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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말 한마디에
금소니 외 지음 / 모모북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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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말 한 마디에]는 9명의 여성들이 일상 속에서 경험한 폭력대화(마음이 우는 말)와 공감대화(마음이 웃는 말)를 풀어놓은 이야기다.

‘마음이 우는 말’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김시원이 남편에게 들은 말이었다. 양육과 일을 동시에 감당하고 있던 워킹맘 김시원은 어느 날 밤 10시에 노트북을 켜고 일에 몰두한다. 아이들을 재운 뒤 쏟아지는 잠을 물리치고 ‘내일의 나를 위한 오늘의 마지막 노력’을 쏟아부은 것이었다.

다음 날, 그는 상사로부터 “이거 말고 다른 자료를 부탁하려 했는데 다시 좀 해 올래요?”라는 청천벽력같은 말을 듣는다. 상사에게 필요한 자료를 정확히 확인한 후 작업을 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새벽까지 잠을 못 자는 고생도 하지 않았을 터였다.

맥이 풀린 김시원은 남편에게 전화해서 하소연을 했다. 그때 남편에게 돌아온 대답은 이것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대충하라고 했잖아.”

그 말을 들은 순간 서운한 감정과 함께 남아 있던 기운마저 다 빠져버렸다고 한다. 남편의 말이 “그러게, 내 말 안 듣고 열심히 한 네가 잘못이지”라고 들리며 가슴을 찔러왔다고 한다. 아내의 푸념을 들은 남편이 이렇게 말해줬으면 어땠을까?

“아이고, 맥이 다 풀렸겠다. 상사가 정확한 자료를 알려줬으면 좋았을 텐데. 당신 말 들으니 나도 다 기운이 빠지네.”

그런 말을 들었다면 공감받았다고 느낀 김시원의 마음이 조금은 풀렸을 것 같다.

김시원은 어느 날 유치원에 다녀온 아들로부터 이런 말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

“다른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어.”

혼자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첫째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한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실망감과 배신감을 느낀 엄마가 아들을 다그쳤다. “뭐? 너는 엄마가 싫어? 엄마 말고 다른 아줌마가 엄마였으면 좋겠어?”

그러자 아들이 놀란 표정으로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엄마가 두 명이었으면 좋겠단 말이었어. 시우 엄마, 서은이 엄마, 그렇게 엄마가 한 명씩 있으면 둘 다 똑같이 좋잖아. 김시원 엄마 두 명 말이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시원은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아들과 동생을 꼭 안아주었다.

아들이 뜬금없이 “다른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했을 때 이렇게 물어봐 줬으면 어땠을까?

“다른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구나.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엄마한테 얘기해 줄래?”

그랬다면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고 아이의 본심을 알 수 있었을 것 같다.

‘마음이 웃는 말’ 중에는 남재화가 들은 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아이가 같은 반 친구의 생일 초대를 받았던 날, 남재화는 처음 부모 모임에 나가게 되었다. 부담스러운 마음에 아이만 보내고 얼른 돌아오고 싶었다. 그랬는데 다른 아이들과 잘 놀지 못하고 혼자서 모래놀이를 시작하는 아이를 보고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신과 닮은 아이를 보면서 안절부절못하며 서 있었다. 그때 한 엄마가 이렇게 말을 걸어주었다고 한다.

“여기로 와요. 누구 엄마예요?”

그 엄마는 남재화를 붙잡고 반갑게 인사하며 엄마들 있는 쪽으로 이끌어주었다. 또한 성우 엄마라는 걸 확인한 뒤 성우를 불러 아이들과 함께 놀도록 챙겨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모임은 남재화에게 지금까지 이어져 서로를 든든하게 응원하는 삶의 활력소가 되었다고 한다.

책을 통해 따뜻한 관심과 공감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삶을 구하고 마음에 힘이 생기게 해준다는 걸 느끼고 마음에 새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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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 투 마우스 - 부자 나라 미국에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빈민 여성 생존기
린다 티라도 지음, 김민수 옮김 / 클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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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 투 마우스]에는 미국의 가난한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전쟁을 벌이듯 처절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충실히 담겨져 있다.

저자 린다 티라도는 중산층 가정에서 외동딸로 자랐으나 성인이 되어 빈민으로 떨어진 가난한 백인이다. 티라도는 말한다. 실직 상태에서 가난한 것은 충분히 견딜 만한 일이라고. 그러나 투잡을 뛰며 죽어라 일하면서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쉬지 않고 걸어야 하는 상태에 비유할 수 있을까.

