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12시, 책방 문을 엽니다 - 동네책방 역곡동 용서점 이야기
박용희 지음 / 꿈꾸는인생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기억하는 동네 책방은 책보다 문제집이 더 많은 곳이다.

그마저도 온라인 서점에 밀려 존재감이 서서히 사라진 곳.

그런데 요즘 동네 책방이 달라졌다.

주인장 없는 무인 책방, SNS로 오픈 시간을 확인해야만 하는 서점, 그림책 서점 등 독특한 개성과 사람들과의 소통을 시작하며 그저 책만 파는 곳이 아닌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았다.

 

여기 오후 다섯 시에 문을 여는 책방이 있다.

생업이 아닌 취미로 서점을 한다는 오해를 받기 딱 좋은 행동이다.

하지만 사정이 있다.

아프신 어머니를 동생과 교대로 간호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책방 주인의 이런 사정을 안 단골손님들은 모닝 독서모임을 시작하며 손님이 오면 책을 팔고 때때로 책방 주인을 기다리며 그렇게 주인 없는 책방을 지킨다.

저자는 책방 주인과 손님으로 만났지만 오래오래 동행하는 동무로 남고 싶다는 글로 고마움을 표시한다.

책과 사람들이 머물다 가는 동네 책방 역곡동 용서점의 초창기의 이야기다.

 

책장을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책방을 중심으로 동네 사람들과의 이야기가 그림처럼 그려지는데 너무나 따뜻하고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에 현실이 아닌 영화를 보는 듯하다.

어느 날 더 이상 걷지 못하고 병상에 누워 지낼 때를 대비해서 로마인 이야기 20권을 구해놓는다는 로마 할아버지 이야기에는 짠한 마음이 들고,

엄마를 대신해 아이를 목마 태워 서점 밖으로 나가 달 구경 하는 책방 주인의 배려로 하루 종일 육아로 자신의 시간이 없는 아이 엄마에게 잠시나마 책을 읽으며 꿀 같은 자신만의 시간을 갖게 되는 이야기는 나에게도 저런 시간이 있었는데하며 공감이 갔다.

맛이 없어도’ ‘입에 안 맞아도’ ‘몸 생각해서라는 단골 멘트와 함께 가래떡 두 개, 연두부 한 팩, 붕어빵 두 개, 김밥 한 줄을 주고 간다는 70대 단골손님의 이야기에는 하나라도 더 주고 싶어 했던 나의 할머니가 생각났다.

달갑지 않았지만 선물로 가져오신 것이라 거절할 수 없었던 포스터가 뜻밖에 인기를 끌고 그분의 다른 수집품을 방송에 쓰고 싶다는 방송작가의 말에 충격받았다는 책방 지기. 동네 오가는 분들 중에 은둔 고수가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직 패를 보여 주지 않은 손님 중에 또 다른 고수가 있을지 몰라 항시 긴장을 늦추지 않겠다는 책방 지기의 농담에는 피식 웃음이 났다.

따뜻한 동네, 재주 많고 유쾌한 사람들을 참 이상한 동네, 참 수상한 사람들이란 표현으로 애정을 더한다.

손님으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아닌 꾸준히 만나고 시간과 관심을 들여서 만나는 사람들이라 가능한 일이라 생각된다.

 

이런 따뜻한 정이 넘치는 서점이지만 책을 팔아 생계유지가 과연 될까 싶다.

한창 그림책 공부를 하고 동아리활동을 하며 그림책에 푹 빠져있을 때 동네에 그림책 서점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 그림책으로 수익을 낼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을 때 나에게 서점은 꿈이 되었다.

이 책 속에도 서점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고민들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용서점의 삶은 언제나 고단했다고 한다.

열심히 책을 팔아 돈을 벌어도 남는 돈은 별로 없고 일반적인 책방 수익 구조로는 1년도 못 버티고 문을 닫았을 거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 없단다. 용서점의 속도로 한발 한발 나아갈 생각이란다.

 

저자는 인복이 있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고 한다.

청소년 시절에는 좋은 선배가 있었고, 성인이 돼서는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마음을 나누어 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곁에 있었으며, 책방을 하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힘이 되었던 건 사람이었다고 했다.

난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을 알아본다고 생각한다.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 동네 사람들은 알고 있지 않았을까?

읽는 내내 노란 책표지처럼 마음이 따뜻해진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