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 작가의 소설을 읽는 것은 나에게 즐거우면서도 조금은 괴로운 일이기도 하다. 작가가 소설 속에 등장시키는, 현실로부터 조금씩 붕 떠있어 어수룩하고 다소 수동적이며 자기 합리화의 달인인 인물들과, 작가가 그들에게 보내는 작품 밖 혹은 안의 냉소적인 시선은 때때로 나에게 너무 필요 이상으로 깊이 와 닿기 때문이다. 물론 은희경 작가 특유의 날카로운 심리 묘사와 유려한 문장들은 그 자체로 읽는 재미를 주고, 그 문장들에서 작가의 냉정하고 단단한 시선을 느낄 때마다 괴로우면서도 더 읽고 싶게 만드는 짜릿함을 느끼곤 한다. 아마 이게 내가 은희경 작가의 소설을 계속해서 찾아 읽는 이유일 것이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는 2007년에 처음 발간된 은희경 작가의 소설집이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은 건 3년 전이었는데, 이번에 창비에서 리마스터판을 내면서 모집한 서평단에 운 좋게 참여하게 되어 3년 만에 다시 읽게 되었다. 3년 전 내가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를 읽고 느낀 감상은 역시나 위에서 쓴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재밌고 괴로웠다(짜릿하기도 했다). 리마스터판의 소설 내용은 당연히 2007년에 발간된 것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고(수록 순서는 바뀌어 있지만) 새롭게 추가된 것은 2020년 작가의 말뿐인데도, 다시금 읽게 된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에 대한 나의 감상은 3년 전과 비슷하면서도 약간 달라져 있었다. 여전히 재밌었지만 조금은 덜 괴로웠다.
은희경 작가의 가장 최근 장편인 『빛의 과거』를 읽으면서 나는 그 소설이 이전 작품들과는(내가 아직 은희경의 모든 작품을 다 읽은 건 아니지만) 조금 다르다고 느꼈다. 날카로운 시선과 냉소는 여전했지만 그런 냉소와 비관의 끝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옛날과는 달라진 것 같았고, 그 변화는 나에게도 옮겨왔다. 자신이 어떻게든 세상을 놀라게 할 것이라는 생각에 빠져 현실 세계의 일부를 외면하는 몽상가 소녀(「날씨와 생활」), 자기 내부 깊숙이 자리잡은 자기혐오를 합리화하다가 이를 타인에게 지적 받는 인물(「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오랜 친구에게 다 간파당할 정도로 투명하고 얄팍한 수동성을 갖고 있으나 등 떠밀려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인물(「지도 중독」), 언제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만을 따르다 ‘쓸모없는 놈’이 되어버린 인물(「고독의 발견」) 등 은희경 작가가 그리는 모자란 듯 평범한 인물들에게 여전히 나는 공감하고 이입하며 작가가 묘사하는 그들의 말과 행동, 처한 환경과 상황에 괜히 내가 더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제 나는 이런 인물들이 나오는 소설을 쓴 작가가 이후 또 어떤 소설들을 썼고, 어떤 작가의 말을 남겼는지 알기 때문에 3년 전과는 다르게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빛의 과거』 작가의 말에서 은희경 작가는 ‘끝난 소설은 무조건 해피엔드’라고 말했다. 나는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속 소설들의 엔딩을 알고 있고, 그렇게 끝난 소설은 비록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도 삶의 방식이 크게 변하지 않고, 때로는 실패 앞에 좌절하고, 때로는 주어진 인생의 수수께끼를 다 풀지 못하더라도 ‘해피엔드’인 것이다. 이렇게 ‘다시 읽기’를 하니 그간 나를 즐겁고 괴롭고 짜릿하게 만든 은희경식 냉소는 나에게 꼭 필요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그리는 멸시나 냉소가 수많은 암호와 수수께끼, 운명과 헷갈리는 우연, 고독과 의심으로 가득 찬 인생에 위안이 될 수 있다는 걸 리마스터판을 통해 뒤늦게나마 깨달을 수 있어서, 이 책에 대한 새로운 감상을 남길 수 있어 기쁜 ‘다시 읽기’였다.
+)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리마스터판은 판형 및 표지 디자인이 바뀌어 발간되었는데 이 변화가 너무 맘에 든다. 이전 판형은 디자인적인 면에서 손에 잘 집히지 않았는데(말 그대로, 비유적으로 둘다) 리마스터판은 자꾸만 손이 가서 만지고 펼치고 읽고 싶은 크기와 디자인이다. 소설들의 수록 순서가 달라진 것도 읽기에 흐름이 더 매끄럽고 책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 수 있게 해준다. 2007년 발간 책과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있었다. 리마스터판의 의미와 목적에 잘 부합하는 변화라는 생각을 했다.
아아, 인생은 얼마나 많은 암호로 가득 차 있으며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수수께끼를 풀어야 하는 것일까.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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