차오르곤 했다. 그때서야 우유를 다 배달한 소년들은 지치긴 했지만 그날에 주어진 일을 다 끝냈다는 성취감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빈 마차를 끌며 빈 창고로,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마주치는 이웃에게 정겹게 인사하는 모습들은 그의 기억 속에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포근한 추억거리로 남곤 했던 아침의 정경이었다. 그러나 그런 아침의 의미는 진작 당사자들에겐 그리 특별할 것도 없었다. 그들에게 익숙한 평화나 근면, 친절들은 구태여 그들이 의식할 필요 없이, 아름다운 자연에 보답하기 위한 댓가로 나온 듯 했던 일상생활의 한 부분으로 이미 굳혀져 있었으니까. 

  아이들이 학교 생활을 마치고 피리 소리와 함께 흐르는 한가로움이 절정인 목장에서 쉬거나 농장과 과수원에서 일하거나 호수 주위에서 수영과 뱃놀이를 하는 등으로 마을의 어디에서든지 보낸 떠들썩한 오후가 지나, 붉게 물든 만년설을 배경으로 양들의 방울 소리가 아늑히 울려 퍼지고 작은 성당의 지붕에서 하루를 보낸 새들이 날개 짓을 하며 붉은 태양을 향해 떼 지어 날아가면 일에서 돌아오는 아버지들의 발걸음은 지친 듯 하지만 가볍게 그들의 포근한 안식처로 다시 향하곤 했다.... 이렇게 낮엔 그림엽서를 연상시키는 듯한 푸른 화폭에 잠겨 있던 마을은 저녁이 되어 쪽빛마냥 맑고 차가운 또 하나의 정경으로 변해가면서, 굴뚝의 연기에 가정에서 오손도손 나누는 작은 이야기와 꿈을 싣고 지평선 너머로 또 다른 하루를 위한 시간의 순환점에 이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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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퀴엠 에테르남 도나 에이스 도미네..."
한 소년 성가 대원의 선창에 이어 소년들의 레퀴엠 연주가 시작되었다. 그들의 티 없이 맑은 소리는 성당의 기둥을 스쳐 지나가면서 벽을 타고 여기저기서 홑뿌려지는 촛불의 빛과 함께 곧 유유히 퍼져 나갔다. 그렇게 어둡고 고요하기만 했었을 성당은, 이제 지상에 작은 빛의 무리를 이루는 은촛대의 촛불과 이 세계 저편의 아름다운 세계를 보여주는 것만 같이 천사마냥 곱게 느껴지는, 잡히지 않을 듯이 매끄럽고 청명한 영국 소년들의 목소리로 화사하게 밝혀지고 있었다.

레퀴엠 미사곡이 불려지는 동안 성당의 엄숙한 분위기는 미사 석에 띄엄띄엄 앉아 있는 경건한 신도들의 기도와 조용한 의식들로써 고조를 더해 가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갈색의 색조를 띄고 있는 성당은 현대적이고 장식적으로 지어진 벽돌 건물의 외관과는 달리 노래가 흘러 드는 내부는 퍽 중세적인 분위기를 띄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 위로 난 창문으로부터 햇빛이 밀려 들어와 상층부에 걸쳐져 있는 예수의 십자가형이 새겨진 나무 십자가를 거쳐 미사 당을 환히 비추어 왔다. 그렇게 내리 닿았던 그 빛은 우연히 점차 극적으로 흘러 펴져나가는 하모니와도 어우러지며 한 순간 천국의 그림을 보는 듯한 경외감을 남겨 주었다.

"룩스 퍼페투아 루체아 에이스 ..."
목소리 만큼이나 자비로이 느껴지는 그 기도문 가사의 의미를 되씹어보며 계속 어두운 성당 안을 지키고 있던 크리스는 그 곡으로부터 음표처럼 흘러가는 어떤 세월의 열차에 그의 의식을 맡겼다. 그건 그의 아름답게 펼쳐지는 상상의 나래 속에서 그의 추억을 타고 거슬러 올라갔다. 그 때 선창을 하던 그리운 목소리가 지금이라도 들려올 것만 같아서, 모처럼의 회상에 잠기고 있던 크리스는 노래가 주는 신비로운 여운이 그의 기억속에 포개어 질 때 마다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듯한 행복에 젖어 들었다. 사실 그 날 이후의 꽤 오랜만에 이루어진 런던 방문이, 또 바로 일을 마치고 이 곳부터 들렀다는 것 자체가 벌써 그 회상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어느새 시간이 꽤 흘렀던 걸까... 생각에 잠기고 있던 그의 주위에 한 작은 빛이 어둠으로부터 점차 뚜렷이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가 멈칫하여 돌아보자 한 소년이 들고 있던 촛불을 곁에 놓아주고는 수줍게 웃으며 대답했다.
"방해하고 싶진 않았어요. 우리 모두 가버리면 너무 어두컴컴해질 것 같아 촛불 하나 여기 둘려구요..."
"친절하게도... 정말 고맙다."
쑥스러운 듯 어깨를 움츠리면서 크리스는 소년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리고 옆에 살짝 놓인 촛불을 앞으로 끌어당기며 크리스는 다시 그 소년을 쳐다보았다. 성복을 입은 채 자신을 내려다 보는 소년은 11살쯤 되어보이는 짙은 머리칼의 귀엽게 생긴 어린 아이였다.
"사실 이런 일은 우리 성당에선 꽤 자주 있는 일이예요."
"경건한 분위기가 마치 수도원을 연상시키는 것 같아..."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다시 크리스는 무의식적으로 소년에게 질문을 던졌다.
"방금 부른 곡이..."
"빅토리아의 레퀴엠이예요"
"그래... 빅토리아...레퀴엠..."

