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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위하여
정혜신.진은영 지음 / 창비 / 2015년 4월
평점 :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를 두 번째 읽으며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이 책은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한 《치유 공간 ‘이웃’》을 이끌고 있는 정혜신 박사와 진은영 시인의 대담집이다.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상 일이 대개 그러하듯이 ‘가족’도 양면성을 갖고 있다. 어쩌면 세상 그 무엇보다 ‘양면적’인지도 모른다. 개인에게 가족은 세상 풍파의 안식처이면서 상처의 진원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정혜신은 “사람은 온전성을 지닌 채로 태어난다’로 믿는다. 그런데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사건들을 겪고 고통을 당하면서 그 온전성이 훼손되거나 파묻히게 된다. 사실 아이가 겪는 대부분의 고통은 ‘부모의 폭력적 소통’에서 비롯된다. 정혜신은 “치유란 자신의 온전성을 되찾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사람의 몸이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듯이 사람의 마음도 상처를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건강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떤 상처에 대해서는 회복력이 발휘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 상처를 트라우마, 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일컫는다.
트라우마란 ‘불가항력적인 재난을 당한 사람이 그 재난 상태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을 말한다. 정혜신은 그 상태를 “마치 레코드 판이 튀듯이 계속 상처의 기억이 그 자리에서 튀는 것과 같다”고 설명한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희생된 아이는 언제까지나 ‘2014년 4월 16일 이전의 열일곱 살’에 멈춰 있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유가족 부모들은 아이의 이야기를 미치도록 하고 싶어 한다고 한다. 인간에게는 “‘끊어진 경험’을 완료하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유가족 부모들의 마음에는 아이의 삶을 완료하고픈 욕구가 강하게 내재되어 있다. 따라서 그들의 치유를 위한 가장 좋은 길은 그 욕구를 마음 안에서 충분히 완료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부모들에게 ‘그 뒤의 이야기’를 실컷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내 아이의 삶이 끝나지 않았다면 그 아이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으며, 그게 나에게 어떤 의미이고 어떤 느낌인지, 아이를 빼앗긴 내 삶과 내 마음이 어떤지, 인생이 중간에 끊어진 아이의 마음은 어떨지 등에 대해서……
그 모든 마음들과 생각들, 느낌들을 다 드러내고 울고 또 울며, 분노하고 또 분노하며, 바닥까지 절망하고 또 절망하며,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시간을 거쳐야 한다. 그래야 아이의 죽음이 남긴 슬픔의 경험과 고통의 느낌이 떠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치유 공간 ‘이웃’》은 여러 방편으로 유가족들이 아이의 이야기를 완료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친구들이 아이에 대한 일화를 편지로 써서 유가족 부모에게 보내는 ‘노란 우체부’도 그중의 하나이다. 부모들에게 아이는 여전히 ‘기억’ 속에서(만) 살아 있는 존재이다. 친구들의 편지는 부모에게 ‘더 많은 기억’을 선사해 줌으로써 아이가 ‘더 많이 살아 있게 하는’ 역할을 해준다.
또 하나의 작업은 ‘생일 치유모임’이다. 그날은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생일상을 가득 차린다. 그 음식들을 통해서 아이의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일 모임에서 아이의 친구와 가족들이 아이에 대해서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이야기를 많이 풀어놓을수록 훨씬 더 편안해진다고 한다. 생일 치유모임의 마지막 순서는 시인들이 ‘아이의 목소리로 쓴 시’를 낭독하는 시간이다. 시인이 쓴 아이의 목소리를 함께 들으며 모든 사람들이 울게 되는데, 이때 놀라운 치유의 느낌을 갖게 된다고 한다. 나 역시 진은영 시인이 예은이를 위해 지은 시 「그날 이후」를 읽을 때마다 눈물을 쏟게 되곤 했다.
