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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사람들
박솔뫼 지음 / 창비 / 2021년 2월
평점 :
*창비서평단 참여로 받은 책입니다.
『우리의 사람들』에는 총 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언뜻 작가 특유의 기력이 부족하고 단조로운 듯한 이야기들 안에는 먹고 마시고 생각하고 걷고 달리고 잠을 자는 생활의 감각들이 가득 차 있다. 소설 속 사람들은 실제로 혹은 상상 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인다. 친구들과 함께 자살자들이 많이 나와 유명해진 숲을 가거나(「우리의 사람들」) 잘 되지 않는 말(言)을 땅 속 깊이 묻거나(「건널목의 말」) 광장에서 야구공을 주고받거나(「농구하는 사람」) 자신을 죽인 사람을 죽이러 다니고(「이미 죽은 열두명의 여자들과」) 꿈속의 전시를 실제로 찾아 나서고(「펄럭이는 종이 스기마쓰 성서」) 친구에게 자전거 타기를 배운 일을 글로 써 잡지를 만들거나(「자전거를 잘 탄다」) 부산의 여러 장소를 산책하듯 돌아다니고(「매일 산책 연습」) 영화에 논문을 쓰기 위해 광주로 가서 인터뷰를 하기도(「영화를 보다가 극장을 사버림」) 한다. 소설 속 인물들은 묘하게 무기력하고 지친 것 같지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움직이며 그런 움직임을 통해서 과거로, 현재로, 미래로 이동한다. 그렇게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시간을 다 만져본 뒤 하루 끝엔 피로를 못 이기듯 잠이 든다. 실제로 대부분의 소설들이 인물이 잠을 자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작가가 장기적인 작업으로 이어가려는 듯 보이는 동면의 이미지도 자주 등장한다. 보통의 일상도 잠을 자는 것으로 마무리되므로 이 소설들은 마치 앞서 말한 생활의 감각을 길게 늘리거나 혹은 아예 축약한 것처럼 느껴진다.
박솔뫼의 소설을 두고 시간과 공간을 아카이빙하는 작업 같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이 책에 수록된 소설들에서도 그런 작업을 읽어낼 수 있었다. 사쿠라이 다이조의 텐트 연극,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등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대한 것 말고도 실제가 아닌 사건들, 지어낸 인물의 생애, 혹은 구체적인 공간 그 자체를 아카이빙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과거의 사건과 기록을 아카이빙하는 것은 곧 미래로 가기 위함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수록작은 「매일 산책 연습」이다. 화자인 ‘나’는 부산의 용두산아파트 안에 들어가 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그런 생각은 실제로 부동산 업자를 통해 아파트 내부를 살펴보다가 그곳에서 보이는 미문화원의 모습을 보고 1982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을 떠올리는 것으로 이어지고, 또 부산에 아파트를 몇 채나 갖고 있는 최명환이라는 사람을 소개받아 그의 집에 저렴한 가격으로 들어가 살며 본격적인 부산 생활을 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부산 생활 중에 나는 산책을 하듯 부지런히 부산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계속 생각을 한다. 부산의 구체적인 장소들, 지명이 나오는 와중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곳은 역시나 현재 부산근대역사관이 위치한 곳에 있던 미문화원이다. 1982년 그곳에서 일어난 방화사건은 미국에게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의 책임을 묻는다는 명목으로 일어난 것이었는데 그 사건을 두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생략) 그러나 나는 그가 미국이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는 미래를 연습하였을지는 알 수 없었다. 불을 붙인 이후의 시간을 미래라 생각하였을지도 알 수 없었다. 아마도 그들은 그런 미래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왜인지 그가 새로운 세계를 스스로 믿고 살아내어 미래를 현재로 끌어당겨 반복하여왔음은 이해할 수 있었다.’ (p.177)