그는 천천히 되뇌면서 다시 생각을 빅토리아 레퀴엠이 이끌어주었던 추억으로 향했다. 이제 그 추억의 세계는 저 천국만큼이나 순수하고 평화로웠던 그의 어린 시절 소중한 고향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 선창을 불렀던 친구와... 먼저 이 레퀴엠을 들었을 아름다운 소녀... 그리고 그의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그의 동료들이 머물렀던 곳...

소년은 짙은 청색의 눈을 반짝이며 이 금발남자의 사색에 잠긴 듯한 맑고 푸른 눈을 잠시 내려다 보았다. 분명 이 사람은 외국인일 것이다... 영어 발음이 부드럽지만서도 가끔 강한 악센트가 느껴지고 또 이곳을 찾는 걸 보니 그는 카톨릭 국가 사람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잠정 결론을 내린 소년은 호기심 어린 시선을 거두고 돌아서려다 무슨 생각에서인지 다시 멈추어 섰다. 크리스도 떠나려다 멈춘 소년에게 시선을 돌리고 살짝 호기심어린 눈길을 주고 있었다. 소년은 결심한 듯 다가가 옆에 앉았다. 늦었지만 잠깐 서로 소개와 갖가지 얘기들을 나누는 시간을 가진 뒤 이든 파스모어라는 이름의 소년이 먼저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저씨도 혹시.... 성가대원이었어요?"
"내 친구가 성가 대원이었단다. 그것도 바로 이 곳에서..."
"정말요?"
이든은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이제까지보다 더한 관심을 보여 왔다.
"그래... 그리고 그도 빅토리아의 레퀴엠을 불렀단다."
"그때면... 우리 성당 성가대가 상을 탔을 때였겠군요."
소년은 크리스의 얼굴을 살피며 그의 나이를 참조한 듯 이렇게 말했다.
"알고 보니 그랬더군. 그리고 그건 그의 마지막 곡이 되기도 했지. 사실 생각해보면 그 레퀴엠처럼 우리 사이에도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거리감이 있었던 것 같아... 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의 아쉬움같은 거랄까..."
"그럼 그 어린 시절의 친구와의 이별을 생각하고 계셨어요?"
"꼭 그런 것만은 아냐. 이별의 순간은 너무 짧았고... 음악을 들으면서 그와 같이 지낸 나날들을 떠올리고 있었어. 오늘처럼 그 레퀴엠이 우리 우정에 개입했던 때... 그리고 거기엔 또 다른 소중한 친구도 함께 있었지..."
"그럼 그 소년은 죽었단 말인가요? 성가대원으로? 아직도 그 슬픔이 말 속에 진하게 남아있는 것 같네요."
그러자 크리스는 아무 말 없이 눈을 내리깔기만 했다.
"영국은... 그가 죽은 이후 처음이지만, 이 곳에 대해 많이 상상해 봤어. 그가 노래불렀을 곳은... 직접 보니까 글쎄... 죽어가는 그에게 남아있던 신앙의 모습을 여기서 재발견한 기분이 드는걸. 뭔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진실이 여기엔 남아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지. 그래, 난 그 때 봤던 그것을 지금 여기서 보게 됐어..."
"여기 성가대원으로 죽은 사람은 얼마 없을 텐데... 그럼 정말 그는 그 진실된 모습을 변치 않았겠어요. 우리 모두 이 성복을 벗으면 이런 우리들의 모습은 단지 한 가닥의 추억으로 밖에 남지 않는데요. 세월이 우릴 변하게 하니까요. 목소리가 변하면 우리 눈에 비치는 세상은 좀 더 다르게 좀 더 넓게 다가오니까요. 하지만 정말 이곳은 독특한 매력이 있어요. 이 곳에선 사람들이 잊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서 경건한 기도에 이끌리게 된대요."
소년의 또박또박 나오는 천진난만한 말에 크리스는 심경의 잔잔한 울림을 느끼면서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은근히 그도 옛 친구의 모습을 지켜주었으면 아니 지금의 모습이라도 계속 유지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에서였을까... 보일듯 말듯한 미소와 의미 있는 시선을 함께 담으면서 그는 다시금 소년과 두터운 공감의 틀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저 만한 나이에 호기심이 많았었나요?"
소년의 질문에 크리스는 픽 웃었다. 그 말의 의도를 모르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 게다가 골목대장 기질이 있어서 뭐든 호기심이 나면 그 때 풀지않고 넘어가는 하루가 없었지, 아마?"
"그럼 충분히 지금 제 심정을 알고 계시겠군요."
"내가 그 말을 잘 이해했다면, 글쎄, 준비를 단단히 해야겠는데? 얘기가 기니깐 말야."
"콰이어 스쿨은 바로 옆에 위치해 있어요. 아저씨만 괜찮으시다면 아저씨 추억 속 제 위대한 대선배에 대해 얘기해 주세요. 하지만 그에 대한 추억을 홀로 생각하고 싶다면 전 기꺼이 비켜드리겠어요."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난 그런 성당적 분위기에는 익숙하지 않으니까. 가끔 나가는 미사에도 난 시간 꼭꼭 맞춰 나가는 편인걸...? 하지만 잠시 생각해 봐야겠구나. 먼저 질문을 해 보겠니?"
"그럼... 그 소년은 어디서 만나셨어요?"
"뵈르트호수에서... 우리 합창단의 별장이 있던 곳이었지."
"어? 아저씨도 합창단에 계셨었어요?"
"응. Wiener Sängerknaben이라고... 난 거기서 소프라노 성부를 맡고 있었지..."
그러면서 그는 싱긋 미소 지으면서 눈을 내리깔았고 소년은 다소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다가 곧 고개를 끄덕이며 크리스의 시선이 닿는 촛불로 자신의 시선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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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E에 영감받은 아이들의 성장소설이자 어른들을 위한 동화  