어느 날 티라도는 한 사이트에서 어째서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파괴적인 행동을 하는 걸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글을 달았다. 그런데 그 글이 <허핑턴 포스트> 등에 실리고 수백만 명이 읽게 되면서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녀가 말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자기파괴적인 결정을 하는 이유, ‘어차피 가난하지 않을 일이 결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린다와 그녀의 남편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무엇보다 수입의 절반으로 주거비를 충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들의 절망적인 상황을 잘 드러내준다. 나머지 절반으로 차 유지비와 생활비, 공과금비 등을 내는 일이 버거울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그녀는 훗날 비싼 물건 하나를 사기 위해 소소한 즐거움(5달러짜리 웬디스 햄버거를 먹는 일 같은)이 사라져버린 황폐한 삶을 살 이유가 없다고 단언한다. 린다는 어차피 3일 후면 돈이 다 사라져버릴 것이기 때문에 호주머니에 돈이 있을 때 조금이라고 인생을 즐기는 선택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어차피 돈을 모으는 일은 불가능하니까. 어쩌면 그들이 장기적인 일을 계획하지 않는 것은 방어기제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랬다가는 가슴만 아프게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벗어날 수 없는 재난 상태에서는 희망을 품지 않는 것이 최선일지도 모른다.

미국에서도 빈곤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은 열악하고 대단히 위험하다. 린다는 요리 노동자로 고단한 삶을 살 때의 모습을 이렇게 설명한다.

나의 팔과 손은 튀김기를 사용하며 생긴 숱한 상처들로 덮여 있다. 거의 200도에 이르는 기름들이 사람 팔에 닿을 때 따끔거리지 않기 때문에 기름이 튀는 것을 완전히 피할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븐 장갑이 해졌는데도 구두쇠 식당주인이 새 장갑을 사주지 않아서 손을 덴 적도 있다. 칼이 미끄러져서 거의 손가락뼈까지 잘린 적도 있다. 발에 무거운 도구를 떨어뜨린 적도 있는데 너무 바빠서 손에 묻은 기름기를 닦아낼 시간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부상을 당한 일이 열 번도 넘는다. 한 시간에 7~8달러를 벌기 위해서 그런 일들을 겪는 게 불가피했다고 한다. 린다는 요리 노동자의 일이 그렇다는 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위험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는 사실에는 분개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린다는 자신이 흡연자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녀는 고된 노동으로 언제나 기진맥진해 있다. 한 발짝도 더 딛지 못할 만큼 피곤할 때 담배를 피우면 한 시간은 더 버틸 수 있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시달려 극도로 감정이 초조해지거나 더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때 담배를 피우면 아주 잠시지만 기분이 좋아진다. 흡연은 그녀가 쓰러지거나 폭발하는 것을 막아주는 단 하나뿐인 긴장해소법이라고 한다. 린다는 아직 다른 대책을 찾지 못했기에 비싼 담배를 계속 피울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린다는 자신이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왜 패스트푸드 점에 와서 백화점의 서비스를 요구하는가?’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에서의 서비스직 노동자들의 삶은 손님들에게 상냥한 응대를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식당 주인들은 대부분 종업원들에게 주 40시간 정도의 충분한 근무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바쁜 주말 시간을 위주로 주 20시간 내외의 들쭉날쭉한 시간 밖에 주지 않는다. 그러니 투잡이나 쓰리잡을 뛰며 고단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또한 그들에게는 늘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노동 조건이 주어진다. 뿐만 아니라 대개의 고용인들이 종업원들에게 의료보험비조차 대주지 않는다.

이런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손님에게 햄버거를 건네면서 가식 없는 명랑함으로 열렬하게인사를 보낼 수 없다. 또한 그런 고용인의 이윤을 높여주기 위해서 신경 쓰는 일도 불가능하다. 그녀는 강조한다. 가난한 이들도 받은 만큼만 돌려 줄 수 있다고.

저임금 노동자에게 좋은 서비스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린다가 알려주는 조언은 이렇다. 그에게 걸어가 귀찮게 해서 미안합니다. 다른 일로 바쁘신 것은 압니다만, 이러이러한 물건이 어디 있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제가 사야 해서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일할 기분이 전혀 없는 그 사람에게서도 좋은 서비스를 이끌어낼 수 있을 거라고 한다. 그에겐 늘 동시에 해야 할 많은 일들이 주어진다는 점을 존중해줘야 한다. 임금을 쥐꼬리만큼 주면서 노동시간 중에 고객 서비스에 더해 엄청난 잡일을 요구하지 않는 사장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린다 티라도는 지신이 고된 임금노동자에게 분노를 터트렸던 일에 대해서 아프게 털어놓기도 한다.

고된 노동을 끝내고 아기의 귀저기를 사기 위해 마트에 간 날이었다. 마트 안을 샅샅이 뒤졌는데도 기저귀를 찾을 수 없었다. 기진맥진해서 완전히 쓰러질 것만 같은 찰나, 그곳에서 일하던 가난한 여자가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린다의 입에서 이런 힐난의 말이 튀어나왔다.

