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사람들
박솔뫼 지음 / 창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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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솔뫼 작가의 신작 『우리의 사람들』은 문장 하나하나를 되새길수록 잔잔한 울림을 준다.

처음 읽었을 때는 예상 밖의 장면과 반복, 그리고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문장으로 독특한 인상을 받았다면

두 번째 읽었을 때는 이러한 실험적인 장면과 문장으로 작가가 전하려는 이야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의 사람들』에 각각의 단편들이 현실만큼 생생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럼에도 현재로서는 선택하지 않은 걸음들을 간 사람을 가정하는 것이다.'(<우리의 사람들>12P) 허구이지만 실재하는 삶보다 더 가깝게 다가오는 이유는 인물이 현실적인 삶에서 어쩌면 실현됐을 수도 있을 가상의 세계를 넘나들기 때문이다. 장면과 장면의 부딪힘과 반복은 일종의 거리 두기로 작동하고, 마치 부조리극을 보듯이 독자는 인물의 의식을 끊임없이 따라가게 된다. 게다가 소설 안에는 인물의 성격이나 현재 처한 상황을 떠올릴 만한 단서가 많지 않다. 그저 인물들이 모두 낯선 곳에서 살아간다는 점이 두드러지게 드러날 뿐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독자는 소설 속 사건이나 인물의 상황에 이입하기 보다 소설 안에 내포된 문제의식에 집중하게 된다.

그들은 중심에서 조금 멀다고 할 수 있는 낯선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을 반복적으로 떠올린다. 그리고 그들이 사유하는 문제의식은 우리의 고민과 맞닿아 있기에 그들이 일말의 이해의 가능성을 찾아내려는 노력은 잔잔한 울림을 제공한다. "그렇게 친구들은 사람들은 이웃과 모르는 사람들은 심지어 나조차 모르는 사람으로 낯선 곳에서 많지 않지만 누군가에게 손을 잡을 수 있는 몇몇의 사람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의 사람들> 20P) 익숙함은 감각을 무뎌지게 한다. 타인을 어떤 사람이라고 인지해버리면 눈은 닫혀버리고 다른 방향으로 보려는 노력을 기울이기 쉽지 않다. 그런데 인물은 예민한 감각으로 우리가 모르는 여러 목소리들을 포착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사유하려는 노력을 기운다.

누군가를 어떤 존재라고 규정하지 않기 위해 여러 가능성을 떠올리고, '말'을 하는 데 있어 조심스러워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러다 보면 이해 불가능할 것만 같던 '나'와 '너'가 예기치 않게 연결되는 장면이 등장한다. 어둠 속에서 자리를 찾지 못하는 '나'에게 빈자리라며 팔을 잡는 그 사람이 있었고, 너에게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 거라며 안아주는 그가 있었다. '나'는 추위에 약한 사람이기에 겨울이 되면 조건에 충족하지 못하는 고립된 인물이 되어버린다. 그런 '나'는 나와 같은 사람들을 떠올린다. 잊히고 고립되고 중심과 먼 인물들. 그들을 사유하는 장면들의 반복은 기존의 질서에서 벗어나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내가 유난히 힘들어하는 건 아닌가 자책하지 않아도 되는,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느끼게 하는, 영영 사라지는 게 아니라 남는다고 생각하게 하는, 그래도 된다고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길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소설에는 '동면'이 자주 등장한다. 어쩌면 먼 과거에 인간도 동면을 했을 수 있다는 가설은 힘겨운 현실을 회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희망으로 읽히는데 그 이유가 '동면'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긴 겨울잠을 자면서 서로를 챙겨주는 장면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긴밀하게 이어진듯한 동면에서의 '공동생활'은 아름답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소설을 읽다 보면 쉽거나 자연스러운 일이란 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박솔뫼 작가가 제시하는 여러 가능성의 삶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발견하게 한다. 인물의 의식을 따라가는 것 자체가 세계와 타자를 이해하는 하나의 연습으로 다가왔다. 무언가를 쉽게 판단하거나 판단 당하지 않거나 쉽게 가정하지 않으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왜'와 '어떻게'라는 질문과 관심을 가지고 '너'의 자리에 가닿으려 하는 연습. 그런 우리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면 새로운 '광장'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을 심어주는 소설이었다.

시간을 끊임없이 바라보고 와야 할 것들에 몰두하고 사람들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찾아내고자 하는 이들은 와야 할 것이라 믿는 것들을 이미 연습을 통해 살고 있을 것이라고.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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