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리마스터판)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은희경 지음 / 창비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은희경 작가의 소설을 읽는 것은 나에게 즐거우면서도 조금은 괴로운 일이기도 하다. 작가가 소설 속에 등장시키는, 현실로부터 조금씩 붕 떠있어 어수룩하고 다소 수동적이며 자기 합리화의 달인인 인물들과, 작가가 그들에게 보내는 작품 밖 혹은 안의 냉소적인 시선은 때때로 나에게 너무 필요 이상으로 깊이 와 닿기 때문이다. 물론 은희경 작가 특유의 날카로운 심리 묘사와 유려한 문장들은 그 자체로 읽는 재미를 주고, 그 문장들에서 작가의 냉정하고 단단한 시선을 느낄 때마다 괴로우면서도 더 읽고 싶게 만드는 짜릿함을 느끼곤 한다. 아마 이게 내가 은희경 작가의 소설을 계속해서 찾아 읽는 이유일 것이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2007년에 처음 발간된 은희경 작가의 소설집이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은 건 3년 전이었는데, 이번에 창비에서 리마스터판을 내면서 모집한 서평단에 운 좋게 참여하게 되어 3년 만에 다시 읽게 되었다. 3년 전 내가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를 읽고 느낀 감상은 역시나 위에서 쓴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재밌고 괴로웠다(짜릿하기도 했다). 리마스터판의 소설 내용은 당연히 2007년에 발간된 것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고(수록 순서는 바뀌어 있지만) 새롭게 추가된 것은 2020년 작가의 말뿐인데도, 다시금 읽게 된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에 대한 나의 감상은 3년 전과 비슷하면서도 약간 달라져 있었다. 여전히 재밌었지만 조금은 덜 괴로웠다.

 

은희경 작가의 가장 최근 장편인 빛의 과거를 읽으면서 나는 그 소설이 이전 작품들과는(내가 아직 은희경의 모든 작품을 다 읽은 건 아니지만) 조금 다르다고 느꼈다. 날카로운 시선과 냉소는 여전했지만 그런 냉소와 비관의 끝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옛날과는 달라진 것 같았고, 그 변화는 나에게도 옮겨왔다. 자신이 어떻게든 세상을 놀라게 할 것이라는 생각에 빠져 현실 세계의 일부를 외면하는 몽상가 소녀(날씨와 생활), 자기 내부 깊숙이 자리잡은 자기혐오를 합리화하다가 이를 타인에게 지적 받는 인물(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오랜 친구에게 다 간파당할 정도로 투명하고 얄팍한 수동성을 갖고 있으나 등 떠밀려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인물(지도 중독), 언제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만을 따르다 쓸모없는 놈이 되어버린 인물(고독의 발견) 등 은희경 작가가 그리는 모자란 듯 평범한 인물들에게 여전히 나는 공감하고 이입하며 작가가 묘사하는 그들의 말과 행동, 처한 환경과 상황에 괜히 내가 더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제 나는 이런 인물들이 나오는 소설을 쓴 작가가 이후 또 어떤 소설들을 썼고, 어떤 작가의 말을 남겼는지 알기 때문에 3년 전과는 다르게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빛의 과거작가의 말에서 은희경 작가는 끝난 소설은 무조건 해피엔드라고 말했다. 나는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속 소설들의 엔딩을 알고 있고, 그렇게 끝난 소설은 비록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도 삶의 방식이 크게 변하지 않고, 때로는 실패 앞에 좌절하고, 때로는 주어진 인생의 수수께끼를 다 풀지 못하더라도 해피엔드인 것이다. 이렇게 다시 읽기를 하니 그간 나를 즐겁고 괴롭고 짜릿하게 만든 은희경식 냉소는 나에게 꼭 필요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그리는 멸시나 냉소가 수많은 암호와 수수께끼, 운명과 헷갈리는 우연, 고독과 의심으로 가득 찬 인생에 위안이 될 수 있다는 걸 리마스터판을 통해 뒤늦게나마 깨달을 수 있어서, 이 책에 대한 새로운 감상을 남길 수 있어 기쁜 다시 읽기였다.

 

 

+)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리마스터판은 판형 및 표지 디자인이 바뀌어 발간되었는데 이 변화가 너무 맘에 든다. 이전 판형은 디자인적인 면에서 손에 잘 집히지 않았는데(말 그대로, 비유적으로 둘다) 리마스터판은 자꾸만 손이 가서 만지고 펼치고 읽고 싶은 크기와 디자인이다. 소설들의 수록 순서가 달라진 것도 읽기에 흐름이 더 매끄럽고 책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 수 있게 해준다. 2007년 발간 책과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있었다. 리마스터판의 의미와 목적에 잘 부합하는 변화라는 생각을 했다.


 

아아, 인생은 얼마나 많은 암호로 가득 차 있으며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수수께끼를 풀어야 하는 것일까. - P6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