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6월 4주
언젠가부터 헐리웃에서 줄줄이 쏟아내고 있는 코믹스 기반의 슈퍼히어로 영화들. 이젠 그 수도 꽤나 많아져서, 국내에선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히어로들도 소개되고 있으며, 그 여럿을 한데 묶어 팀을 결성할 프로젝트도 진행중인 지경이다. 처음에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정도만 봤을 때 뭐 슈퍼히어로의 컬러야 뻔한 성조기색-빨강 파랑 아니면 어둠의 검정 정도지... 하고 말았었는데, 이렇게 온갖 히어로들이 늘어나다 보니, 은근히 컬러풀하더란 말이다. 한시대를 풍미한 베*통의 저 유명한 카피를 슈퍼히어로 세계에 갖다붙여도 어울릴 법하다. 이름하여 "United Colors of Superheroes". 각각의 슈퍼히어로들을 컬러별로 묶어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1. 가장 대표적인 슈퍼히어로의 컬러. 미국산이라는 출신을 알려주는 강렬하고도 촌스러운 빨강-파랑 배합의 성조기 컬러 히어로들! 가끔 배경에 성조기가 펄럭거려 주면 완벽한 한 세트를 이루지만, 미국을 좋아하지 않는 외국인에겐 거부감을 줄 수도 있는 게 단점.
슈퍼맨 (DC 코믹스)
스파이더맨 (마블 코믹스)
간혹 놀림의 대상도 되지만 그래도 바뀔 순 없는 영원한 슈퍼히어로 의상의 정석. 파란 쫄쫄이에 빨간 팬티를 덧입어 포인트를 주고, 하늘을 날 때 멋지게 펄럭거려줄 빨간 망토를 장착. 댄디한 슈퍼맨은 머리도 기름발라 단정히 넘겨주신다. 여심을 홀릴 애교머리는 옵션.
스파이더맨은 무난하게 히어로의 정석 컬러를 쓰지만, 정체성에 어울리게 거미줄 장식을 더해주는 센스. 좀더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기 위해 얼굴까지 슈트를 뒤집어썼는데, 덕분에 강렬한 느낌은 나지만 숨쉬거나 말하기 불편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미국 중산층에서 잘 자란 느낌 폴폴 풍기는 슈퍼맨과 달리 직접 의상을 디자인하고 제작한 스파이더맨은, 영화 2편에서 저렴하게 만든 옷의 불편함을 언급하기도. ㅋㅋ
2. 너무 대놓고 성조기 컬러를 쓰기가 멋적다면, 둘 중에 하나를 주조색으로 내세워보자. 강렬한 붉은색이야 단색으로도 우리의 히어로에게 훌륭한 색깔! 파란색은 단색으로서는 눈에 띄지도 않고 촌스러울 위험이 있으므로 그것을 어떻게 커버하느냐가 관건이 되겠다.
아이언맨 (마블 코믹스)
데어데블 (마블 코믹스)
처음엔 이 깡통은 뭐야 하고 비웃었지만 막상 영화속에서 박력있게 날아오르는 모습에는 환호하게 됐던 아이언맨. 돈도 많고 똑똑하고 잘나디 잘난 마초맨 토니 스타크의 이미지와 불을 뿜으며 시원시원하게 기계의 괴력을 내뿜는 아이언맨에게 강렬한 레드만큼 잘 어울리는 컬러가 있을까. 그리고 골드 컬러매치와 조잡한 로고 대신 가슴에서 번쩍번쩍 빛나는 인공심장의 빛으로 고급스러움도 살리고~
한편 같은 레드 계열이지만 하늘로 빵 치솟은 아이언맨과 달리 땅으로 푹 꺼져버린 비운의 히어로 데어데블. 너무 잘난 토니 스타크보다 장애와 아픔을 지닌 매트 머독이 더 인간적이고 멋진 히어로가 될 수도 있었지만, 이 영화는 그의 매력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어둠속을 사는 주인공답게 어두운 톤의 붉은 의상을 입지만 매력도 공감대도 잃어버린 영화속에서는 그저 칙칙하게만 보일 뿐... ㅠㅠ
판타스틱4 (마블 코믹스)
캡틴 아메리카 (마블 코믹스)
4명으로 이뤄진 팀으로 활동하는 히어로 판타스틱4는 각각의 능력에 따라 몸의 변화에 모두 맞춰줄 수 있는 특별한 슈트를 단복으로 입는다. 똑같은 디자인에 컬러로만 서로를 구분하는 일본산 히어로 파워레인인저와 달리, 각각 개성이 너무 강한 미국산 판타스틱4는 슈트를 푸른색으로 통일했다. 만약 네명이 다 강렬한 레드컬러였다면 시각적으로 피로했을지도 모르니, 튀지않는 푸른색은 굿초이스. 게다가 이들이 과학자 출신임을 생각하면 이지적이고 차분한 이미지에도 푸른색이 어울린다. 웃통을 벗고 불그레한 빛의 바위 피부를 드러내고 다니는 벤과 시뻘겋게 불타올라주는 자니가 있으니 균형도 맞고.
그리고 이제 조만간 개봉을 앞두고 있는 캡틴 아메리카.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그의 컨셉은 모든 것이 '미국'-그 상징인 '성조기'에 맞춰져 있다. 그럼에도 그를 성조기 컬러로 분류하지 않은 것은, 일단 의상의 주조는 파란색이라서 -_-;; 성조기의 포인트는 그의 상징인 무적의 방패에 집중되어 있다. 평범한 그의 푸른 수트는 방패를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캡틴 아메리카는 슈퍼맨같은 타고난 초능력자도 아니고 토르같은 신도 아닌 연약한 인간에게서 최대한의 능력치를 끌어낸 히어로라서 웬지 정이 간다. ('미국'은 일단 제쳐두고...) 과연 영화가 어떨지 기대해보자.
