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퓨테이션: 명예 1
세라 본 지음, 신솔잎 옮김 / 미디어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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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퓨테이션 - 세라본

레퓨테이션은 서평단 신청으로 만난 책이었다. 새로운 장르의 책을 접하지 않게 된 나에게 내린 극약처방이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책이 현실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을까. 장르적 성격이 강한 소설이어서 그런가. 그 이유를 하나씩 설명해 보겠다. 

 소설의 배경은 영국이다. 그곳에서 주인공 엠마는 하원의원으로 일하고 있다. 리벤지포르노에 대한 법 개정을 이슈로 그녀는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그렇게 유명해지지만, 유명세를 치르는 듯 SNS에서의 사이버폭력이 그녀를 따라붙는다. 여성의원이라서, 아니면 남성에게 불리한 법안이라고 생각한 듯이. 단순히 생각하면 당연히 개정되어야 할 법이었다. 한 여성의 인생을 비디오 하나로 망쳐놓기 때문에 지독하게 폭력적이다. 하지만 페미니즘이라는 명사가 붙음으로써 엠마를 향한 여성혐오는 그녀를 집요하게 괴롭힌다. 내가 이 소설을 깊게 빠져서 읽을 수 있는 이유도 소설이 그리는 현실이 한국과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엠마라는 주인공도 굉장히 매력 있는 캐릭터이다. 작가가 리벤지포르노를 처단하는 정의의 국회의원이라는 이미지로 그녀를 만들었다면 우리는 그녀를 평면적이라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딸이 리벤지포르노를 유포한 가해자가 되고 그녀가 적극적으로 사건을 축소하려는 행동을 보임으로써 엠마는 양면성을 가진 입체적인 캐릭터가 되었다. 

 소설은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 SNS 문제, 여성혐오.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려고 하면 탈이 나듯 이야기가 중구난방이 될 수 있지만 이 소설에서는 이런 걱정은 기우였다. 모든 내용이 적절하게 담겨있다. 개인적으로 장르적 문법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것이 이야기의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여성 혐오는 엠마가 두려움을 떠는 이유, 언제든지 공격당할 것 같으니까. 사이버폭력이 만연한 곳인데, 그런 글을 쓰는 사람 중에서 그녀를 공격하려고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까.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엠마는 알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 소설, 지독히 현실적이다. 

이 책은 미디어창비의 <레퓨테이션 : 명예> 가제본 서평단으로 책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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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타일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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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창비에서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은 11월 말에 나는 창비에서 이 책을 선물 받았다. 창비 서평단에 당첨된 모든 서평단 분들은 굉장히 설렜을 것이다. 크리스마스 타일은 김금희 작가님의 첫 연작소설이다. 이 소설은 라는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화장실 타일 붙이듯이 엮어놓은 것이다. 총 3가지 구분에 7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독자들이 첫 번째로 만날 수 있는 소설인 [은하의 밤]과 [당신 개 좀 안아봐도 될까요], [월계동 옥주]를 최고라고 생각한다. (물론 김금희 작가님 소설은 어떤 소설이든 좋았지만)

소설 속 사람들은 각자만의 얼룩을 가지고 있다. 흰 눈이 사람들에게 밟히면 까매지듯이 그들의 과거는 발자국이 선명했다. 아픔이 있었고 근심이 있었다. 소설 [은하의 밤]의 주인공인 은하는 암에 걸린 이후로 오빠네와 연락을 끊었다. 그들은 은하가 아픈 뒤에 그녀를 책임질까 걱정하는 모습까지 그녀 앞에서 보여준다. "오빠가 걸었던 마지막 통화 역시 돈 얘기였고 은하가 거부하자 더이상 연락은 없었다. 전에는 이따금 은하의 생일이나, 은하가 만든 프로그램이 방송되면 연락해 오기도 했는데 그마저 끊긴 것을 보면 그간의 관계 역시 어떤 보상이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 보상이 너무 확실하고 정확해서 정확해서 슬프지도 않다고 은하는 허탈해했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우리는 생각보다 가까울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서로의 속사정까진 다 알지 못한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내 속마음까지 공유할 수 없을 수도 있다. 은하의 속정을 가족이 모르는 것처럼. 은하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더라도 그 이후로 가족과 연락을 끊은 걸 아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그렇기에 아픔은 오롯이 본인이 감내하고 있었다.