덴마크 소설가 이자크 디네센은 “모든 슬픔은 당신이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야기’는 슬픔을 가져온 과거의 사건을 완전히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지만, 그 슬픔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 수는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치유하는 힘이 있다. 견디기 힘든 상처를 입었을 때 우리 삶의 이야기는 고장 난 레코드판처럼 끊어져 그 자리에서 맴돌게 된다. 중단된 이야기는 계속 이어져야 한다. 그래야 삶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일상이란 대개 남루하거나 초라한 면면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비루한 일상이 누군가에겐 먼 하늘의 별처럼 소중한 것이 되기도 한다. 삶이 산산이 깨져버린 세월호 유가족 부모들에게 그렇다. 그래서 정혜신은 유가족들의 일상을 복원하는 일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많은 유가족들이 비현실감에 빠져서 산다고 한다. ‘아이가 이제 없다’는 것이 도무지 실감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내가 아닌 것 같고, 세상도 예전의 세상이 아닌 것 같은 이상한 느낌 속에서 ‘살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웃’에서 유가족들의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서 가장 힘쓰는 일은 “함께 ‘집밥’을 먹는 것”이다. 유가족 부모들은 ‘그날’ 이후로 밥을 제대로 못하며 지내왔다. 나 먹겠다고, 식구들 먹겠다고 장을 봐서 음식을 만드는 것 자체에 죄의식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바깥에서 사서 먹거나 시위 현장에서 도시락을 먹거나 한다. 그런 ‘집밖의 밥’들로는 그저 허기를 면할 뿐이다. 집밥을 오래 못 먹으면 사람이 안정적으로 살 수가 없다. 그래서 ‘이웃’에서는 정성껏 풍성하게 집밥을 차린다. 유가족들은 집밥을 함께 먹으면서 어머니가 차려준 밥을 먹듯이 큰 힘과 위로를 얻는다고 한다.
‘이웃’에는 유난히 밝은 방이 있다. 그 방은 유가족 부모들이 ‘제대로 울 수 있는 곳’이다. 어느 유가족 부모가 아이를 잃고 집에 돌아와 통곡을 했을 때 옆집의 이웃도 따라 울었다고 한다. 그렇게 밤마다 울음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다 100일쯤 지났을 때 옆집에서 신고를 했다. 유가족 부모의 울음소리로 인해 옆집의 일상까지 무너져 갔기 때문이다. 아이 잃은 부모를 생각하면 여전히 가엾지만, 출근도 해야 하고 내 아이도 학교에 보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런 이웃의 고충을 알기에 부모들은 목 놓아 울지 못하고 숨죽이며 흐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유가족들이 방해받지 않고 아무 때나 달려와서 실컷 울 수 있는 방을 마련한 것이다.
정혜신은 ‘이웃’에서 자신이 하는 상담보다 ‘치유의 공기’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전체적으로 치유의 공기가 만들어지면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그 공기 안으로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사람이 더 이상 잘못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와의 관계와 소통에서 어려움을 겪는 부모의 경우 정혜신의 다음 말이 도움이 될 것 같다.
“나는 치유라는 것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다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고, 그것을 찾고 아는 과정에서 치유에 대한 개념이 분명해진다고 생각해요. 자식을 키울 때도 아이들에게 무얼 해주면 좋을지 찾아다니다 보면 자꾸 각론으로 빠지게 되는데, 반대로 부모 역할을 잘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생각하다 보면 스스로 자기성찰을 할 수밖에 없고 근본적인 접근을 하게 되거든요.”
정혜신은 치유가 거창하거나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아, 내가 이래도 괜찮구나’, ‘나만 이러고 있는 게 아니구나’,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이 원래 사람들이 많이 할 수 있는 생각이구나’라는 걸 깨닫는 거라고 한다. 아, ‘나 이대로 괜찮다’는 걸 깨닫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먼 길을 돌아와야 하는 존재인가.
아이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어떤 좋은 것을 사주고, 얼마나 맛있는 것을 먹이느냐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집안의 공기’이다. ‘너 지금 이대로 충분해’, ‘네 모습 그대로 괜찮아’, ‘너는 존재 자체로 사랑스러워’―아이가 집에 들어온 순간 이런 공기를 느낄 수 있다면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세월호 유가족들의 깨어진 삶은 우리에게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외치고 있는 듯하다. 지금 내 아이가 누리고 있는, 남루하고 비루해 보이는 일상이 밤하늘의 별처럼 소중하고 또 소중한 것이라고….
