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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책 뒤에 있는 작가의 작품 컬렉션 리스트를 보니 30여 년간 꾸준한 작품을 발표한 왕성한 활동을 한 작가임을 알 수 있겠더군요.
나에게 에쿠니 가오리는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운 문체로 나의 20대 감성을 자극했던 <냉정과 열정 사이>의 작가로 기억돼요. 그 책으로 이탈리아 여행을 가게 되었지요.
40대가 된 지금 <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라는 에세이집으로 다시 만나게 되네요. 이 책은 읽고 쓰는 것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는 작가의 신문과 잡지에 발표한 작품들 중 쓴다는 것, 읽는다는 것, 산다는 것에 대해 에세이와 짧은 소설을 모아 출간한 책이에요.
에쿠니 가오리는 어릴 적 읽은 ‘미피 시리즈’가 처음 세상을 접하는 사전이었고 미피 시리즈를 통해 세상에 대한 상식과 세계관을 형성했다고 해요.
청소년 시기의 그녀는 그릇장 속에 사용되지 않는 그릇처럼 고독했다고 하죠.
직업도 없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아 여행 떠날 생각만 하며 지낸 21살 그녀는 쓰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24살 페미나상을 받았지만 아직도 글을 쓴다는 것은 취미라고 생각했대요.
그 후 3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 사람이 그렇게 되고 마는 것일까 하고 의문시되었던 여류 작가의 길을 걷고 있어요.
작가가 된 그녀는 습관처럼 글을 쓰고 두 시간의 목욕을 즐기며, 씨 없는 피오네 포도를 먹으며 개와 산책하고 저녁에는 사람들을 만나는 삶을 살고 있어요.
궁금했던 그녀의 일상을 훔쳐보는 느낌입니다.
누군가에게서 나와 비슷한 점을 발견한다면 정이 가고 반가운 마음이 들잖아요.
그림책을 좋아한다는 작가가 그림책의 힘과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에 대해서 설명하는 글에서 반가움과 글에 대한 공감 그리고 그 표현력에 감탄했지요.
글을 참 맛있게 쓰는 작가 같아요.
간결하고 담백한 문장이지만 글을 보고 있으면 머릿속에서 그림이 그려진다고 할까요? 잘 써진 동화책을 보고 있는 느낌입니다.
위험해요. 맛있지만(매력), 칼로리가 높은(힘) 과자와 같아요.
그림책은 한 권마다 독립적인 왕국 같은 것이라서, 늘 완성되어 있습니다. 그림책을 읽는다는 것은, 읽지 않았다면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던 그 왕국을 몸속에 소유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좋은 그림책을 많이 읽으면, 풍성하고 튼튼해지죠. 무서운 일입니다.
-그림책의 힘 중에서-
그녀의 언어는 샘물 같다. 조그맣고 기운찬, 천연의 샘물, 부드러운 흙 아래 깊은 곳의 차가움과 향기롭고 따스한 태양의 빛을 몸 안에 품고서, 튀고 방울지면서 즐겁게 샘솟는 물. 게다가 언어 하나하나의 색과 냄새와 감촉이 완벽하게 계산되어 있다.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 중에서-
이 책은 그녀가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어떤 책에 감동을 받았는지, 어떤 음식과 물건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들과 지내는지, 작가로서 한 인간으로서 그녀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에요.
에쿠니 가오리는 이런 말 합니다.
"누군가 현실을 비우면서까지 찾아와 한동안 머물면서, 바깥으로 나가고 싶지 않게 되는 책을 쓰고 싶다."
이 말이 에쿠니 가오리에 대한 호기심으로 와닿았어요.
그녀의 작품을 하나하나 살펴보게 할 만큼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