‘그들이 손으로 만지고 반복한 미래는 어떤 것이었을지 다시 생각하다가 그것을 묻고 되묻고 답하고 다시 묻는다면 끌어온 미래도 이미 일어난 과거로 혹은 지금 살아가는 현재로 믿을 수 있는가.’ (p.179)
소설 속에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 과거를 되짚고 공간과 시간을 아카이빙하는 것은 미래로 향하는 것임과 동시에 미래를 현재로 끌어당겨 연습하기 위함이다. 우리의 모든 움직임, 일상, 생활은 아카이빙될 수 있고, 미래로 상상될 수 있으며 다시 쓰일 수 있다. 나 역시 늘 미래를 상상하고 때로는 믿고 때로는 비관하고 때로는 배신당하며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소설의 위와 같은 몇몇 대목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미래를 상상하고 연습하는 것은 생각보다 꽤 힘들기 때문에, 늘 피로하고 잠이 올 수밖에 없다. 「매일 산책 연습」도 이렇게 끝이 난다. ‘초여름의 오후이고 창에서 들어오는 햇볕 아래 나는 누워 있고 내가 가보고 싶었던 곳에 내가 살고 있고 나는 그 옆에 정답게 눕는다. 그러면 어느샌가 잠이 들었다.’ (p.191)
박솔뫼의 소설을 좋아하고 기회가 될 때마다 찾아 읽지만, 아직 내가 박솔뫼의 소설에서 느끼는 재미는 구체적이고 뚜렷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기보다는 막연한 ‘느낌’과 ‘인상’에 불과하다. 이번 서평을 통해 그동안 내가 박솔뫼의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점들을 어떻게든 구체적인 글로 써보고 싶었는데 실패한 것 같다. 박솔뫼의 소설이 좋은데, 뭐가 좋은지는 명확히 말하기 힘들고 온전히 즐기기도 어렵다고 느낄 때 금정연 서평가의 서평 중 ‘혼란을 혼란으로 두기’라는 표현을 보고 약간의 답을 얻은 것 같았다. 이후로 박솔뫼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내가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남는 혼란을 혼란 그대로 두고 즐기고 있는데, 이번에도 역시 작가가 말하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두고 나의 짧은 이해와 혼란 사이를 오가며 부지런히, 재밌게 읽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소설’을 따라 나도 함께 움직이는, 즐거운 독서였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매번 할 수 있을까? 이걸 왜 하는 걸까? 하는 고민을 한다. 안 해도 나에게 아무 지장이 없는데 왜 하는 것일까. 매번 왜 하는지 어떻게 가능하게 할지 생각하면 괴롭다." - P16
그리고 밥을 드세요 수영을 하세요 할 일을 하세요 이런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이것은 매일 내가 나에게 하는 소리인데 나는 수영을 안 한 지 몇 달이 되었고 당분간은 할 생각도 없었는데 언젠가 했던 결심 같은 것은 몸이라는 기계 어딘가에 입력이 돼서 어떤 식의 작용으로 머릿속에서 울리게 되어 있나봐 하는 생각이 들었다. - P129
욕조에 몸을 담그고 나는 꿈을 너무 믿는 것 같아, 꿈이 나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어디선가 동아줄처럼 내 눈앞으로 뭔가가 내려올 것이라 믿고 있었어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고. 그래도 잠을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사람이 되기는 하지, 포장된 새 소시지를 뜯는 것 같은 새로움. - P151
이 부분을 읽다가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들 와야 할 것들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지금에서 그것을 지치지 않고 찾아내는 사람들은 이미 미래를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시간을 끊임없이 바라보고 와야 할 것들에 몰두하고 사람들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찾아내고자 하는 이들은 와야 할 것이라 믿는 것들을 이미 연습을 통해 살고 있을 것이라고. 어떤 시간들은 뭉쳐지고 합해지고 늘어나고 누워 있고 미래는 꼭 다음에 일어날 것이 아니고 과거는 꼭 지난 시간은 아니에요.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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