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이방인
이창래 지음, 정영목 옮김 / 나무와숲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미국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나왔고 지금은 대학을 다닌다. 작년에 한국학 개론이라는 과목을 들었었는데 그때 읽어야했던 책이 바로 이 Native Speaker와 조정래의 불놀이 (영어 번역본)이었다. 한국사람이 이렇게나 아름다운 문체를 영어로 구사할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놀라움이 먼저 다가왔고 그 다음에는 나 자신에 대한 고민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사실에 한번 더 놀랐다.

미국인이기를 바라고, 아니 바란다기보다는 그 사회에 들어갈수 있길 바라지만 절대 주류사회에 들어갈수 없는 주인공의 모습은 지금 외국에 있는 모든 한국인 2세와 1.5세들의 고민이다. 자유와 평등을 모토로 세계 모든 나라의 이민자들을 유혹하는 미국이지만 한꺼풀만 들춰보면 달콤한 자유와 평등의 기치아래에는 당하는 본인만이 알수있는 억압과 불평등이 산재한다. 그 사이에 백인도 아닌 동양인이 들어간다는 것은, 동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아예 버리지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그의 부모님으로 대표되는 동양인, 혹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살아온 그 자신의 정체성 사이에서 방황한다.

그의 일, 스파이라는 일 역시 그 정체성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 사회에도 미국 사회에도 낄수 없는, 그 한가운데에 걸쳐진 가느다란 실 위에 위태위태하게 놓여있는 그의 자리는 존재하기는 하지만 인정될수없는 그런 자리인것이다. 어느쪽에도 인정되지못한 그가 사회에서 할 수 있는일은 결국 give and take, 한마디로 한쪽이 주면 딱 그만큼 되돌려주지만 받지않으면 절대 먼저 주지않는 지극히 차갑고도 슬픈 현실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이런 그의 모습에서 그의 미국인 부인이 괴리감과 거부감을 느낀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건 동시에 지극히 슬픈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는 그녀를 정말 많이 사랑하고 그의 죽은 아들을 끔찍하게 사랑했으며 함께 있길 바라니까. 문제는 어느곳에도 속할수없는 그의 자리인것이다.

마지막에 그가 존경하게 되지만 결국 파멸하게하는 그 시의회 후보(이름이 기억안난다..)와의 경험은 그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더 심화시키지만 여기서 독자들은 그가 어쩔수없는 한국인임을 느끼게 된다. 마치 내가 그랬던것처럼. 한국인들 특유의 정서인 '한,' 가슴이 절절하도록 슬프지만 한편으로는 치열하게 고민하고 결국에는 인정하는 우리네 특유의 감정. 그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슬픔, 가족에 대한 사랑, 이런 감정들은 결국 그의 부모에게서부터 내려온 외국 사회에서으 삶에서 비롯되는 '한'과 일맥 상통하는 것이며 바로 그 사실 하나만으로 그는 '한국인'임이 확실해지는 것이다.

정말 잘쓰여진 소설이고 읽을만한 소설이고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이민자가 아닌 누구라도 한번쯤은 생각해봤을만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다루니까 대중성 역시 충분한 셈이다. 게다가 한국인이 이렇게나 아름다운 글을 썼다는 사실은 우리들의 가슴마저 뿌듯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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