당신네는 그 빌어먹을 기저귀를 대체 어디다 숨겨둔 거예요.”

너무 지쳐있었던 그녀의 몸과 뇌는 그런 비난의 말을 통제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 일을 겪은 후 린다는 자신처럼 비참한 상태의 고객을 상대하는 입장일 때 그 고객에게 화를 내야 하는 건지 확신하기가 정말 어렵다고 말한다. 자신에게 최대한 예의를 지키고 싶었지만 그럴 기력이 전혀 없었던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터에서 누군가가 계속 그들에게 일을 시키고, 시키고, 또 시켰을지 모르기 때문에.

[핸드 투 마우스]는 나로 하여금 카페에 갈 때마다 알바하는 친구들에게 초콜릿이나 과자 한두 개씩이라고 건네게 만들어준 책이다. 미약할지라도 삶을 변화시키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별점 다섯 개를 충분히 받을 만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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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위하여
정혜신.진은영 지음 / 창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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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를 두 번째 읽으며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이 책은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한 치유 공간 이웃을 이끌고 있는 정혜신 박사와 진은영 시인의 대담집이다.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상 일이 대개 그러하듯이 가족도 양면성을 갖고 있다. 어쩌면 세상 그 무엇보다 양면적인지도 모른다. 개인에게 가족은 세상 풍파의 안식처이면서 상처의 진원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정혜신은 사람은 온전성을 지닌 채로 태어난다로 믿는다. 그런데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사건들을 겪고 고통을 당하면서 그 온전성이 훼손되거나 파묻히게 된다. 사실 아이가 겪는 대부분의 고통은 부모의 폭력적 소통에서 비롯된다. 정혜신은 치유란 자신의 온전성을 되찾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사람의 몸이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듯이 사람의 마음도 상처를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건강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떤 상처에 대해서는 회복력이 발휘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 상처를 트라우마, 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일컫는다.

트라우마란 불가항력적인 재난을 당한 사람이 그 재난 상태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을 말한다. 정혜신은 그 상태를 마치 레코드 판이 튀듯이 계속 상처의 기억이 그 자리에서 튀는 것과 같다고 설명한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희생된 아이는 언제까지나 ‘2014416일 이전의 열일곱 살에 멈춰 있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유가족 부모들은 아이의 이야기를 미치도록 하고 싶어 한다고 한다. 인간에게는 “‘끊어진 경험을 완료하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유가족 부모들의 마음에는 아이의 삶을 완료하고픈 욕구가 강하게 내재되어 있다. 따라서 그들의 치유를 위한 가장 좋은 길은 그 욕구를 마음 안에서 충분히 완료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부모들에게 그 뒤의 이야기를 실컷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내 아이의 삶이 끝나지 않았다면 그 아이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으며, 그게 나에게 어떤 의미이고 어떤 느낌인지, 아이를 빼앗긴 내 삶과 내 마음이 어떤지, 인생이 중간에 끊어진 아이의 마음은 어떨지 등에 대해서……

그 모든 마음들과 생각들, 느낌들을 다 드러내고 울고 또 울며, 분노하고 또 분노하며, 바닥까지 절망하고 또 절망하며,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시간을 거쳐야 한다. 그래야 아이의 죽음이 남긴 슬픔의 경험과 고통의 느낌이 떠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치유 공간 이웃은 여러 방편으로 유가족들이 아이의 이야기를 완료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친구들이 아이에 대한 일화를 편지로 써서 유가족 부모에게 보내는 노란 우체부도 그중의 하나이다. 부모들에게 아이는 여전히 기억속에서() 살아 있는 존재이다. 친구들의 편지는 부모에게 더 많은 기억을 선사해 줌으로써 아이가 더 많이 살아 있게 하는역할을 해준다.

또 하나의 작업은 생일 치유모임이다. 그날은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생일상을 가득 차린다. 그 음식들을 통해서 아이의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일 모임에서 아이의 친구와 가족들이 아이에 대해서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이야기를 많이 풀어놓을수록 훨씬 더 편안해진다고 한다. 생일 치유모임의 마지막 순서는 시인들이 아이의 목소리로 쓴 시를 낭독하는 시간이다. 시인이 쓴 아이의 목소리를 함께 들으며 모든 사람들이 울게 되는데, 이때 놀라운 치유의 느낌을 갖게 된다고 한다. 나 역시 진은영 시인이 예은이를 위해 지은 시 그날 이후를 읽을 때마다 눈물을 쏟게 되곤 했다.

