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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MBC 느낌표 선정도서 ㅣ 소설로 그린 자화상 2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199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한 때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아니, 정정하자.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작가가되는 꿈을 버리지않고 마음속 한구석에 아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심심하면 끄적거리던 손때묻은 조그만 노트가 바로 그 증거이고 글을 배운다음부터 하루도 빼놓지않고 (아니, 어쩌면 며칠 빼먹었을지도..) 써온 일기가 바로 그 결심이다. 그리고 나는 바로 이 책을 읽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렇다. 난 이책을 읽었다. 그리고 작가가 되기를 포기했다.
이 책은 감히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그리고 어느 누구도 기억해낼수 없는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고향과 그 그리움의 반짝이는 파편이고 그 정수이고, 작가 박완서 문학 세계의 뿌리이다. 도시에서 태어나 아스팔트위를 질주하는 자동차와 하늘을 가리는 거대한 빌딩들 사이를 학원과 학교 시간표를 따라 종종거리며 달리던 나는 감히 공감한다고 말할수없는 그런 이야기이다. 내가 말할수있는 고향과 시골은 추석이나 설날에 하얀 양옥집에서 솔솔 흘러나오던 부침개의 냄새이고 가족들끼리 한두번씩 놀던 내기 윷놀이가 전부다. 나는 자연을 기억하지 못하고 자연이 우리에게 베풀었던 그 따사로움 역시 모른다. 그런 내가 어찌 감히 자연의 일부인 사람들의 마음을 표현하고 대변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책에는 한국인이 한국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것이 밀집되어 있다. 당연한듯이 받아들였던 자연과 갑자기 발전하기 시작한 도시, 동족들끼리 싸워야만했던 슬픈 현실과 이 모든것을 겪은 이후 작가가 느꼈던 운명, 그리고 책임감.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독자들을 만족시켜야한다는 겉껍질의 책임감보다 독자들을 생각하게 해야한다는 속마음으로의 책임감이 더 중요할것이다. 이 책에는 작가 박완서의 바로 그 속마음 책임감이 드러나있고 그 책임감에 당위성을 부여하며 다른 모든 작가들에게 그러한 책임감을 가질것을 조용히 독촉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포기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하찮은 문자 놀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독촉과 질타에 고개를 숙일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이제는 우리가 기억하지못하는 우리나라를 말하기때문에 소중하고, 슬프게도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재미있고,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렇게 존재했었다는 것을 우리가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한없이 그립다. 그래서 우리는 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고 ㅤㅇㅡㄼ조릴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을 고전의 자리에 올려놓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