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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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요

-에쿠니가오리 / 김남주 옮김


손가락

초록 고양이

천국의 맛

사탕일기

비, 오이, 녹차

머리빗과 사인펜

역자 후기




나는 초록 고양이가 되고 싶어, 다시 태어나면.

보라색 눈의 초록 고양이, 라고 말하고 에미는 꿈꾸듯 미소 지었다.

그 고양이는 외톨이로 태어나, 열대 우림 어딘가에 살고,

죽을때까지 다른 생물과는 한 번도 만나지 않아.

p91

우리에게 엄마란 돈과 안심을 모두 갖고 있는 친구다. 무슨 짓을 하고 놀아도 엄마와 함께면 아무도 뭐라 그러지 않는다. 오늘처럼 학교를 조퇴하고 나와 쇼핑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엄마는 자상하고, 따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니까 편하다.

p113

때로는 엄마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내가 너무 어린 탓이 아니라 엄마가 나이를 너무 먹은 탓이라고 생각한다. 이 둘은 똑같지 않다. 전혀 다른 차원이다. 무언가를이해하기에 아직 어리다면 언젠가는 이해할 때가 온다. 하지만 무언가를 이해하기에는 너무 늙었다면, 그 사람은 영원히 그것을 이해할수 없다. 그것은 아주 슬픈일이다. 아주 아주 슬픈 일이다.

p138

사탕은 독약. 지금은 그저 수첩에다 달아 놓을 뿐이지만.

파란 사탕은 가벼운 독, 가벼운 벌을 주기 위한 것이니까 아마도 미미한 두통과 구역질 정도. 검정 사탕은 독한 독, 죽음에 이르는 독이다. 지금까지 사탕일기를 쓰면서 몇명이나 독살했는지 모른다. 한명을 몇 번이나 죽인 적도 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p158

여행에 대해, 처음 힌트를 준 사람은 오니시 씨였다.

"내가 스물일곱 살 때 여동생이 죽었거든.

안이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때 나도 동생하고 같이 죽었던 거야.

일단 한 번 죽은 후에 다시 사니까, 야, 그거 편하던데."

일단 죽은 후에 다시 산다. 그 말이 나의 뇌리에 또렷하게 각인되었다. 일단 파괴한다는 것. 나 자신은 물론 주위까지.

하지만 동시에 나는 알아 버렸다. 파괴하면 돌아갈 장소가 없어진다는 것을. 이런곳에서 일하면서 여름휴가 때나 설날 때나 홀로 아파트에서 지내고, 아르바이트하는 여고생에게 친구 대접이나 받는 오니시 씨처럼.

여행은 파괴의 결과이다.

p165



많은 친구들이 그 의미조차 규정할 수 없는 감정과 경험속에서 허우적거렸고, 나 역시 그랬다.

나만 동떨어져 있는 듯해서 모든 것에 더욱 매달리고,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그 모든 것을 탓하고 세상을 미워하면서 자학과 파괴와 탈출을 꿈꿨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들은 모든 이의 성장기에 뿜어져 나오는 감정의 자기 분열이고 열정과 치기의 폭발이었을 텐데. 그때는 마치 삶의 전부인 것처럼 크고 무겁게 덜 자란 육체와 정신을 짓눌렀다.

이성이 감정을 통제하는 어른이 된 지금은, 내 딸의 감정적인 혼란과 비틀거림을 용납할수 없어 짜증스러운 것만큼이나 나는 당시의 내가 낯설고 멋쩍다. 질서 정연하지 않고 안정감이 없는 것이 오히려 버거워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지나왔던 것처럼, 그리고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 처럼 내 딸 역시, 아니 이 땅의 모든 여고생들이 성장기란 어두운 터널 속을, 그 감정의 도가니 속을, 그리고 언젠가는 기억에서 멀어져 갈 현재를 힘겹게 통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다 먼 훗날, 문득문득 현재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나온 과거와 맞닥뜨리고는 떨어졌을 뿐 잊히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기억을 새삼 되돌아보면서 그 낯선 이질감에 당황하지 않을까. -김난주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좋아하지만,

에쿠니가오리 소설 마지막에 번역한 김난주님의 역자 후기 읽는걸 더 좋아합니다.

소담출판사에서 에쿠니가오리의 소설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리커버판으로 출간됐어요.

열일곱 여고생들의 섬세한 이야기.

내 학창시절 기억들이 소환되고, 그때 노래가 그리워 찾아 듣고,

몇개 안되는 에피소드들과 함께,

그때가 '좋은 시절'이라는걸 몰랐던 그때로

책을 읽는 동안 타임머신을 타고 그시절로 돌아가는 시간이었네요.

그 긴 터널을 나오고 보니, 참 별거 아닌일에 무척이나 심각했구나,

허무하기도하고, 황당하기도 한,,

그 감정소모를 내딸은 안했으면 하지만,

내딸도 지금 그 터널을 지나오고 있으니, 옆에서 묵묵히 지켜 보는 수 밖에요.

친한친구같은 엄마가되어

손잡고 함께 지나오고 싶은 바램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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