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0월 2주
대한민국 대표 미남배우 정우성. 이제는 아시아를 넘어 칸과 베니스를 통해 세계로 뻗어나가려 하는 배우 정우성. 또 한명의 월드스타를 기대하긴 하지만 아직은 좀더 행보를 지켜보아야겠지만, 어쨌든 오우삼, 수 차오핑 감독의 <검우강호>의 주연까지 맡은 그는 이제 명실상부 한국만이 아닌 아시아의 배우라 할 수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정우성은 유독 중국과의 길고 특별한 인연이 많은 배우라는 점이다. 어느새 10년도 훌쩍 넘게 된 그의 필모그라피에서 중국과 관련이 있는 영화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것도 그의 배우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꾸준히말이다. 본격 중국 무협영화까지 무려 주인공으로 섭렵한 기념으로, 이른바 '중국'과 관련된 그의 작품들을 순서대로 모아보았다. 중국 영화에 출연하거나 중국 감독이나 배우와 작업했거나 중국땅에서 촬영을 했거나, 참 다양한 방식으로 중국을 누벼왔구나~^^
상해탄 (1996)
감독: 반문걸
주연: 유덕화, 장국영, 영정
정확한 제목은 <신(新)상해탄>이다. 이 영화는 80년대 주윤발 주연의 인기 TV시리즈인 <상해탄>의 리메이크이다. 혼란스럽던 20세기 초의 상해를 배경으로, 일본군의 징집에서 탈주해 저항세력에서 활동하던 허문강(장국영)과 허드렛일로 가난하게 살다 허문강을 만나 함께 암흑가를 주름잡게 되는 정력(유덕화), 그리고 상해의 암흑가 보스 풍정요의 딸 정정(영정) 이 세 사람의 사랑과 우정, 배신이라는 전형적인 느와르의 스토리가 펼쳐진다. 드라마와 달리 영화는 세 인물 모두를 주인공으로 각각의 시점을 동시에 부각시켰고, 그 때문에 이야기가 매끄럽지 못하고 산만하다. 하지만 '90년대 홍콩 느와르잖아'라는 관대한 마인드로 언제 봐도 잘생긴 유덕화와 장국영이 연기대결을 펼치는 서로 다른 매력에 빠져 본다면, 뭐 넘겨 줄 수 있다...-_-;;
이 영화에 '특별출연'한 정우성은 허문강이 조직을 배신했다고 오해하고 그를 처단하러 찾아온 저항세력의 동료로, 중반쯤에 느닷없이 잠깐 얼굴을 비춘 후 후반에야 제대로 등장한다. 분량도 적은데 목소리까지 더빙되어 '정우성이다!!' 라는 느낌은 확 죽어버렸지만, 더빙으로 대사 연기가 소화되지 않았으면 훨씬 어설퍼보였을지도 모른다. 당시엔 아직 한국어 연기도 어색했던 초창기 시절이었으니까. 게다가 이 영화가 주인공 세 명만 다루기도 헉헉대기 때문에 정우성은 후반부와 결말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캐릭터 설명이 굉장히 부족하다. 비주얼이야 말할 것도 없이 참으로 훌륭하고, 자신까지 희생하며 우정을 위한 총격전까지 선보이지만 개연성이 부족해 비장미가 반감된다. 이래저래 아쉬운 점은 많지만, 그래도 뭐 아직 신인인데 벌써 중국에 눈도장을 받은 것만으로도 아시아 스타의 기운은 충만한 스타트였다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무사 (2001)
감독: 김성수
주연: 정우성, 주진모, 안성기, 장쯔이
<비트> <태양은 없다> 등으로 반항적인 눈빛의 터프가이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정우성. 그 이미지를 계속 이어 이번에는 장대한 액션 사극을 위해 중국의 광활한 대륙으로 날아갔다. 제작기간 5년, 총 제작비 70억, 총 스탭 인원 300명, 5개월 동안 중국대륙 10,000km 횡단의 올 로케 촬영의 대작 <무사>.
