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 김지영은 정말로 평범한 여자이다. 서울에 사는 중산층 이상의 삶을 살았던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여자이다. 그리 눈에 띄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뒤 떨어지지도 않았다.
베이붐 시대의 자녀로 남녀 차별을 태어나는 순간부터 받으면서도
부모 세대와는 다르게 고등교육을 받았고 자신의 꿈이 있고 자신의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에서 배제된 정말 평범한 내 자신이다.
이 책을 보면서 미디어의 역할이 지금의 시대의 아픔과 삶을 대변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말 현실적이여서 가슴속 까지 차오르는 분노와 아픔이 있지만 나도 그렇게 살았고
내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살았다.
우리 할머니는 나를 언너니라고 불렀고, 언너니는 나 뿐만 아니라 여자 손녀들은 다 그렇게 불렀다.
여자 아이에게는 이름을 알 필요가 없었던 거다.
우리 할머니는 좋은 집안에서 아주 곱게 자랐고 그렇게 산 사람이였지만 혼자서 시장 한번 못 갔었고
다른 형제들은 의사, 교수, 다 선망하는 직업과 덕망을 갖추었지만 본인은 숫자도 잘 못 읽었다.
우리 할머니는 나에게는 500원을 용돈이라고 주었고, 나보다 4살이 어린 동생에게는 1000원을 주었다.
우리집이 할머니라 직접 살 지는 않았지만 같이 살았더라면 내가 서럽고 참아야 될 상황이 많았을 것이다.
우리 엄마는 좋은 집에 곱게 자란 공주이다. 여자도 배워야 한다고 했고, 날 누구보다도 멋있는 여성으로 만들어 주기 위해서 밤낮으로 내 뒷바라지를 했다. 어릴 때 우리 엄마는 항상 책과 신문을 보셨다.
가게를 혼자 운영하였으며, 전문직 고학력 여성이였다.
그런 그녀도 나보다는 내 동생이 먼저였다.
김지영의 어린 시절에 5살 어린 남동생에게 모든 관심과 우선권이 주어진 것 처럼
나도 어느집과 마찬가지로 나보다는 남동생이 먼저였다.
내가 살면서 가장 힘든 순간이 있었는데
그 순간에도 엄마는 아들이 먼저였다. 내가 지금 죽겠는데 정말 그 때는 하루하루 버티는게
지옥과 같은 순간이였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부모님은 밖에서 고생하는 아들 걱정이 먼저였다.
30대의 나 같은 여성들. 배울만큼 배웠고 이상도 있고 꿈도 있다.
부모세대와는 다르게 한명, 두명 밖에 안되는 자식으로 남녀 구분없이 사랑을 많이 받고
풍요 속에 산 세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쌓아있는 가부장적 가치관으로 여성의 능력이 무시되고 제대로 평가 받지 못 한다.
요즘 대두되고 있는 경력단절녀는 경제 주역이 20대~50대들 여성들이 그들의 부모세대와는 다른
경제상황과 사회상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있는 남아선호사상과 가부장적 가치관에 갖쳐서
여자에게 희생만을 강요당하고 자신이 제대로 능력과 재능을 펼칠 수 없는 장이 없는 현재 사회 현상이다.
나는 두 아이를 둔 81년생 워킹맘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일을 그만 두고 싶은 생각이 들고
불안과 스트레스로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이다.
이게 단지 나 혼자만의 문제일까? 회사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살얼음 같은 곳을 나를 버리고 살아야 하고
가정에서는 엄마로서 엄마역할을 하여야 한다.
아무리 잘난 여자라도 집에서는 여자는 엄마다. 엄마로서 살아야 한다.
어쩌면 지금의 내 또래인 엄마들이 우리 부모세대 엄마들보다 더 고단한 삶을 살 지도 모른다.
부모세대는 전업주부로 자식들 잘 키우고 남편이 벌어준 돈으로 알뜰살뜰 살면 그것만으로도
인정을 받았던 시대였는데
지금은 치솟은 물가와 집값으로 외벌이로서는 가정을 지키기가 어렵고
능력있는 부인이 되어도 집안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시대는 능력있는 커리어우먼과 따뜻한 엄마를 모두를 강요한다.
그 강요를 받으며 난 오늘도 산다. 며칠 전 새벽 2시 반이 넘어서 자다가 소리를 질렀다.
남편이 놀라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아침이 되자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회사에서는 날 이상한 애로 취급을 했고 난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편하지 못 했다.
현실이 그렇다. 회사에서는 완벽하고 일 잘하는 사원을 원하고 집에서는 헌신적인 부인을 원한다.
난 그 어느 곳도 잘 할 자신을 잃어 버린다. 그냥 이 순간을 하루하루 버티는 것 밖에
아무도 내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아무도 날 도와 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