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 위에 새긴 생각>
정민.
열림원
아름다운 예술작품이면서 인간의 가르침을 담아내고 있는 글귀들.
글자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새김.
캘리그라피라는 이름으로 요즘엔, 글쓰기가 인기인데
손으로, 머리로, 온몸과 마음으로 무언가를 이루어 내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하루하루의 움직임이 느껴지는 전각작품.
그걸 우리말, 한글로 풀어내서 알려주시는 저자 정민님께 고맙습니다.
한자로만 되어있어, 눈이 있어도 읽지를 못해, 무슨 뜻인지는 더욱 알 수가 없어서
귀한 것을 귀한 줄 몰라보는 이 서글픔.
이런 까닭에 정민선생님께 더욱 감사하는 마음이 크다.
겨우 천자문 정도는 읽을 수 있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독서에 빠져들고,
덩달아 붓(이 아니고, 붓펜)을 꺼내 들고 따라쓰기를 해본다.
뒤집어 말하는 것은 사람을 격동시키기 쉽고, 곧장 말한 것은 사람에게 깊이 파고 드는 것이니,
돌에 새긴 글들은 짧지만 그 가르침의 의미는 길고, 널리 떠도는 글들을 채집했어도 담긴 뜻은 엄정하다.
글들이 뼈에 사무치는 소리와 눈을 찌르는 빛깔만큼은 천 년 세월에도 더욱 새로워 끝내 없어 질 수가 없다.
그럴진대 시원스럽기는 멍청한 자를 지혜롭게 할 수가 있고, 우뚝함은 여린 자를 굳세게 할 수가 있다.
소인의 원망하는 마음을 가라앉히기에 충분하고, 군자가 바른 기운을 붙들어 세우기 넉넉하다.
진실로 명리의 심오한 곳집이요, 글쓰기의 열쇠이며, 용렬한 자의 눈에 낀 백태를 긁어내는 쇠칼이요,
무너지는 풍속의 버팀돌인 셈이다.
조선시대 말기, 이덕무가 직접 베껴 쓴 풀이글에 박제가가 써 준 서문 중의 한 부분이다.
암울했던 시대에도 한줄기 글 속에서 희망을 찾아냈던 조상들의 지혜를 배울 때이다.
누군들 일생을 살면서 기쁜 일 하나 없으랴.
누군들 일생을 살며서 괴로운 일 하나 없으랴.
그런 일들을 겪을 때마다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를 빙그레 웃으며 가르쳐 주는 글들.
너무 즐거울 때는 많은 말을 하지마라.
노여움이 지극할 때도 많은 말을 하지마라. p70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행동으로, 몸으로 보여줘야하나?
잘 써진 글 읽기의 즐거움과
잘 써진 글 따라써보기의 즐거움으로 세상사의 고난을 헤쳐갈 일이다.
향 하나 피워 올리고, 뜨겁고 진한 커피 큰 잔, 한 잔에 검은 먹물 가득인 붓 한 자루, 하얀 종이 여러 장이면
하루치의 행복이 충족됨이니 더 이상 무엇을 바라랴.
10년동안의 독서로 고치지 못할 병이 없다하니 병이 들기 전에 독서에 푹 빠질 일이다.
그 책이 이 책이라면 눈도 즐겁고, 마음도 즐거울 것이니 더할 나위 없으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