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서 만나요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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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전에도 몇 번 여러 출판사의 사전 서평단에 신청한 적이 있었지만 번번이 선정에서 탈락했다. 돈이나 지위나 명예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저 곧 출간될 책의 일부를 미리 읽고 감상을 쓰는 것뿐이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었고, 이게 뭐라고 매번 자신감도 떨어져갔다. 그러니까 이번 정세랑 작가 신작 소설집의 사전 서평단 신청을 받는다는 걸 알고도 크게 자신감이나 기대를 갖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일단은 꼭 사전 서평단이 되고 싶었다. 지금까지 나온 정세랑 작가의 모든 소설을 읽고 사랑하는 팬으로서 이것은 자존심의 문제이기도 했다. 구구절절 신청 이유를 적어 사전 서평단 신청을 하고 난 뒤 별다른 연락이 없어 역시 이번에도... 하며 실망하던 차에 사전 서평단 선정 메일을 받았다. 나는 그렇게 사전 서평단 중 1/100이 되는 행운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나는 정세랑 작가의 소설집을 그 누구보다도 기다려왔다. 때는 약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나는 보건교사 안은영을 읽고 단번에 정세랑 작가를 사랑하게 되었다. 하여 남산 도서관에서 열린 정세랑 작가의 인문학 강연에 막 타오르기 시작한 뜨거운 팬심을 안고 참석한 나는 질의시간에 작가님께 질문했다. “작가님은 지금까지 장편소설만 출판하셨는데, 저는 작가님 단편들도 너무 좋아하거든요. 혹시 단편집은 언제 만나볼 수 있을까요?” 작가님은 내년 4월쯤에 나올 것으로 계획되어 있다고 하셨고, 나는 그 말만 믿고 다음 해의 4월을 기다렸다. 하지만 4월이 되어도 단편집은 감감무소식이었고, 그렇게 무려 2년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정세랑 작가의 소설집이 나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이다. 당연히 소식을 접하자마자 인터넷 서점에서 바로 예약 구매를 했다. 아무튼 사전 서평단에게 랜덤으로 주어진다는 두 편의 단편 중 옥상에서 만나요는 이미 문장 웹진을 통해 읽어봤기에 나는 내심 아직 읽어보지 않은 단편 이혼 세일이 오기를 바랐다. 물론 소설집 안에 있는 소설이니까 결국엔 다 읽게 되겠지만, 그래도 남들보다 먼저 좋아하는 작가의 단편을 읽는다는 쾌감은, 또 다른 누군가의 팬인 사람만 이해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며칠 뒤 내게 온 단편은, 나의 바람대로 이혼 세일이었다.

 

옥상에서 만나요가 괴로운 현실에 약간의 꿈같은 판타지를 가미한 소설이라면 이혼 세일은 그런 환상성이라고는 단 한 방울도 없이 지극히 현실에 두 발을 모두 붙이고 있는 소설이다. 소설 속에서 이혼을 하게 된 이재는 친한 친구들에게 자신의 물건들을 파는 이혼 세일을 열 것임을 알리고, 이 소식을 들은 친구들은 각자 자신의 처지와 입장에서 이재의 이혼에 대해 생각한다. 소설 속 이재의 친구들은 모두 다섯 명으로, 기혼자와 미혼자가 고루 섞여있어 각자 다양한 입장과 처지를 갖고 있다. 이재 개인이 갖고 있는 매력적인 부분을 두고 각각 동경과 애정, 질투와 독점욕을 느끼던 경윤과 아영뿐만 아니라, 혼자 살아가는 건 너무 힘들다는 판단 하에 파트너의 개념으로 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 민희와 고단한 육아에 지친 지원, 성공한 사업가로서 결혼을 하지 않고 있는 성린 등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재를 걱정하고 응원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이재의 이혼 세일에 참여한다.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지만, 일단 현재 나는 비혼주의자다. 아직 이십대지만 결혼에 대한 환상이 전혀 없고 설령 결혼을 한다한들 그 생활을 잘 해낼 것 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결혼이라는 제도와 그로 인해 변화할 생활 방식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혼 세일속에서 보이는 여러 여성 인물들의 삶의 모습은 결코 나의 현재 혹은 미래와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앞으로의 내 인생은 이 소설 속의 여성들 중 하나가 될 수도 있고, 소설 속 인물들의 유형으로는 끼워 맞출 수 없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그나마 운이 좋다면 내가 선택한 것들에 차분히 책임을 져가며 살게 되겠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나 스스로 선택조차 하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혼 세일은 내가 이 세상에서 여자로서 살게 될 미래에 대해 막연하게 갖고 있던 불안과 두려움을 슬며시 건드리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단편 소설은 결코 불안과 두려움을 건드리기만 하고 물러나지 않는다. 소설의 마지막, 이재가 경윤에게 장아찌 누름돌을 챙겨주는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이혼 세일은 세상엔 이렇게나 많은 삶의 방식이 있고, 우리가 그중 무엇을 선택하게 될지 모르므로, 일단 우리에게는 마음 속 불안과 두려움이 넘치거나 그로 인해 흔들리지 않도록 꽉 눌러주는 누름돌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소설이다. 그리고 소설 말미에 이런 누름돌을 독자들에게 건네주는 것은 정세랑 작가가 쓰는 소설들의 특징이며, 이런 누름돌의 존재가 바로 내가 정세랑 작가의 소설과 작가님을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세랑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는 이틀 전인 23일 막 출간되었고, 알라딘의 배송 알림에 의하면 현재 출고되어 내게 오고 있는 중이다. 오래 기다리고 기대했던 만큼, 어서 빨리 정세랑 작가가 건네는 단단하고 사랑스러운 누름돌을 받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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