그날 이후
-진은영
아빠 미안
2킬로그램 조금 넘게, 너무 조그맣게 태어나서 미안
스무살도 못 되게, 너무 조금 곁에 머물러서 미안
엄마 미안
밤에 학원 갈 때 핸드폰 충전 안해놓고 걱정시켜 미안
이번에 배에서 돌아올 때도 일주일이나 연락을 못해서 미안
할머니, 지나간 세월의 눈물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해서 미안
할머니랑 함께 부침개를 부치며
나의 삶이 노릇노릇 따듯하고 부드럽게 익어가는 걸 보여주지 못해서 미안
아빠 엄마 미안
아빠의 지친 머리 위로 비가 눈물처럼 내리게 해서 미안
아빠, 자꾸만 바람이 서글픈 속삭임으로 불게 해서 미안
엄마, 가을의 모든 빛깔이 다 어울리는 엄마에게 검은 셔츠를 계속 입게 해서 미안
엄마, 여기에도 아빠의 넓은 등처럼 나를 업어주는 포근한 구름이 있어
여기에도 친구들이 달아준 리본처럼 구름이 사이에서 햇빛이 따듯하게 펄럭이고
여기에도 똑같이 주홍 해가 저물어
엄마 아빠가 기억의 두 기둥 사이에 매달아놓은 해먹이 있어
그 해먹애 누워 또 한숨을 자고 나면
여전히 나는 볼이 통통하고 얌전한 귀 뒤로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는 아이
제일 큰 슬픔의 대가족들 사이에서도 힘을 내는 씩씩한 엄마 아빠의 아이
아빠, 여기에도 친구들이 있어
이렇게 말해주는 친구들도 있어
“쌍꺼풀 없이 고요하게 둥그레지는 눈매가 넌 예뻐”
“너는 어쩌면 그리 목소리가 곱니,
어쩌면 생머리가 물 위의 별빛처럼 그리 빛나니.”
아빠! 엄마! 벚꽃 지는 벤치에 앉아 내가 친구들과 부르던 노래 기억나?
나는 기타를 잘 치는 소년과 노래를 잘 부르는 소녀들과 있어
음악을 만지는 것처럼 부드러운 털을 가진 고양이들과 있어
내가 좋아하는 엄마의 밤길 마중과 내 분홍색 손거울과 함께 있어
거울에 담긴 열일곱살, 맑은 내 얼굴과 함께, 여기 사이좋게 있어
아빠, 내가 애들과 노느라 꿈속에 자주 못 가도 슬퍼하지 마
아빠, 새벽 세시에 안 자고 일어나 내 사진 자꾸 보지 마
아빠, 내가 여기 친구들이 더 좋아져도 삐치지 마
엄마, 아빠 삐치면 나 대신 꼭 안아줘
하은언니, 엄마 슬퍼하면 나 대신 꼭 안아줘
성은아, 언니 슬퍼하면 네가 좋아하는 레모네이드 타줘
지은아, 성은이가 슬퍼하면 나 대신 노래 불러줘
아빠, 지은이가 슬퍼하면 다 대신 두둥실 업어줘
이모, 엄마 아빠의 지친 어깨를 꼭 감싸줘
친구들아, 우리 가족의 눈물을 닦아줘
나의 쌍둥이 하은언니 고마워
나와 함께 손잡고 세상에 와줘서 정말 고마워
나는 여기서, 언니는 거기서 엄마 아빠 동생들을 지키자
나는 언니가 행복한 시간만큼 똑같이 행복하고
나는 언니가 사랑받는 시간만큼 똑같이 사랑받게 될 거야,
그니까 언니 알지?
아빠 아빠
나는 슬픔의 큰 홍수 뒤에 뜨는 무지개 같은 아이
하늘에서 제일 멋진 이름을 가진 아이로 만들어줘 고마워
엄마 엄마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들 중 가장 맑은 노래
진실을 밝히는 노래를 함께 불러줘 고마워
엄마 아빠, 그날 이후에도 더 많이 사랑해줘 고마워
엄마 아빠, 아프게 사랑해줘 고마워
엄마 아빠, 나를 위해 걷고, 나를 위해 굶고, 나를 위해 외치고 싸우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성실하고 정직한 엄마 아빠로 살려는 두 사람의 아이 예은이야
나는 그날 이후에도 영원히 사랑받는 아이, 우리 모두의 예은이
오늘은 나의 생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