그는 고려시대에서도 여전히 말없이 반항기 가득한 눈빛을 쏘아대며 고독하게 사막바람에 긴머리 나부끼며 창을 휘두르는 터프가이로 등장한다. 물론 그 터프가이의 내면에 고독함의 정서를 가득 채우려면 그의 처지는 서러워야 한다. 안그래도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첩자로 몰리고 사막에 고립되어 버린 불우한 고려무사들의 이야기인데, 그의 처지는 한술 더 떠서 제대로 대접도 못 받는 노비 신세다. 그의 주인이 죽기 전에 자유민으로 풀어주었으나 그래봤자 사람들이 갑자기 똑같이 대해주지도 않거니와 터프가이 역시 사람들에게 살갑게 굴기 보다는 마이 웨이를 걸으니 더욱 눈엣가시로 서러움을 당하게 된다. 하지만 상관없다. 히로인인 명나라의 공주는 묵묵히 자기를 지켜주는 이 노비출신 무사에게 반하니까.
공주와의 애매한 로맨스 아닌 로맨스와 이로 인한 장군과의 심화된 갈등은 긴장감을 높이거나 흥미를 자극하는 게 아니라 짜증을 유발하긴 했지만, 재미없는 캐릭터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장대한 대륙에서 긴 창을 거침없이 휘두르며 성큼성큼 뛰어다니는 정우성의 모습은 생각보다 어색하지 않았다. 한국땅에선 만들 수 없는 거대 스케일, 공들인 액션과 전투씬, 감동 코드 좋아하는 한국인의 최루포인트를 대놓고 노린 클라이막스, 그리고 최고의 배우들(인기남 정우성, 주진모와 그를 뒷받침할 국민배우 안성기, <와호장룡>으로 막 주목받기 시작하던 장쯔이)까지 갖추고도 답답하고 지루한 스토리로 관객의 호응은 뜨듯미지근했지만... <무사>는 이후 정우성과 '무협' 계열 영화의 인연을 지속시키는 연결고리를 만든 첫번째 작품이었다.
데이지 (2006)
감독: 유위강
주연: 정우성, 이성재, 전지현
<무사> 이후 정우성은 그를 톱스타로 만들어준 기존의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시작한다. <똥개>라는 이미 제목만으로도 그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극단적으로 망가진 모습을 불사하고 나더니 슬슬 부드러운 연기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겉으론 여전히 무뚝뚝한 남자의 모습이라도 그 내면은 더이상 반항과 고독이 아닌 멜로의 향기가... 대표적으로는 <내 머리 속의 지우개>를 생각하면 되겠다.
이러한 시기 그의 변화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자, <무간도>시리즈로 홍콩 느와르를 부활시킨 유위강 감독에 스타 전지현과 연기파 이성재가 함께 캐스팅된 화제의 대작이 <데이지>이다. 유명한 홍콩 감독, 한국 배우가 모인 대 프로젝트의 배경으론 아시아도 시시하다, 이국적 분위기 물씬 나는 네덜란드 100% 올로케. 광장에서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 여자와 비밀경찰, 그리고 킬러의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한 액션이 가미된 멜로라는 설정에 네덜란드까지 날라갔으니 솔직히 이 영화는 작정하고 '뮤직비디오'를 찍을 셈이었던 것이나 마찬가지다. 20세기 보다 업그레이드 된 영상미와 탄탄한 스토리에 감성넘치는 비장미를 담아 걸작 느와르를 만들어낸 유위강 감독이지만, <데이지>는 화려하고 분위기 한껏 잡는 외관에 비해 내실은 실망스러운 "빛좋은 개살구"같은 느낌의 영화였다. 정우성도 다시 '멋진 모습'밖에 못보이던 시절로 살짝 돌아간 느낌이었다.
