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동네
손보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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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이 여지껏 자신이 쓴 작품들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유니버스)’를 만드는 걸 좋아한다. 그 시작 지점부터 함께 하고나 중간 과정에 끼어들어 지켜보는 것도 즐겁고 이미 완성된 하나의 세계를 처음부터 거슬러 올라가 되짚어보는 것도 즐거움을 준다. 특히 손보미 작가의 최근 작품들을 보면 주인공이 어린 여자아이일 적의 기억을 통해 유년기를 되짚어 보고 그 안에서 서늘한 진실의 조각을 찾는 소설들(「밤이 지나면」, 「크리스마스 선물」 등)이 이어지는 걸 알 수 있다. 나는 손보미 작가의 두 번째 장편인 『작은 동네』가 바로 그 단편들과 결을 같이 하는, 하나의 유니버스 속에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작은 동네』는 번역가인 동시에 대학 시간 강사로 일하는 화자이자 주인공인 ‘나’의 현재와 과거가 교차되면서 전개된다. 주인공이 어릴 적에 살던 ‘작은 동네’에 대한 기억은 어머니를 떼어놓고는 말할 수 없다. 기억 속 어머니는 주인공을 과하다 싶을 만큼 보호하고 자신의 통제 안에 두려고 한다. ‘작은 동네’는 곧 어머니가 딸을 위해 만들어낸 (자신의 기준에서) 안전한 세계이자 주인공이 기억하는 유년기의 범위이기도 하다. 그 유년기의 세계 속에서 주인공은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면서 성장하지만 정작 그렇게 목격하고 느낀 것들 이면의 진실을 생각해보게 되는 것은 시간이 오래 지나 어른이 되고 난 뒤다. 『작은 동네』는 바로 그렇게 지난 과거의 기억 속에서 자신이 놓친 진실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는 추리 소설의 구성을 띠고 있기도 하다.


내가 손보미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작가의 소설을 읽다보면 이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이나 인생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다고 ‘착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 착각의 감각은 소설을 읽는 내내 나를 즐겁고 흥분하게 만들다가 책을 덮는 순간에 사라진다. 이 세상이나 자신의 인생에 대해 완전히 알게 되는 일은 불가능하고 그 자체로 착각이기 때문에, 그것이 착각이라는 건 소설이 끝남과 동시에 아주 명료해지는 것이다. 바로 그 착각의 감각은 『작은 동네』에서도 여전하다. 주인공은 자신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토대로 은연중에 이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과 (어머니에게 배운)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요령을 터득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는 착각임이 소설을 읽으면서 드러난다. 그리고 소설 바깥의 독자인 나 역시 주인공의 생각을 따라가면서 내가 이 세상과 인생을 잘 알게 되었다고 착각하다가 소설 말미 주인공이 진실을 알게 되는 순간에 그 착각에서 함께 깨어나게 된다. 그건 손보미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경험한 것이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기대만큼 즐거웠다. 소설의 결말까지 다 읽고 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착각에서 벗어난 상태로 내가 놓친 것들을 꼼꼼히 살피며 한 번 더 읽게 된다. 300페이지가 넘는 이 소설 전체가 결말의 진실을 위한(그리고 그 진실을 통해 주인공이 착각에서 깨어나게 되는 순간을 위한) 하나의 거대한 복선이기 때문이다.


읽는 내내 작가가 문장 한 줄 한 줄 내 발밑으로 유인하듯 과자 조각을 뿌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조각들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책의 결말까지 읽게 되었고, 손보미 작가가 만든 유니버스의 한 부분을 보게 된 것 같아 기뻤다. 인생의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은 때때로 어떤 고통을 동반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진실이 이 세계의 전부는 아니기에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앞으로도 이어질 손보미 작가만의 세계의 확장(혹은 또 다른 새로운 세계라도 좋을 것 같다)을 기대하게 만든다.

아, 한명의 사람이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몇 번의 애도가 필요한 걸까?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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