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의 이야기는 외부의 시선에 신경 쓰며 자기를 잃어버린 고등학생 수리와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아 자기를 잃어버린 고등학생 류가 버스 사고로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며 시작한다. 영혼이 된 이들은 영혼을 관리하는 선령으로부터 일주일 내에 육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살아있음을 느끼는 '영혼'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지게 될 거라는 말을 듣는다. 그렇게 이들은 육체로 돌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기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나나>를 읽으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물었다. 그간 '영혼이 없다', '영혼을 갈아 넣었다'는 말을 쉽게 사용해왔다. 문득 그 말을 듣거나, 그 말을 사용했을 때의 나를 떠올리니 외부에 집중하여 정작 내면의 자기를 돌보지 않고 살아왔던 것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아침이 오면 눈을 뜨고, 밤이 되면 잠을 자는 그저 반복하는 삶이 아니라 순간순간마다 충만한 '영혼'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영혼과 육체가 분리된 수리와 류는 제삼자의 시선으로 자기를 바라본다. 그러다 평소와 같은 생활로 겉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모든 일에 무감한 육체를 발견하며 '어떻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깨달음을 얻는 그들을 보며 공감을 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완벽해지려 애쓰는 수리와 외부로부터 받은 상처로 누군가로부터 외면당하고 싶지 않아 사람들의 요구에 거절하지 못하는 착한 아이로 살아가는 류의 모습은 소설을 읽고 있는 나의 어떤 모습과 가깝다고 느꼈다. 그리고 나뿐 아니라 이들이 겪는 갈등은 자기를 돌아볼 시간이 없어서, 혹은 그 시간조차 아깝게 여겨지는 지금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며, 필요한 이야기라고 여겨졌다. 또한 소설 <나나>는 영화나 연극과도 같은 몰입감을 선사했기에 모든 독자가 자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이들의 이야기에 공감하지 않을까 싶었다. 소설을 읽기 전 우려를 했던 걱정과 달리 소설 <나나>는 그들의 이야기로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그 덕에 울림을 느끼는 장면에서는 잠시 멈추고 나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