중천 (2006)
감독: 조동오
주연: 정우성, 김태희
<무사> 이후 오랜만에 다시 무협 분위기의 액션 시대물의 세계로 돌아온 정우성. 몇년이나 흘렀는데도 도포에 긴머리 휘날리는 사나이를 본 순간 바로 <무사> 때 모습이 오버랩되며 식상한 느낌이 들었던 건 왜일까... ㅋㅋ
총 제작비 130억, 편의점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중국 소도시 헝디엔에서 6개월간 올로케 촬영.(이곳은 <무사>를 찍었던 곳이기도 하다) 업그레이드된 건 제작비만은 아니다. 일단 이 영화는 통일신라 시대라는 애매모호한 사극의 틀을 가지고 있으나 이 영화의 장르는 엄밀히 판타지 액션 멜로물이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주요한 배경은 결국 '중천'이라는 판타지 세계이므로 현란한 CG가 덧입혀져 <무사>때와는 다른 분위기를 내고 있다. 또한 '무사'라는 설정과 외모는 비슷하지만 이번에 정우성이 맡은 '이곽'이라는 인물은 훨씬 감성적인 캐릭터이다. 이제 정우성은 한 여자를 애절하게 사랑하는 로맨틱함도 지닐 줄 아는 업그레이드 터프가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여자가 죽자 그녀를 찾아 이승도 미련없이 등지고, 재회한 그녀가 자기를 기억조차 못해도 한결같이 사랑하며 지켜주는 뚝심의 멜로사나이 이곽. 하지만 그 일편단심에 감동하고 싶어도 그 사랑을 받아주는 상대가 너무 뻣뻣해서 절절한 커플에의 몰입도가 뚝 떨이진다. 차라리 옴니버스 영화 <새드무비>에서 임수정과 잠깐 눈물 짜는 멜로 에피소드를 보여준 게 더 와닿을 정도. 스토리도 진부하고 허술한데다 축축 처지기까지 하고, 그나마 눈길 사로잡아야 할 '판타지'와 '액션'조차 CG는 쏟아붓고 있지만 그다지 개성이 없어서 중국무협물 짝퉁같은 느낌만 든다. 이 영화에 관해서는 <무사>의 조감독이었던 조동오 감독의 데뷔작이라는 이유로 우리나라에서 흥행 성공의 역사가 없는 장르에다 과거 생고생 했던 타지에서 또 와이어 달고 고생해야 할 것도 마다하지 않은 의리파 정우성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을 뿐...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2008)
감독: 김지운
주연: 송강호, 이병헌, 정우성
영화팬이라면 서부극에의 향수나 동경을 느껴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서부극의 하면 오리지날은 미국이지만 이 재밌는 걸 미국만 하란 법 있나. 이탈리아엔 마카로니 웨스턴이 있고 심지어 섬나라 일본까지 스키야키 웨스턴이라는 변종 웨스턴을 만들었다.
한국도 김치 웨스턴을 만들자! 근데 한국의 어디서 서부극을 찍지? 아무리 생각해도 서부극의 묘미인 메마른 바람이 부는 사막은 없고, 그렇다면 우리도 일본처럼 판타지적인 가상세계를 만들어야 하는 건가? 아니, 비록 한국땅은 아니지만 주요 활동무대인 곳이 있었다. 바로 만주!! 구한말~일제시대 쯤의 배경이라면 한국과 중국 모두 격동의 혼란기이니 황량하고 스산한 무법천지의 시대 배경도 딱이요, 총 들고 말 타고 카우보이 행색으로 뛰어다닌다고 해도 어색할 것 없다! 만주의 카우보이가 된 정우성!
자꾸 제작비 얘기가 나오니 좀 그렇지만 일단 정우성이 중국을 갔다 하면 다 대작인지라... 게다가 갈 때마다 전작의 스케일을 능가하는 데다 항상 초호화 캐스팅의 대작이다. 제작비 170억에 중국 둔황 로케이션. 이러다 거의 중국에서만 살게 되겠다. 일본군이 남긴 정체불명의 지도를 놓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열차털이범 '이상한 놈'과 냉혹한 약탈자 '나쁜 놈', 그리고 현상금 사냥꾼인 '좋은 놈'과 기타 일본군, 마적단까지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펼쳐진다. 세 놈들을 살펴보면 뭐 원체 개성의 대명사인 독보적 존재 송강호님도 그렇고 다크서클까지 칠하며 외모는 물론 첫 악역이미지까지 변신해 완전히 색다른 연기를 보여준 이병헌...에 비해 좋은놈 정우성은 참 얌전하다. 밋밋할 수도 있는데, 그 밋밋함을 압도하는 것은 바로 이젠 관록까지 쌓인 그의 멋진 비주얼. 한국인에게 이렇게 웨스턴이 어울리는 배우가 있었던가. 달리는 말 위에서 장총을 연사하는 모습만으로도 이 영화에서 그의 존재감은 충분했다... <놈놈놈>은 정말 영화는 기존의 정우성의 이미지와 스타성을 완벽하게 유지하면서 잘 써먹은 영화란 생각이 든다.
호우시절 (2009)
감독: 허진호
주연: 정우성, 고원원
시인 두보의 도시, 아름다운 청두로 날아간 정우성. 이번엔 뜻밖에도 중국에 출장을 간 정말 평범한 30대 회사원이자 잔잔하게 옛사랑의 향수를 물씬 이끌어내는 대륙의 로맨틱 가이가 되었다.