덴마크 소설가 이자크 디네센은 모든 슬픔은 당신이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야기는 슬픔을 가져온 과거의 사건을 완전히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지만, 그 슬픔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 수는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치유하는 힘이 있다. 견디기 힘든 상처를 입었을 때 우리 삶의 이야기는 고장 난 레코드판처럼 끊어져 그 자리에서 맴돌게 된다. 중단된 이야기는 계속 이어져야 한다. 그래야 삶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일상이란 대개 남루하거나 초라한 면면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비루한 일상이 누군가에겐 먼 하늘의 별처럼 소중한 것이 되기도 한다. 삶이 산산이 깨져버린 세월호 유가족 부모들에게 그렇다. 그래서 정혜신은 유가족들의 일상을 복원하는 일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많은 유가족들이 비현실감에 빠져서 산다고 한다. ‘아이가 이제 없다는 것이 도무지 실감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내가 아닌 것 같고, 세상도 예전의 세상이 아닌 것 같은 이상한 느낌 속에서 살아지고있는 것이다.

이웃에서 유가족들의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서 가장 힘쓰는 일은 함께 집밥을 먹는 것이다. 유가족 부모들은 그날이후로 밥을 제대로 못하며 지내왔다. 나 먹겠다고, 식구들 먹겠다고 장을 봐서 음식을 만드는 것 자체에 죄의식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바깥에서 사서 먹거나 시위 현장에서 도시락을 먹거나 한다. 그런 집밖의 밥들로는 그저 허기를 면할 뿐이다. 집밥을 오래 못 먹으면 사람이 안정적으로 살 수가 없다. 그래서 이웃에서는 정성껏 풍성하게 집밥을 차린다. 유가족들은 집밥을 함께 먹으면서 어머니가 차려준 밥을 먹듯이 큰 힘과 위로를 얻는다고 한다.

이웃에는 유난히 밝은 방이 있다. 그 방은 유가족 부모들이 제대로 울 수 있는 곳이다. 어느 유가족 부모가 아이를 잃고 집에 돌아와 통곡을 했을 때 옆집의 이웃도 따라 울었다고 한다. 그렇게 밤마다 울음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다 100일쯤 지났을 때 옆집에서 신고를 했다. 유가족 부모의 울음소리로 인해 옆집의 일상까지 무너져 갔기 때문이다. 아이 잃은 부모를 생각하면 여전히 가엾지만, 출근도 해야 하고 내 아이도 학교에 보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런 이웃의 고충을 알기에 부모들은 목 놓아 울지 못하고 숨죽이며 흐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유가족들이 방해받지 않고 아무 때나 달려와서 실컷 울 수 있는 방을 마련한 것이다.

정혜신은 이웃에서 자신이 하는 상담보다 치유의 공기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전체적으로 치유의 공기가 만들어지면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그 공기 안으로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사람이 더 이상 잘못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와의 관계와 소통에서 어려움을 겪는 부모의 경우 정혜신의 다음 말이 도움이 될 것 같다.

나는 치유라는 것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다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고, 그것을 찾고 아는 과정에서 치유에 대한 개념이 분명해진다고 생각해요. 자식을 키울 때도 아이들에게 무얼 해주면 좋을지 찾아다니다 보면 자꾸 각론으로 빠지게 되는데, 반대로 부모 역할을 잘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생각하다 보면 스스로 자기성찰을 할 수밖에 없고 근본적인 접근을 하게 되거든요.”

정혜신은 치유가 거창하거나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 내가 이래도 괜찮구나’, ‘나만 이러고 있는 게 아니구나’,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이 원래 사람들이 많이 할 수 있는 생각이구나라는 걸 깨닫는 거라고 한다. , ‘나 이대로 괜찮다는 걸 깨닫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먼 길을 돌아와야 하는 존재인가.

아이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어떤 좋은 것을 사주고, 얼마나 맛있는 것을 먹이느냐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집안의 공기이다. ‘너 지금 이대로 충분해’, ‘네 모습 그대로 괜찮아’, ‘너는 존재 자체로 사랑스러워아이가 집에 들어온 순간 이런 공기를 느낄 수 있다면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세월호 유가족들의 깨어진 삶은 우리에게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외치고 있는 듯하다. 지금 내 아이가 누리고 있는, 남루하고 비루해 보이는 일상이 밤하늘의 별처럼 소중하고 또 소중한 것이라고.

