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8월 2주
<메리 포핀스>
우산을 쓰고 바람을 타고 마법사 유모 메리 포핀스. '유모'하면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유모 영화의 고전 중의 고전이다. 어느 상류층 가정, 은행에서 일하는 아빠는 늘 엄격하고 엄마는 여성 참정권 운동에 정신이 없다. 그리고 어린 두 아이는 꼬장꼬장하기만 한 재미없는 유모들에게서 도망치기 일쑤이다. 아이들은 '명랑하고 볼이 빨갛고 재미있는 놀이를 많이 알고 예쁜' 유모를 원한다는 구인광고를 쓰지만 아빠는 종이를 찢어버린다. 그러나 벽난로를 타고 바람에 실려간 그 구인광고를 들고, 딱 그 조건대로의 유모 메리 포핀스가 새로운 바람과 함께 나타난다.
메리 포핀스의 마법만 있으면 아이들이 귀찮아하는 청소도 즐거운 노래와 함께 신나는 놀이가 되고 맛없는 쓴 약도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맛으로 변한다. 예쁜 그림속에 들어가 회전목마를 타고 경주도 하고 공중에 떠서 티타임을 갖고 굴뚝청소부들과 신나게 지붕위에서 춤을 춘다.
그렇다고 마냥 놀기만 하는 게 아니라 엄격할 줄도 아는 유모이다. 그 엄격함을 아이들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드러낼 뿐. 또 그녀는 아이들만이 아니라 어른들까지 변화시키며 온집안을 명랑하게 만들고, 일과 사회적 명예와 성공을 중시하던 아빠도 결국은 그 굴레에서 벗어나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주는 아빠로 돌아온다. 그녀의 마법 없이도 아이들이 아빠와 함께 즐거워하게 되었을 때, 메리 포핀스는 다시 바람을 타고 떠나간다.
흑발에 냉정함을 가장하고 있는 차분한 줄리 앤드류스의 모습은 <사운드 오브 뮤직>때와는 또다른 모습이라 흥미롭다. 재미난 일을 벌이기 전엔 늘 엄격하게 안된다고 고개를 젓지만 놀 떄는 누구보다 환상적인 경험을 선사해주고 끝낼 때는 쿨하게 끝내는 멋진 유모 메리 포핀스. ^^ 또 이 영화는 디즈니다운 귀여운 애니메이션들까지 더해진 70년대 뮤지컬 코미디의 매력을 가득 느낄 수 있는 동화같은 작품이기도 하다. 거리의 예술가이자 굴뚝청소부이며 메리 포핀스의 친구인 버트 아저씨가 보여주는 재미난 춤 또한 놓칠 수 없는 볼거리.
<내니 맥피>
메리 포핀스처럼 홀연히 나타난 마법사 유모. 하지만 이 유모는 메리 포핀스와는 달리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들 훈육이 특기인 엄청난 외모만큼이나 카리스마 넘치는 유모이다. 이번에는 상류층 가정이 아니라 생활고 탓에 외로워진 아이들이 등장한다. 아버지는 엄마도 없이 생활을 꾸리랴 아이들 챙기랴 정신이 없고, 그래도 아빠의 사랑이 고픈 아이들은 관심을 받고 싶어 더욱 짖궂게 행동을 한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내니 맥피의 훈육에 반발하지만, 아이들이 가장 필요로 할 때 늘 옆에서 도와주는 그녀를 신뢰하고 기대게 되며 서서히 엄격하고 무뚝뚝한 얼굴 뒤의 따스함을 느낀다.
영국의 시골에서 다소 반항기 어린 소년부터 마냥 순진하고 귀엽기만 한 막내까지 개성만점의 아이들이 왁자지껄하게 벌이는 소동과 내니 맥피의 기상천외한 마법을 보는 재미가 쏠쏠한 영화이다. 1편에서 내니 맥피의 마법으로 여장 인간이 된 당나귀의 재롱도 웃겼지만, 2편에서는 귀여운 새끼돼지들에 하늘을 나는 자동차까지, 볼거리는 더욱 화려해졌다. 그리고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아이들이 규칙을 지키며 변화할 때마다 점점 예뻐져가는 내니 맥피의 변화를 보는 재미. 신데렐라같은 동화의 재미가 다 이런 거 아니겠는가. 마지막에 원래의 엠마 톰슨의 모습으로 돌아온 내니 맥피를 보며 환호하는 것은 나뿐일까? ^^;
그리고 볼거리나 재미에만 치중하지 않고,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애나 마냥 철부지같던 아이와 내니 맥피의 교감과 변화를 통해 아이의 성장을 그려내는 등 감동까지 선사해주니... 단지 아이들이 재미있어 할 아동용 영화라고 치부할 게 아니라, 동화같은 환타지와 감동을 모두 원하는 어른 관객까지 사로잡을 만한 영화이다~
<미세스 다웃파이어>
로빈 윌리엄스의 전성기 시절 코미디 연기의 진수가 폭발하는 영화이자 내용적으로도 아주 가슴 따뜻한 가족드라마인 영화 <미세스 다웃파이어>. 정확히는 유모 영화라고는 할 수 없다. 실은 여장을 한 "아빠"니까. ㅋㅋ
아이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너무나 잘 놀아주는 다정한 아빠지만 가장으로서는 아내를 너무나 힘들게 했던 다니엘. 결국 너무나 지친 아내는 이혼을 요구한다. 성우로 일하다 짤린 그는 아이들을 부양할 능력이 없어서 졸지에 아이들과 헤어져 지내게 된다. 가정부를 들이려 한다는 말을 들은 그는, 자신이 여장을 하고 '미세스 다웃파이어'가 되어 아이들의 곁으로 돌아간다.