우리는 꾸준히 과거를 붙여오고 있다. 크기와 모양은 제각각이고 모아놓으면 우스꽝스러울지 모르겠지만 과거가 모여서 오늘의 내가 되는 것이다. 이런 과거는 "베이징에서 돌아온 뒤로도 옥주의 날들은 그리 평안하지는 않았다. 자기 자신이 완전히 볼품없는 인간이 된 듯해 좌절했고 사람들과는 늘 가까워졌다 멀어지며 오해를 쌓아갔다. 그래도 그해 예후이와 함께 보았던 호수를 생각하면, 세상 어디에서는 호숫물로 등잔을 밝힐 수도 있다는 얘기를 기꺼이 믿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상심이 아물면서 옥주는 옥주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136p)에 나온 예쁜 추억으로 포장되고 "다시금 월계동 옥주로, 속상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바람막이를 꺼내 입고 못난 자신이 갸륵해질 때까지 걷는 중랑천의 흔하디흔한 사람으로."(136p)처럼 자신의 하루가 각박할 때마다 꺼내 보게 될 것이다. 하루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처럼 특별한 날은 아니지만, 나름의 매력이 있어 틈틈이 꺼내 볼 만하다. 지금 이 시기에 이 책이 나온 건 어떻게 보면 김금희 작가님이 독자들을 위해 준 크리스마스 선물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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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 시절 소설Q
금희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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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과거의 기억이 있다. 잊고 있던 기억들이. 그 기억은 어느 순간 갑자기 떠오르기도 한다. 주인공 상아도 갑자기 연락이 닿은 정숙으로 인해 과거 천진에서의 삶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때, 그녀는 가족을 떠나 남자친구인-갑자기 남자친구가 된- 무를 따라 천진으로 넘어온다. 그곳에서 상아는 무의 누나에게 일자리를 얻어 무와 함께 살아가게 된다.

천진에서 만난 사람들은 타지 사람들이다. 돈을 벌러 외지로 나온 것이다. 이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간다. 상아는 무와 같이 살면서 버려진 나무로 가구를 만들고 중고매장에서 중고가전을 샀다. 작은 것에 만족하며 살아갔다. 하지만 같은 동향에서 온 조선인 춘란에 의해 이들의 행복은 흔들린다. 상아는 더 나은 삶을 추구하고, 무는 현재에 만족한다. 이때부터 이들은 서서히 갈라졌다. 실로 묶인 두 사람이라도 같은 방향으로 달려가야지 안 끊기지 한 사람만 달리면 끊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둘은 헤어진 것이다.

이 소설에서 중요하게 볼 점은 타향살이이다. 이 소설은 중국 사람이 겪은 타향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어보면 우리가 공감할 부분이 많다.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타향까지 가서 돈을 벌려고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천진 시절에서 나온 상아의 삶과 고민에 더욱 공감할 수 있었다. 지금의 삶이 최선인지? 더 나은 삶이 무엇인지 말이다.

창비에서 제공해서 읽은 소설Q 시리즈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만 가지고 앞으로 나올 Q시리즈를 읽을 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눈여겨볼만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관심 가져볼만한 작가들의 소설이 나오니까. 이거 하나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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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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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책방에서 1000명의 서평단을 모집하기에 지원해서 받은 책이다. 책에 대한 정보는 거의 알지 못한 체 받은 책이라서 기대 반 설렘 반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받았을 때,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500p가 넘는 책과 수많은 등장인물과 어려운 이름, 은근히 많이 나온 욕과 성적 표현까지. 그래서 초반에 읽는데 굉장히 버거웠다. 특히 초반에 나온 마마 아메리카의 장례식 파트에서는 중간에 이 책에서 하차할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이 책을 다 읽었고 괜찮게 읽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더하여, 가계도는 앞으로 나왔으면 좋겠다. 리틀 엔젤처럼 가족구성원이 헷갈려서 말이다.