 

 

그날 이후

-진은영

 

아빠 미안

2킬로그램 조금 넘게, 너무 조그맣게 태어나서 미안

스무살도 못 되게, 너무 조금 곁에 머물러서 미안

 

엄마 미안

밤에 학원 갈 때 핸드폰 충전 안해놓고 걱정시켜 미안

이번에 배에서 돌아올 때도 일주일이나 연락을 못해서 미안

 

할머니, 지나간 세월의 눈물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해서 미안

할머니랑 함께 부침개를 부치며

나의 삶이 노릇노릇 따듯하고 부드럽게 익어가는 걸 보여주지 못해서 미안

 

아빠 엄마 미안

아빠의 지친 머리 위로 비가 눈물처럼 내리게 해서 미안

아빠, 자꾸만 바람이 서글픈 속삭임으로 불게 해서 미안

엄마, 가을의 모든 빛깔이 다 어울리는 엄마에게 검은 셔츠를 계속 입게 해서 미안

 

엄마, 여기에도 아빠의 넓은 등처럼 나를 업어주는 포근한 구름이 있어

여기에도 친구들이 달아준 리본처럼 구름이 사이에서 햇빛이 따듯하게 펄럭이고

여기에도 똑같이 주홍 해가 저물어

엄마 아빠가 기억의 두 기둥 사이에 매달아놓은 해먹이 있어

그 해먹애 누워 또 한숨을 자고 나면

여전히 나는 볼이 통통하고 얌전한 귀 뒤로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는 아이

제일 큰 슬픔의 대가족들 사이에서도 힘을 내는 씩씩한 엄마 아빠의 아이

 

아빠, 여기에도 친구들이 있어

이렇게 말해주는 친구들도 있어

쌍꺼풀 없이 고요하게 둥그레지는 눈매가 넌 예뻐

너는 어쩌면 그리 목소리가 곱니,

어쩌면 생머리가 물 위의 별빛처럼 그리 빛나니.”

 

아빠! 엄마! 벚꽃 지는 벤치에 앉아 내가 친구들과 부르던 노래 기억나?

나는 기타를 잘 치는 소년과 노래를 잘 부르는 소녀들과 있어

음악을 만지는 것처럼 부드러운 털을 가진 고양이들과 있어

내가 좋아하는 엄마의 밤길 마중과 내 분홍색 손거울과 함께 있어

거울에 담긴 열일곱살, 맑은 내 얼굴과 함께, 여기 사이좋게 있어

 

아빠, 내가 애들과 노느라 꿈속에 자주 못 가도 슬퍼하지 마

아빠, 새벽 세시에 안 자고 일어나 내 사진 자꾸 보지 마

아빠, 내가 여기 친구들이 더 좋아져도 삐치지 마

엄마, 아빠 삐치면 나 대신 꼭 안아줘

하은언니, 엄마 슬퍼하면 나 대신 꼭 안아줘

성은아, 언니 슬퍼하면 네가 좋아하는 레모네이드 타줘

지은아, 성은이가 슬퍼하면 나 대신 노래 불러줘

아빠, 지은이가 슬퍼하면 다 대신 두둥실 업어줘

이모, 엄마 아빠의 지친 어깨를 꼭 감싸줘

친구들아, 우리 가족의 눈물을 닦아줘

 

나의 쌍둥이 하은언니 고마워

나와 함께 손잡고 세상에 와줘서 정말 고마워

나는 여기서, 언니는 거기서 엄마 아빠 동생들을 지키자

나는 언니가 행복한 시간만큼 똑같이 행복하고

나는 언니가 사랑받는 시간만큼 똑같이 사랑받게 될 거야,

그니까 언니 알지?

 

아빠 아빠

나는 슬픔의 큰 홍수 뒤에 뜨는 무지개 같은 아이

하늘에서 제일 멋진 이름을 가진 아이로 만들어줘 고마워

엄마 엄마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들 중 가장 맑은 노래

진실을 밝히는 노래를 함께 불러줘 고마워

 

엄마 아빠, 그날 이후에도 더 많이 사랑해줘 고마워

엄마 아빠, 아프게 사랑해줘 고마워

엄마 아빠, 나를 위해 걷고, 나를 위해 굶고, 나를 위해 외치고 싸우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성실하고 정직한 엄마 아빠로 살려는 두 사람의 아이 예은이야

나는 그날 이후에도 영원히 사랑받는 아이, 우리 모두의 예은이

오늘은 나의 생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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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기쁨
아베 피에르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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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 하나를 떠올린다면 무엇이 있을까? ‘부조리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우리 사회는 지금 대단히 부조리하다. 게다가 앞으로도 더 커다란 부조리를 향해 가게 될 것만 같다.

세계 경제 대국 10위권의 나라인데 절반 이상의 노인들이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해마다 쌓여가고 있는취업준비생들로 온 나라가 넘쳐난다. 대학생들과 취준생들 중에서 한 끼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있는 식사권을 잃은 이들도 매우 많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대학등록금을 갚아나기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보지만 낮은 최저임금 때문에 턱도 없다.’ 우리의 가혹한 아르바이트 현장은 대부분 알바생들의 먹을 권리에 대해 무심하다고 한다. 대학생 중에는 친구가 먹고 난 식판을 받아들고 배식대로 가서 밥과 반찬을 받아먹는 이들도 있다. 아픈 부모나 조부모 밑에서 라면조차도 끼니로 때우지 못하는 아이들 또한 점점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그 반대편에는 어마어마한 소비와 사치를 누리는 사람들이 있다.