처음에는 아빠와는 헤어져야 하고 낯선 가정부가 자신들을 돌봐준답시고 들어온 것에 아이들이 삐딱하게 굴지만, 이 거구의 노부인은 그냥 가정부가 아닌 것이다. 누구보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잘 알고 있는 아빠 아닌가. 아이들의 사소한 반항 따위는 여유롭게 제압하고, 식사 준비 등에서는 비록 온갖 실수를 저지르지만 잽싼 임기응변으로 완벽한 가정부로 안착한다. 아이들 또한 혼란하기만 하던 가정에 평화를 가져다 준 미세스 다웃파이어에게 맘을 열게 되고, 원래부터 찰떡같던 사이였던 아빠와 아이들이었으니 물론 다웃파이어와 아이들의 친밀함이야 걱정할 필요도 없는 일. 이제는 가정부로 위장해 가정속으로 돌아온 아빠가 엄마의 새 남자친구와 여러가지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어떻게 진짜 모습으로 가정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가 문제다...!
이 영화는, 말할 것도 없이 로빈 윌리엄스의 여장 연기와 그로 인해 벌어지는 온갖 코믹한 해프닝들이 최고의 재미를 선사해 주는 작품이다. 아이들의 성장을 담아냈던 <내니 맥피>와는 달리 이번에는 아버지이자 남편으로서 성장해가는 한 남자의 변화를 지켜볼 수 있으며, 물론 이러한 작품에선 빠질 수 없는 가족애의 잔잔함 또한 놓치지 않고 그려내고 있다. 지금 봐도 정말 재미있는 영화~
<내니 다이어리>
상류층 가정, 부모의 관심이 필요한 외로운 아이, 그리고 유모... 이렇게만 보면 나름 21세기판 메리 포핀스같기도 하지만 (실제로 영화속에 메리 포핀스의 등장씬의 패러디나 대사의 인용도 나온다) 실은 젊은 20대 여성이 유모 일을 통해 자아를 찾는 드라마. 그리고 그와 함께 겉으로는 그럴싸하지만 안으로는 위선과 부조리로 가득한 상류사회의 가정을 통렬히 비꼬면서 가정과 양육에 대한 테마까지 복합적으로 담아놓은 영화이다.
엄마가 바라는대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전공으로 대학까지 졸업했지만 도대체 난 누구인가 하는 고민에 휩싸인 애니는 우연하게 상류층 X 집안의 유모 일을 제의받게 된다. 엄마의 압박으로부터 벗아나 자유를 만끽하며 부잣집 구경도 할 겸 잠시 해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유모가 되었으나 실상은 제대로 대접도 못받는 하녀같은 신세. 그리고 말 안듣는 꼬맹이 그레이어.... 하지만 온통 규율들에 매여있는 외로운 아이의 마음을 여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 규율을 과감히 깨주는 것으로 애니는 그레이어와 단숨에 친해진다. 그리고 순수하게 애정을 보내고 애정을 갈구하는 아이에게 정이 든 애니는 X 집안의 온갖 말도 안되는 행태들을 보면서도 그 집을 떠나지 못한다. 가정은 팽개치고 일을 핑계로 겉도는 남편, 남편의 외도를 알면서도 묵인하고 집착하는 부인, 유모에게 모든걸 맡기고 아이에겐 무관심한 이들에게 결국 부당하게 해고당한 애니는 분노로 폭발하면서 그 부부에게 그동안 참았던 일침을 가한다.
나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테마들을 한데 잘 엮은 참신한 영화이긴 하지만, 그다지 재미가 있지는 않다. 유모일 때의 애니는 시종 굉장히 수동적이고 답답하며, 상류가정을 비꼬는 블랙코미디는 뻔하고 지루하게 이어진다. 예상대로 해피엔딩의 결말은 나지만 앞서 소개한 영화들같은 그러한 훈훈함은 부족하다. 개인적으로는 애니가 그렇게 이뻐하고 걱정했던 그레이어와 애니와 관계가 끝에 흐지부지 되어버린 점이 아쉽다. 애니는 '아들에겐 그저 사랑만이 필요할 뿐'이라는 진심어린 메세지로 엄마의 마음까지 움직이게 만들 정도로 그레이어를 각별해 했지만, 결국 둘의 관계는 애니가 떠나는 택시 뒤를 울며 쫓아오던 그레이어의 모습이 마지막이다. 그렇게 자신이 떠나버린 뒤 아이의 상처를 걱정했으면서 이런 작별을 끝으로 쌈박하게 자기 인생을 사는 모습이라니, 웬지 애니에게도 그레이어는 그녀의 자아찾기 통과의례의 한 부속품일 뿐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하다. 그녀의 해피엔딩에서는 그녀와 엄마의 관계, 그녀와 잘생긴 이웃집 남자=애인의 관계, 미세스X와의 관계만이 그려진다. 그레이어는 엄마가 함께하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그녀의 해피엔딩의 요소가 된다.
.... 이런 게 불만인 나야말로 그레이어에게 너무 집착하게 된 것일까.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