중국 출장을 온 첫날, 동하는 두보초당에서 우연히 여행 가이드를 하고 있던 미국 유학시절의 옛친구 메이를 만난다. 한국 남자와 중국 여자, 그리고 영어로 이루어지는 그들의 대화는 묘하게 낯설면서도 신기하게 어울렸다. 이들이 함께 거니는 대나무 숲이나 유유자적 삼삼오오 짝을 이뤄 춤을 즐기던 거리 등의 배경이 조금은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론 익숙한 일상의 느낌이 났던 것처럼. 두 사람은 함께 옛 추억을 더듬지만 같은 추억도 두 사람은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함께 시간을 보낼수록 둘은 점점 더 예전의 좋았던 시절로 흠뻑 빠져들어 간다. 하지만 감정이 넘쳐흐르던 순간, 지금 그들이 서로 다르게 걸어온 현실이 감정의 물결 위로 드러난다. 시를 쓰던 동하는 건설 중장비 회사를 다니는 아저씨(?)가 되어있고 여전히 청초하고 고와보이는 메이는 결혼과 그 후에 겪은 아픔을 끌어안고 있다. 아련한 추억은 아름답지만 그 센티멘털함에 사로잡힌다 한들 더이상 현실은 아니다. 하지만 그 인연이 때마침 좋은 비를 만나 다시 좋은 시절로 바뀔 수도 있는 것. 뭐 포스터에서도 유난히 싱그러운 저 초록빛 녹음같은 이미지의 예쁜, 하지만 허진호 영화답게 비현실의 낭만만 가득한 멜로는 아닌, 그런 영화이다. 무엇보다도 그냥 과거의 풋풋함과 현재의 성숙함을 고루 보여주는 정우성과 고원원 커플이 굉장히 잘어울려서 보기 좋았던 영화.
검우강호 (2010)
감독: 오우삼, 수 차오핑
주연: 정우성, 양자경, 서희원, 여문락
<상해탄>으로 중국영화에 첫출연한 이래 14년이 흘러... 홍콩영화 전성기 시절 느와르와 함께 쌍벽을 이루던 무협영화에서, 이젠 특별출연이 아닌 주연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중국어도 직접 소화하며 더빙당하던 시절에 안녕을 고하고~ 게다가 감독은 이제 세계적인 거장이 된 오우삼!(과 수 차오핑..) 마침 2010년에는 베니스영화제에서 오우삼 감독이 평생공로상을 받았고, 그 해의 신작에서 한국배우가 주연을 맡았다는 점이 웬지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실은 이전의 <적벽>때부터 러브콜을 보냈지만 <놈놈놈> 촬영 때문에 출연이 늦어진 거라지만. <적벽>이 훨씬 블록버스터급 대작이긴 하지만 오히려 <검우강호>쪽에 출연한 것이 더 행운이었던 것 같다. 우선, '우리도 대단한 거 만든다!?'라고 외치는 듯한 중국식 물량공세가 두드러진 블록버스터보다는 오랜만에 옛 정통 무협물의 정취를 살린 이 작품 쪽에 좀더 정이 가고, 또 그렇기에 오우삼이 정우성에게 반한 이유라는 "멜로 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에서도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눈빛"도 더 잘 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절대 무공을 얻게 해주는 라마의 유해를 둘러싸고 이를 노리는 검객들, 주인공들은 실력을 감추고 조용히 숨어있는 고수, 하지만 원수와 사랑에 빠지는 기구한 운명이라는 큰 줄기는 참 간결하고도 익숙하다. 오히려 외신들의 "동양판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라는 말은 우리에게는 그다지 느낌이 와닿는 비유가 아니다. 오랜만에 거창한 대작이 아니라 어긋난 운명에도 서로를 지극히 사랑하며 지키려하는 주인공들의 사랑이야기가 그려지는 것이 좋고 거기에 곁들여진 유려한 액션도 극의 분위기를 요란하게 해치기 보다는 잘 어우러져 좋은 영화. 아무래도 무협의 관록도 있는지라 정우성보다는 양자경이 더 멋지긴 하지만.
오우삼 감독은 차기작에도 정우성과 함께하겠다니, 앞으로도 정우성은 더욱 본격적으로 중국을 누비게 될 것 같다~ 지금까지 참으로 차근차근히 스텝 바이 스텝 발전해 온 배우 정우성. 앞으로는 어떤 영화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또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