몇 해 전 읽었던 피에르 신부님의 단순한 기쁨이렇게 부조리한 시대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길을 보여주는 책이다.

피에르 신부님은 페루의 장관이었던 친구와 세계의 부조리에 대해 토론을 하곤 했다. 뛰어난 수학자이자 탐구자이기도 했던 그 친구는 어느 날 이런 말을 하며 대화를 끝냈다고 한다.

명철한 시각으로 삶을 바라보면 부조리와 신비 사이에서 양자택일할 도리밖에 없어.”

피에르 신부님도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들에 의해 강조된 부조리가 인간의 마음속을 지배하는 악을 일깨워준 건 인정한다. 하지만 신부님은 그 부조리가 결국은 인간을 절망으로 인도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피에르 신부님에게 곧잘 묻는 질문이 있었다. “왜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나는 걸까요?” 인간의 본질을 파고드는 질문이다. 신부님의 대답은 간명하다.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이지요.”

그는 오직 인간만이 사랑을 할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사랑은 자유를 가진 존재만이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주 전체가 의미를 가지는 것은 이 광대무변한 우주의 아주 작은 행성에 자유를 지닌 존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 ‘사랑하면서 죽을 수 있기때문에 우주보다 더 위대하다고 신부님은 주장한다.

피에르 신부님에게 하나님은 사랑 자체인 분이다.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신비의 영역에 속한다. 하나님이 그 사랑을 인간의 마음 속 빈자리에도 새겨놓으셨다는 믿음, 그 사랑에 대한 믿음이 우리를 스스로 구원한다. 이것이 부조리가 아닌 신비를 선택하는 길이다.

피에르 신부님은 2차 대전 후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한 공동체인 엠마우스를 세우셨다. 엠마우스는 현재 44개국의 350여개 단체로 확대되어 가난한 이들의 삶터가 돼주고 있다. 엠마우스가 생겨난 초기에 있었던 일이다. 어느 아침에 벨기에 사제가 돌보고 있던 엠마우스로 경찰서장이 찾아왔다. 서장은 정신이상자 남편으로부터 도망친 아주머니와 네 명의 아이를 묵게 해달라고 부탁하러 온 것이었다. 사제의 허락을 받고 5명의 가족이 엠마우스에 도착했다. 공동침실에서 자고 있던 노숙인들은 잠에서 깨야 했다. 그들은 가족의 딱한 사정을 듣고 깨끗한 시트로 침대를 정리한 뒤 아이들과 어머니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그러더니 복도에 서서 커피를 마시면서 떠드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입 닥쳐. 소리 내지 말라구. 애들이 자고 있잖아!” 부랑자들의 가슴 속 빈자리에 하나님이 각인해 놓으신 사랑이 밖으로 출현한 것이다. 이보다 더 기적 같고 신비로운 일이 있을까.

예수님의 ‘8에 대한 피에르 신부님의 통찰은 매우 놀랍다. 예수님은 8복 중에서 첫 번째(“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와 마지막 복(“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을 현재형으로 말씀하셨다. 다른 복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자비를 입을 것이다등 미래형으로 표현하셨고. 신부님은 첫 번째 복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신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자신의 모든 재산을 나눠주는 사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국가의 대통령이건, 회사의 사장이건, 노동조합의 책임자이건, 교사이건, 매일 저녁 나의 능력과 특권과 재능을 가지고 약자들과 가난한 이들을 위해 무얼 했는가?’라고 자문하는 사람이다.”

또 여덟 번째 복은 순교자로 죽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한다. 세 사람이 있는데 그들 중 힘센 자가 가장 힘없는 자를 착취하려 할 때 나머지 한 사람이 네가 나를 죽이지 않고서는 이 힘없는 사람을 아프게 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날 천국이 이미 이곳에 와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피에르 신부님은 인류의 빈곤과 실업, 부패, 차별로 사회를 위협하는 악에 맞서 가차 없는 전쟁을 벌이는 것이야말로 평화를 굳건히 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 누구도 그것들과 무관치 않은 공범자이기 때문이다. 굶주린 아이들을 볼 때, 잠잘 곳 없는 가족들을 볼 때, 많은 젊은이들이 적당한 일자리를 찾을 희망이 없는 것을 볼 때 우리는 모두 분개해야 하며, 그 분노가 일으키는 자발적 행동들이 평화를 이루어가는 길이라고 한다.