재미난 점 한가지 더. 캡틴 아메리카를 맡은 배우는 판타스틱4의 불타는 쟈니 역을 맡았던 크리스 에반스다. 경박한 날라리 쟈니와 마블 히어로들의 모임인 어벤저스의 리더인 캡틴이라니, 이미지가 완전 극과 극!!
3. 이번엔 빨강도 파랑도 아닌 제3의 비비드 컬러 - 녹색이다! 웬지 슈퍼 히어로 하면 초록색 쫄쫄이는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패러디 영화였던 <슈퍼히어로(Superhero Movie, 2008)>의 잠자리맨이나 엘프가 먼저 생각나고. 하지만 의외로 초록 히어로도 쏠쏠히 존재하고 있으니...
헐크 (마블 코믹스) / 킥애스 (마블 코믹스) / 그린 랜턴 (DC 코믹스)
역시 초록은 전형적인 슈퍼히어로의 색은 아닌 걸까? 프랑켄슈타인 같은 괴물로 변신하는 안티히어로적 속성의 헐크가 바로 초록하면 생각나는 주인공. 하지만 감정의 컨트롤만 잘 해낸다면, 무서운 외모와 달리 본디 착한 박사님인지라 사람들을 위해 괴력을 휘둘러준다. 마블 코믹스 출신 중에는 완벽하지 않아도 이렇게 고뇌와 약점이 있는 히어로들이 종종 있다. 그리고 심지어는 약점 투성이의 히어로답지 않은 히어로조차 존재한다. 슈퍼 히어로광인 찌질한 한 소년이 직접 히어로가 되기로 한다.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불타는 정의감이나 복수심 같은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나름 세상에 책임감을 발휘해보겠다며 용기를 낸 평범한 히어로도 분명 히어로다. 그의 이름은 킥애스. 그리고 그가 인터넷으로 구입한 히어로 쫄쫄이의 컬러는 그린!
정통적인 슈퍼히어로 중에도 그린은 있다. 이름부터 컬러를 전면에 내세운 '그린 랜턴'이다. DC 슈퍼히어로들의 팀인 저스티스 리그의 리더격인 그는 우주를 수호하는 그린 랜턴 군단의 일원으로, 인간이지만 온 우주 최강의 외계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슈퍼히어로 중의 히어로다. 그의 상징인 색깔 '그린'은 두려움에 맞서는 용기를 의미하는 것이며, 맞서야 할 두려움은 '노랑'으로 대표된다. 색깔을 가장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예라고나 할까. 안타깝게도 영화는 내용이 계속 산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갈피를 못잡아 그린 랜턴이라는 특별한 히어로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하지만 그냥 쫄쫄이가 아니라 인간의 근육 하나하나가 그대로 슈트가 된 듯한 섬세한 표현과 빛나는 녹색 컬러는 인상적이다.
4. 어둠의 검은색-은 주로 어둠속에 활약하는 안티 히어로들의 애용 컬러다. 한눈에 띄진 않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그 뒤에 강한 힘이 압축되어 있을 것 같은 포스가 느껴지게 된다. 특히 스산한 분위기의 밤에 등장하는 검은 그림자가 등장한다면 더욱 임팩트 있는 효과 가능!
배트맨 (DC 코믹스)
엑스맨 (마블 코믹스)
블랙 하면 뭐니뭐니 해도 역시 배트맨이다. 배트맨만큼 블랙이 어울리는 히어로가 또 있을까. 그의 속성은 모든 것이 어둠에 맞춰져 있다. 상징은 어둠 속에 날아다니는 박쥐. 악이 들끓는 어둠의 도시 고담에서, 박쥐처럼 그 어둠을 헤치고 악에게 날아드는 더 어둡고 강렬한 정의의 사도! 팀 버튼부터 크리스토퍼 놀란까지, 여러 감독들의 손을 거치며 그때마다 조금씩 서로 다른 스타일의 배트맨들이 시리즈로 이어져 왔지만 전신의 새카맣고 강렬한 검은색과 박쥐의 귀 모양의 머리라는 컨셉만은 불변이다. 배트맨 비긴즈를 시작으로 배트맨의 초기 시절로 회귀하면서부터는, 유일하게 황금빛이 섞여 있던 배트맨의 문장조차 사라지고 더욱 투박하고 어두운 블랙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그리고 딱히 어둠 속에서 암약하는 집단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주류 사회에서 소외된 그늘 속에 있는 히어로들에게도 검은색은 어울린다. 바로 돌연변이 능력자들이 뭉친 엑스맨들이다. 사람들에게 외면받고 상처받았으면서도 그것을 스스로 감싸안고, 오히려 인간을 위협하는 또다른 자신들의 동족 돌연변이들에게 맞서는 그들은 어찌 보면 진정한 대인배? 재미있는 건, 최근 개봉한 프리퀄 시리즈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서 찰스 자비에와 에릭 랜셔를 주축으로 만들어진 엑스맨의 전신이랄 수 있는 조직(?)의 유니폼은 칠흑같은 블랙이 아니란 사실. 처음으로 희망을 꿈꾸기 시작했던 시절이라 그럴까, 나중에는 사라지게 될 그 밝고 선명한 노란색이 웬지 눈에 밟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