 

"To You With Love" 

부제 : 뵈르트 호수의 아이들

 

To you with love는 두 개의 독립된 소설이다. '부제: 뵈르트 호수의 아이들'은 완성되었고, '부제 : 뵈르트 호수의 여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지금부터 올리게 될 'To you with love 부제: 뵈르트 호수의 아이들'은 사실은 습작이다. 완성본은 '부제: 뵈르트 호수의 여름으로 등장인물도 내용도 바꾸어 책으로 완성시킬 예정이지만, 인제 겨우 구상단계이고, 어렸을 때의 추억이 담긴 습작에 더 애정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부제: 뵈르트 호수의 아이들' 중 1-8장까지는 오스트리아 호수지방에서 아이들이 여름방학을 보내는 평화로운 이야기가 전개된다. 요즘 정서와는 많이 동떨어진 별나라 얘기지만, 마치 잃어버린 낙원의 자취를 찾는 것 같이 사람 마음속 깊은 곳에 숨은 향수를 불어일으키는 이야기이다. 그 중 6장이 이 소설 전체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포함해 16장, 20장에서 반복된다. 9장부터는 아이들이, 서로서로 사랑하는 아이들이 함께 프랑스로 여행가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선 1-8장에서 보이는 낙원의 행복을 현재로 끌어내려 현실적으로 가장 충만하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를 그려내고자 했다. 

그리고 시작되는 10장서부터는 이 평화로운 휴가지 분위기에 그늘을 드리우는 암적인 인물들이 표면위로 떠오르며 이야기는 이들과 함께 미궁속으로 빠져든다... 그 갈등을 나름 아이들이 현명하게 결말짓는 15장에서 17장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거울처럼 자신을 비추고 나름 교훈을 안겨주고 있다.

17장에서 해피엔딩으로 소설이 다 끝날 것만 같은데, 이 소설은 친절하게도 결말을 또 다른 시작으로 바꾸어 놓았다. 18장부터 시작되는 이야기가 바로 '너에게 사랑을 담아서'가 무엇인지 말하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가족의 개념도 깨뜨리고, 아이들이 읽기엔 낯부끄러운 일종의 잔혹동화이지만, 소설 흐름이 빨라서 사람들의 주의를 집중시키며 오히려 초반부보다 더 빨리 읽힌다. 그 중 가장 빨리 읽혀지는 20장은 여운이 길게 남는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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