신부님은 길거리에 나앉은 열아홉 가족들을 위해 불법적인 주택을 짧은 시간에 지은 적이 있었다. 수도와 전기 설비 등 적법한 조건을 갖추지 못한 채였다. 그 문제가 행정당국에 알려져 옛 친구였던 주택 장관으로부터 비난을 들어야 했다. 신부님은 그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여보게, 자네가 이 가족들에게 적법하게 주거지를 제공할 수 없는 바에야, 저들을 구할 유일한 방법은 불법으로 이미 저질러놓은 상황에다 자네를 몰아넣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니 저들이 합법적인 처지가 되도록 자네 부서들과 힘을 합쳐 일을 해결해 보게나.”

피에르 신부님의 삶을 다시 읽으며 나는 부끄러웠다. ‘나는 어른으로서 살고 있지 못하구나라는 부끄러움이었다.

어른 없는 사회의 저자 우치다 타츠루는 한 사회체계가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열 명 중에 두 명의 어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가 생각하는 어른의 모습은 이런 것이다.

길에 떨어져 있는 빈 깡통이나 유리조각을 보고, 그냥 지나가 버린다면 아이다. 어른은 그럴 때 선뜻 깡통을 줍고, 주변에 쓰레기통이 없으면 자기 집으로 가져가 분리수거해서 재활용품 수거일에 내다 놓는 사람이다.”

우치다 타츠루는 일본 사회에 어른인 사람이 5% 정도밖에 없기에 심각한 위기 상태라고 진단한다. 우리 사회에는 얼마만큼의 어른이 있을까? 인간은 부조리한 현실과 하나님의 신비 사이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우리는 둘 중에서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어른은 아무리 부조리한 상황에서도 신비를 선택하는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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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아 버림 - 내 안의 위대함을 되찾는 항복의 기술 데이비드 호킨스 시리즈
데이비드 호킨스 지음, 박찬준 옮김 / 판미동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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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호킨스는 국내에 번역된 그의 저작을 모두 읽었을 정도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 중에서도 [놓아 버림은 내게 가장 큰 인생의 지혜를 선사해준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놓아 버림(Letting go)’은 자아의 생각과 감정을 항복함으로써 자유를 얻는 역설적인 기법이다. 호킨스는 욕망하면 할수록 그 대상은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고 말한다.

강한 욕망의 에너지는 그 대상으로 하여금 저항의 에너지를 불러일으키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남녀 사이의 역학 관계와 비슷하다. 사랑한다며 무작정 들이대는 이성은 상대로 하여금 도망치게 만들지 않는가. 호킨스는 무언가를 욕망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 대상이 내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한다.

호킨스 식으로 원하는 것을 갖는 법에 대해서 배워보자. 호킨스는 필요로 하는 것을 원한 뒤, 그 욕망을 놓아 버리라고 말한다. 그래야 그 대상이 자유로워져서 내게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렇게 연애의 법칙과 똑같은가! 그의 실전 노하우는 이렇다.

호킨스는 몇 년 동안 뉴욕 시내에 있는 아파트를 얻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그가 거주하고 있는 곳에서 일터까지 너무 멀어서 출퇴근 시간이 지나치게 길었기 때문이다. 그는 목표를 구체적인 세부사항까지 자세히 적으라고 권한다. 호킨스가 적은 아파트의 조건은 이런 것이었다.

-임대료가 알맞고, 70번대 블록에서 5번가에 있고, 거리 소음이 큰 길가는 아니면서 8~9층 이상가고, 거실과 방 하나가 있는 정도.

다음 날, 그는 많은 상담 환자들과 여러 차례의 회의로 인해 바쁘게 지냈다. 회의를 하거나 환자를 보는 사이사이에 아파트를 욕망하는 느낌이 인식될 때마다 그가 한 일은 그 욕망을 놓아 버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루를 지내며 아파트에 대한 일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오후에 마지막 환자를 보고 난 호킨스는 문득 시내로 드라이브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와 달리 한가한 도로를 30분 만에 질주한 그는 73번 블록의 렉싱턴 가 부근에 있는 부동산 중개소 앞에 차를 세웠다. 우연처럼 사무소 바로 앞의 주차 공간이 딱 하나 비어있었다. 호킨스가 중개인에게 5번가 아파트를 원한다고 농담처럼 얘기했을 때, 중개인이 놀란 눈으로 이렇게 말했다.

, 정말 운이 좋으십니다! 정확히 한 시간 전에 76번 블록에서 5번가를 통틀어 딱 하나 남은 임대 아파트가 매물로 나왔습니다. 9층이죠. 이면 도로에 있고, 거실과 방 하나가 있는 구조입니다. 임대로도 중간에 올리지 않는 조건으로 월 500달러니까 합리적이죠. 칠도 새로 해 놓아서 언제든지 입주하실 수 있습니다.”