이 책은 크게 3가지 부분을 담고 있다. 가족, 이민자, 죽음. 먼저 이 책의 가장 중심 주제는 가족이다. 빅 엔젤을 중심으로 가족들이 모여 있다. 그들은 서로를 보며 으르렁 거리기도 하고 끔찍이 여기기도 한다. 가족들이 모이는 부분에서 이 책은 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하려고 이 책을 쓴 것 같기도 하다. 마지막에는 한자리에 모이니까. 하지만 그러기에는 돈 안토니오나 빅엔젤이 아이들을 때리는 장면은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데 살이 부어오를 정도로 허리띠로 때린다고? 소중히 여기는 걸까? 멕시코와 한국의 문화적 차이 때문인지 아니면 1960년대와 현대의 시대적 차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또한 죽음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이 책의 시작은 마마 아메리카의 장례식이다. 그리고 빅엔젤은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중요하게 다루려고 하는 또 다른 부분이 죽음이라고 볼 수 있다. 정확히는 죽음을 받아드리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책은 죽음을 우울하고 슬픈 것이 아닌 하나의 지나가는 일상 같은 것으로 묘사한다. 가족들끼리 장례식 후에 파티를 연다던가 장례식에서 신부를 향해 농담을 던지는 것과 같은 행위를 통해서 말이다. 특히 120p -저 신비하신 아부지 마법사께서는 그냥 멕시코의 늙은이가 그렇듯 우주적인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그럴지도 모르지. 악몽이란 게 있으니까. 악몽 속에서는 죽은 놈들이 참 많이도 나와서 수다를 떨어댔다.-라는 문장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세 가지 주제 중 이것을 가장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 주제는 이민자이다. 이들은 이민자이다. 빅엔젤은 솔선해서 미국으로 넘어온 멕시코인이다. 그의 가족은 오랫동안 미국에 살면서 영어를 배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하지만 미국을 좋아하지 않는다. 배신하는 백인여자대신 갈색 여자를 찾아보라고 말하는 모습이나 미국인처럼 키웠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멕시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멕시코사람처럼 늦게오지 말라는 말에 화를 내는 모습에서 알 수 있다. 왜 그들은 멕시코인도 미국인도 아니라고 혹은 맞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 이유는 그들이 이민자이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닐까. 멕시코의 피가 흐르는 미국인으로서, 두 곳에서 힘들게 살았던 사람으로써 두 곳에 대한 애증이 남아있는 것이다. 아마도 169P - 빅 엔젤은 악명 높은 사진을 한 백 번쯤은 계속 보고 또 보곤 했다. 유럽 바닷가에서 엎드린 모습으로 시체로 발견된 꼬마였다. 그 애는 버려진 옷이 든 자그마한 가방처럼 널브러진 채로 익사한 모습이었다. 빅 엔젤은 리틀 엔젤이 사진을 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신문을 들어서 조심스럽게 접고는 탁자에 놓았다. 빅엔젤이 말했다. “이민자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그 애는 물에 빠져 죽었어.” “나도 알아.” “새로운 삶을 찾으려고 했던 아이인데.” “알아.” “우리 민족도 저런 모습이었지. 사막에서 말이야.”에서 말했듯이 이민자로서 힘들었던 것이 아닐까. 인정받으려고, 멕시코인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려고 말이다.

빅 엔젤은 악명 높은 사진을 한 백 번쯤은 계속 보고 또 보곤 했다. 유럽 바닷가에서 엎드린 모습으로 시체로 발견된 꼬마였다. 그 애는 버려진 옷이 든 자그마한 가방처럼 널브러진 채로 익사한 모습이었다. 빅 엔젤은 리틀 엔젤이 사진을 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신문을 들어서 조심스럽게 접고는 탁자에 놓았다. 빅엔젤이 말했다. "이민자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그 애는 물에 빠져 죽었어." "나도 알아." "새로운 삶을 찾으려고 했던 아이인데." "알아." "우리 민족도 저런 모습이었지. 사막에서 말이야." - P169

저 신비하신 아부지 마법사께서는 그냥 멕시코의 늙은이가 그렇듯 우주적인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그럴지도 모르지. 악몽이란 게 있으니까. 악몽 속에서는 죽은 놈들이 참 많이도 나와서 수다를 떨어댔다.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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