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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기업 인문학 - 인문학은 어떻게 자본의 포로가 되었는가?
박민영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8년 5월
평점 :

<反반기업 인문학> 박민영 지음. 인물과사상사
기업인문학을 반대한다. 그래서 <반反기업 인문학>이란 제목으로 등장한 책.
기업 인문학이란 무엇일까? 순수인문학이 아니라 기업의 이윤을 창출하는 도구로 쓰이는 인문학으로 전락한 것을 말한다. 인문학이 진정 인간을 위한 것이라면 점차적으로 인간성이 회복되고, 인간성이 존중되는 사회로 가는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야 된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점점더 개인주의가 팽배해지고, 자본과 경쟁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등장시킬 때 인문학으로 포장해서 터뜨렸다. 애플 사용하면 좀 더 고상해지고, 인간적이면서도 지적인 사람이 될 거라고 인문학을 차용해서 이미지화 했다. 전세게적으로 핸드폰을 셀룰러폰,모바일 폰 등으로 불려야하는데, 말 그대로 스마트폰이다. 왜 우리는 스마트폰이라고 부르는가.
본래 인간과 세계를 조명했던 인문학은 이제 자기의 실존적 조건을 집중조명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신세가 되었다. 대학교에서 인문학 강의하던 교수들이 박정희 정권 이후에 경제적인 독립을 방해 받으면서 자기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된 것이 크다. 대학교의 강사, 교수라면 신분이 보장 되어야 되는데 2년, 4년 단위로 재임용을 받하니 강성 발언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것들은 지식인을 통제하려는 정부의 검은손이 작용했다고 봐야 된다. 대학에는 여러 층의 교수들이 있는데, 이것은 교수들을 통제 하는 방법으로 층을 나눈거라고 본다. 층에 따라 신분과 급여가 다르고 처우도 다르다. 그래서 교수들은 자기의 신분과 처우를 높이는데 몰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사회적인 이슈나 정부를 비판하는 발언을 하지 않게 된다. 오래된 노교수나 젊은 학자들이 똑같은 학자로서 존중 받아야 하는데, 지금 우리 나라의 대학들은 그렇지 않다. 지금 교수 사회는 불평등이 지배하고 있고, 교수들은 소신껏 연구하고 가르칠 수가 없다. 교수들이 소신껏 할 수 없으니 학생들은 어떨까? 학생들은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인 신자유주의에 경도되거나 통치자편을 든다. 가르치는 사람에게 학문이 자유가 결핍되었다는 것은 배우는 사람에게는 학습권 침해 받고 있다는 것과 같다. 학생들은 모르고 있을 뿐...
요즘 우주를 알고, 태양을 알고, 세상을 알고자 하는 마음이 전 세계를 전세계 흐름이다. 이 책에서는 이것을 빅 히스토리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137억년 가량의 우주 역사를 24시간 하루로 환산하면 인간이 지구의 등장하는 역사는 1초에도 못 미친다고 말을 하고, 우주적 차원에서 기술을 하면 인류 역사의 비중은 대폭축소 될 수밖에 없다. 빅 히스토리에서는 인류역사가 그냥 수렵시대, 농경시대, 현대, 딱 세 가지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이 빅 히스토리에서는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문제인 자본 그리고 그 자본이 조종하거나 접수하는 정치권력의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 한다고 얘기한다. 옛날에는 민중을 지식과 정보를 정보를 차단함으로써 무지를 조장했다면, 지금은 많은 지식과 정보를 주는 척 하면서 무지를 조장한다는 것이고, 그 첨단에 빅 히스토리가 있다고 이야기를 한다. 이 빅 히스토리는 엄청난 양의 과학적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데 진짜 중요한 문제는 언급하지 않는다. 대중들의 정치의식이 첨예화 되는 것을 가장 경계하는 바이기 때문에, 빅 히스토리는 과학적 지식을 내세워 일반 사람들이 정치적이지 않게, 반정치적 이게 조종을 하는 것이다, 저자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예를 들면서 왜 빅 히스토리 앞에서 인간이 소외되고 작아지는지를 이야기한다. 기업인문학은 철학적인 인간의 질문으로 포장된 기업들의 광고처럼 느껴지게 한다.