중개인과 함께 가본 그는 자신이 목표한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아파트 발견한 뒤 그 자리에서 계약을 했다고 한다. 그가 목표한 것을 적고 놓아 버림 기법을 시도한 지 24시간 만에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호킨스는 그런 경험을 수월하게 하곤 했다고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의 욕망이 사욕(私慾)이 아니라 환자들을 돕고 사람들을 살리는 공적인 욕망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마땅히 그러해야 할 것 같다. 개인들의 사사로운 욕망을 채워주는 건 하나님의 섭리에 어긋나는 일일 테니까 말이다. 호킨스는 적당한 수준의 욕망을 가진 뒤, 그 욕망을 완전히 항복하라고 권한다. 이를테면 아파트가 생기면 좋고, 생기지 않아도 좋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욕망을 완전히 항복한 채 목표한 것을 사랑스럽게 마음속으로 그리는 것이것이 호킨스 식 놓아 버림으로써 얻는 기술이다.

낮은 의식 상태(수치심, 죄책감, 분노, 자부심 등)에 있는 이들에게 (하나님과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는 부정적이고, 거부하고, 좌절을 주고, 마다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반면에 높은 의식 상태(용기, 수용, 사랑 등)에 있는 이들에게는 우주가 전혀 다르게 경험된다. 잘 주고, 다정하고, 무조건 찬성하는 부모처럼 내가 원하는 대로 전부 갖게 해주고 싶어 하기 때문에 청하기만 하면 그것은 내 것이 된다. 이를테면 하나님의 은총이 내려오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기법으로 근원적 감정 찾기

 

호킨스는 수천 가지, 수백만 가지의 생각을 단 하나의 감정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결국 감정이다. 내면에 깔려 있는 감정을 무시하거나 느끼지 못하면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행동의 이유를 자각하지 못하고 대신 갖가지 그럴 듯한 이유를 지어낸다고 한다. 사실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행동의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어떤 행동이든 그 이면에 깔려 있는 근원적 감정을 찾을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무엇 때문에?”라는 질문을 거듭 사용하는 것이다. 답이 나올 때마다 그에 대해 또다시 무엇 때문에라고 질문하여 근본 감정이 드러날 때까지 반복한다. 호킨스는 벤츠를 사고 싶다는 욕망에 대해 무엇 때문에?” 기법을 적용한 사례를 이렇게 소개한다.

무엇 때문에 벤츠를 사고 싶은 걸까?’ -> 사회적 지위와 인정, 존경, 확실한 성공의 상징 같은 것을 얻고 싶은 거지.’(무엇 때문에?) ->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인정받고 싶은 거지.’(무엇 때문에?) -> 안전하다고 느끼고 싶어서지.’(무엇 때문에?) -> 행복을 느끼고 싶어서지.’

호킨스는 인간 행동의 근본 감정은 공포를 극복하고 행복을 성취하는 것외에 다른 목표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감정 자체에는 우리로 하여금 안전을 추구하도록 몰아가는 공포가 깔려 있는 셈이다.

호킨스는 부정적인 감정들(무기력, 욕망, 분노, 자부심)을 놓아 버리면 의식 수준이 받아들임과 사랑, 평화의 상태에 이른다고 말한다. 그는 받아들임의 의식 수준을 이렇게 설명한다.

받아들임의 상태에는 아무것도 바뀔 필요가 없다는 느낌이 있다.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완벽하고 아름답다. 다른 사람들과 모든 생명체에게 연민을 느낀다. 받아들임 상태에서는 희생하는 느낌 없이 반사적으로 타인을 보살피고 도와준다. 받아들임의 상태에 있을 때면 친구를 비판하는 대신 사랑한다. 모자란 점이 있더라도 기꺼이 사랑하며 눈감아 준다. 이 우주에서 내 눈앞에 있는 사람들 모두는 사실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이 순간에 각자 갖고 있는 것만으로 그렇게 하고 있음을 안다.”

지면이 부족하여 사랑과 평화의 의식 수준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을 듯하다. 핵심은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든지 그의 태도와 모습에서 사랑의 에너지와 평화의 느낌이 뿜어져 나온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내면에 쌓여 있는 부정적 감정들을 거듭 놓아 버림으로써 가장 깊은 곳에 감춰져 있는 사랑이 밖으로 나타나게 할 수 있다.

사랑의 상태에서는 아침에 일어나면 삶에서 새로운 하루를 맞이함에 감사하고, 주위의 모든 사람을 위해 삶을 더 좋게 만들려고 한다. 사랑이 있으니 만사가 나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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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욱 2017-10-16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놓아버린다고해서 무작정 욕망을 포기하란 말이 아니었군요. 오해하기 쉬운 부분을 잘 풀어주셔서...잘 읽었어요.
꼭 읽어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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