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 우치다 다쓰루의 혼을 담는 글쓰기 강의
우치다 다쓰루 지음, 김경원 옮김 / 원더박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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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우치다 다쓰루 지음.

김경원 옮김.

원더박스

 

 

살아남는 글, 과연 어떤 글일지...?

 

좋은 글이 살아남는 것인가?

 

살아남는 글이 좋은 글인가?

 

 

 

이 책을 쓴 저자는 일본의 대학에서 문학, 철학, 교육, 정치, 문화 등을 아우르며 강의를 하다

 

2011년에 퇴임한 교수이다.

 

이 책은 그가 퇴임 직전에 '창조적 글쓰기'라는 제목으로 학교에서 강의를 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가 살아오면서 언어와 문학에 대해 사유해온 것을 쏟아부은 야심찬 수업이었는데,

 

책을 어떨지, 책 속으로 들어가본다.

 

 

 

 

 

 

 

서문에서 저자는 '모어母語'의 중요성에 대해서 언급을 한다.

 

언어를 지배하는 인간이 아니라, 언어의 지배를 받는 인간이라는 주장도 펼친다.

 

제국주의자들이 식민지에서 언어를 어떻게, 왜 통제하는지에 대한 식견도 보여준다.

 

일본인 저자의 글을 읽으며, 일본이라는 나라의 지식인들이

 

제국주의 일본이던 시절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진다.

 

 

 

글이란 마음을 담아 쓰게 되는 것, 대충 쓰는 일은 없다.

 

숨쉬듯이 자연스럽게 써지는 일은 있으니,

 

그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바, 뮤즈 또는 영감 또는 다이모니온이라 불리는 영험함의 작용이렸다.

 

저자는 글을 쓸때 펜을 움직이는 것은 잘 알지 못하는 존재라고 말을 해주는데,

이것을 다이모니온이라고도 불렀고, 시의 신 뮤즈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고.

우리말(일본말로도)로 영감이라고 한다.

저자는 영험함의 작동으로 글쓰는사람이 자신이 펜을 통제하지 못할 때 쓰는 글이,

종종 뛰어난 글이 된다고도 한다.

한 줄을 쓰면 그 다음 줄부터는 언어가 자율적으로 운동하기 시작하고,

한 줄 쓰면 다음 한 줄이 나오고, 그것이 끝없이 이어지는 글.

그렇게 쓰다보면 어느새 문장이 어떤 방향성을 갖고, 어떤 리듬을 띠고,

작가가 예측 하지도 않은 메시지를 발신한다고 한다.

도대체 누가 글을 쓰는 것일까? 라는 의문부호?

어떤 언어가 남에게 감동으로 전해 질까?

내가 이야기할 때 내 안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다른 존재라고도 본다.

13강에서 클리쉐, 기성의 언어와 생성적 언어에 대한 강의를 한다.

어떤 글을 읽다가 너무 식상한 글을 만나면

'판에 박힌 듯한 글이네.'

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이 판이 인쇄소에서 쓰는 클리세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생성적인 언어와 생성적이지 않은 언어에 대한 이야기도 하는데

이 둘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일본의 작가들 중 세계적으로 번역본이 많이 나와 독자를 많이 확보하는 작가와

 

일본 내에서 유명해도 그 작품이 외국인들에게까지 공유되지 않아

 

크게 반응을 얻지 못하는 저자를 비교해가며 분석도 한다.

 

일본인들의 정서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가 가능하다고나 할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아버지가 중국에서 행한 일들에 대한 기억과

저자 우치다 다쓰루의 아버지가 중국에서 19년간 사는 동안 행했던 일들,

입에 담지 않는, 말 못하는 일들에 대한 기억들을 이야기한다.

(나라를 빼앗겼던 대한제국이나 중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왜 말을 못하는지에 대한 답은 나올 것이라고 보인다.)

저자의 마무리 이야기를 읽으며,

'소울' 혼을 울리는 이야기가 독자에게 스며들 듯 전해질 때

오래 살아남는 글이 되지 않겠는가 생각해본다.

 

 

그저, 살아남기를 원하며 글을 쓰기보다,

 

그 순간순간마다 마음을 담아 글을 쓰게 되기를 원할 뿐이다.

 

고맙습니다.

저는 네이버카페<북뉴스>를 통해 <원더박스>가 제공해주신 책을 읽고 이 글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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