자본가나 기업들이 시민이라는 이름을 걸고, 시민의 얼굴을 하고 시민사회로 들어오는 것이 더 위험하기도 하다. 시민사회의 영역은 기업에서 독립적이지 않다. 시민사회가 시민단체가 기업들의 후원금으로 활동하게 되면 결국 시민사회의 정당성이 훼손되게 된다. 정부와 시민단체와 기업들이 서로 잘 융화하면서, 민주주의 깃발을 흔들며 앞으로 나아가는 갈 수 있을까?
학문과 학문 간에 서로 교류하고 통합하여서 새롭게 널리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고, 그렇게 해서 인간의 가능성을 더 열어 주는 거라고 알아왔다. 통섭이라고 하고 통합, 융합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융합학문에서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관계는 전혀 대동하지 않다라고 이야기 한다. 여기서 통합 하는 기준도 결국은 생물학적 원리인 것이다. 빅 히스토리는 자연과학 전체를 동원에서 인문사회과학을 지배하려는 프로젝트라고 말을 한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사회 생물학이나 빅히스토리가 인문학을 흡수하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과학 기술을 발달 시키는 측면에서 인류는 유능하고 신의 지위를 넘을 정도로 유능하다. 그러나 과학 기술을 통제 하는 일에 대해서는 놀랄만큼 무능하다. 과학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을 뿐 그것을 통제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것으로 전제해도 되겠다. 인류가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재앙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까. 저자는 지구 제국이라는 것은 또 하나의 다른 차원의, 지금보다 훨씬 심한 노예 사회가 될 거라고 본다.
진짜 인류를 위한 인간을 위한 인문학이 아니라 기업을 위한 인문학인데, 포장이 잘되어서 진실한 인문학인 것처럼 사람들에게 배달되는 인문학, 그것을 기업 인문학이라고 한다. 인문주의와 인문학적 사고는 회의, 비판이 핵심이다. 그런데 기업인문학은 비판의식을 없앤다. 기업인문학은 물질주의와 과학기술과 경쟁체제를 추동하는 불임의 인문학이고, 불행한 학문이라고 결론을 내린 내린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독자에게 신자유주의와 인문학과의 관계, 그 너머의 흐름을 읽게 해준다.
4차산업혁명은 어떤 것일까? 4차산업혁명은 물리학기술. 디지털기술. 생물학 등 3개 분야의 기술을 융합한 혁명인데, 무인운송수단, 3D 프린팅, 로봇공학, 신소재, 사물인터넷, 블록체인, 유전공학, 합성생물학, 바이오프린팅 등이 있다. 요즘 대표적인 첨단기술 종합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핵심은 디지털 기술인데 세 개의 분야의 융합은 빅데이터로 이루어진다. 4차 산업혁명시대로 접어들면서 인간이 소외되고 기술만 확실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4차 산업혁명이 되면서 일자리가 줄어들고, 생산성이 하락한다면 그것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인간을 위한 기술, 인간을 위한 과학이 되야 할텐데 과학과 기술이 너무 앞서 가다 보면 인간은 저 멀리 떨어뜨리고 과학과 기술만 앞서서 달려 가게 된다. 사물 인터넷 시대가 되면 사물 인터넷에 겹겹이 포위된 인간들민 존재하게 될까. 인간은 인터넷으로 연결된 여러 사물들 중 하나에 불과한 존재가 될 것이다.
요즘 나는 심장박동수도 세고, 하루 걷는 걸음 수도 헤아리고, 수면시간도 측정해주는 밴드를 손목에 착용하고 있다. 나의 생체정보가 어떤 기업의 빅데이터가 되고 있구나 생각은 했는데, 다시 보니, 내가 인터넷에 연결된 사물 중의 하나가 되어있는 것이다. 1초도 안되는 인류의 역사이니 정치나 자본, 기업등 세계흐름에는 눈감아라는 '기업인문학'의 메시지를 거부하고, 인간과 인간의 연결과 연대를 해야한다는 <반기업인문학>의 메시지에 눈떠야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